이 동네의 발코니는 보통 끽연을 위해 잠시 얼굴을 내밀거나 날이 좋으면 앉아서 볕을 쏘이는 용도로 쓰이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수년간 이 건물을 지나다니며 하는 생각이란 것이 술을 잔뜩 마신 사람들이 발코니가 없다는 것을 잠시 망각하고 저 문을 무심코 열고 해장용으로 끓인 뜨거운 홍차와 함께 떨어지면 어쩌지 뭐 그런 종류이다. 평균 연식이 50년은 족히 되는 구시가의 집들 중에는 사실 저렇게 발코니를 뜯어낸 집이 많다. 보통 그런 경우 문을 열지 못하게 안쪽에서 못을 박아놓거나 문 앞에 작은 화분들을 여러 개 세워 놓거나 하는 식이지만 언젠가 한 여름 저 노란 문 한쪽이 활짝 열려있는 것을 본 기억이 있어서 왠지 누가 문을 열고 떨어질 것 같은 상상에 혼자 덜컹한다. 언제나처럼 10월이 되었다. 예상보다 난방이 일찍 시작되었고 생각지도 못했던 파고 시즌 4도 시작되었다. 엄청난 기대감을 가지고 보았던 Raise by wolves 시즌 1은 리들리 스콧이 손대지 않은 에피소드부터 심하게 흔들리더니 결국 병맛 드라마로 끝났다. 올해 자주 들었던 음악들의 리스트를 만들었고 브릿팝에 관련된 책을 읽었다. 요즘 카페 커피가 급 맛이 없어져서 잠시 거리두기를 했고 집에서 몇 종류의 케이크를 구워보며 가능성을 타진하는 중이며 크리스마스에는 레드 벨벳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10월은 약간 그런 느낌이다. 학창 시절 돈이 필요해서 아르바이트를 해야 할 때. 지하철역까지 이어지는 거리에 알바 구함 같은 에이포 용지가 붙으면 가서 물어봐야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내일이나 모레까지 붙어있으면 그때 물어봐야지 하며 쉬쉬할 때. 그다음 날 지나가는데 종이가 더 이상 붙어있지 않을 때 눈앞에서 날아간 알바 자리가 아쉬우면서도 이것은 내 탓이 아니다 라는 생각으로 내심 마음이 후련할 때의 그런 느낌. 겨울이 오는 것은 춥고 불편하지만 기어이 이미 10월에 발을 들여놓았다는 생각이 들면 크리스마스까지 두 달간 지속적인 어두워짐을 만끽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에 안도하는 것이다. 겨울은 조금 불편할 뿐이다. 하지만 겉옷에 주머니가 생기니 이제 마스크를 잊을 일이 없게 각각의 코트에 각각의 마스크를 넣어두어야겠다.
'Vilnius Chronicle' 카테고리의 다른 글
Vilnius 132_지난 여름 커피 테이블 (0) | 2020.11.29 |
---|---|
Vilnius 131_터미널 (1) | 2020.11.27 |
Vilnius 130_ 사람 두 명 (2) | 2020.11.17 |
Vilnius 128_동네 한 바퀴 (1) | 2020.09.15 |
Vilnius 127_없어진 가게들 (1) | 2020.09.09 |
Vilnius 126_누구네 창고 (2) | 2020.09.08 |
Vilnius 125_어떤 횡단보도 (2) | 2020.09.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