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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lnius Chronicle

Vilnius 131_터미널

 

열쇠 만들일이 생겨서 빌니우스 버스 터미널에 있는 열쇠집에 갔다. 만들어서 가져와서 문을 열려고 보니 안 돌아가는 열쇠. 다시 가서 조금 고치고 다시 와서 열고 또 안 열려서 다시 가서 고치고 또 안 열려서 다시 갔다. 열쇠 자체의 미묘한 두께가 문제였는지 열쇠가게 청년은 결국 가져간 원본 열쇠와 같은 제조 회사의 열쇠를 골라 새로 깎아줬다. 그리고서 다행히 문이 열렸다. 터미널에서 가까운 장소여서 왔다 갔다 했어도 그나마 한 시간 가량 걸렸을 뿐이지만 직원은 혹시 내가 또 오면 어쩔까 신경 썼을 거고 나는 계단을 오르며 혹시 또 문이 안 열리면 어쩌지 신경 썼다. 여긴 지하상가처럼 보이지만 그건 아니고 터미널의 대합실 뒤로 펼쳐진 보도이다. 내가 등지고 있는 열쇠가게가 이 보도의 끝이고 저 끝이 대합실이다. 열쇠를 깎는 소리가 흡사 치과의 스케일링 하는 소리와 비슷하다.  그 소리를 등지고 팔꿈치를 괴고 침침한 보도와 그곳을 띄엄띄엄 오가는 사람들을 한참 동안 보고 있었다. 사람 구경하는 것은 언제나 재밌다. 나도 누군가에게는 구경의 대상이라고 생각하면 갑자기 그와 내가 네오와 스미스 대원이 빗속에서 떠오르던 것 처럼 붕떠오를것 같다. 버스 출발때까지 별달리 머물 곳이 없어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듯 보이는 사람들은 마치 내 열쇠 스케일링 소리에 이끌린듯 보도 끝의 열쇳집에까지 다달아서 가격표가 하나하나 붙어있는 반짝이는 손목시계들을 구경하다 뒤돌아서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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