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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dia 01_산닥푸 Sandhakphu 오늘, 1월17일. 14년전 인도행 비행기에 오르던 날짜이다. 홍콩에서 델리행 비행기로 환승을 하며 짐도 자동적으로 옮겨진다는것을 망각한채 내 짐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으로 꽁꽁 얼어 붙었었던 철없던 그 시절, 처음 번 큰 돈으로 처음 떠난 여행. 따지고보면 하루하루의 날짜는 일년이라는 촘촘한 그물망에 가두어 놓고보면 365분의 1이라는 적지 않은 확률을 뚫고 우리의 기억에 남는다. 조금 더 낡고 헐겁고 성근 평생이라는 그물망속에서 그 하루가 어느 정도의 확률을 뚫고 우리에게 왔는지는 죽기전까지는 알기 힘들다. 80세 정도의 평균수명을 고려해보면 29200분의 1의 확률. 살아 온 날을 세어보면 대략 12500분의 1이라는 확률에 들어맞아 내 뇌리에 남게 된 그 날. 그렇게 점점 틈이 커지는 기억의 그물망속..
헨리 밀러의 The Colossus of Maroussi 지난번에 중고 상점에 들렀을때 여행 가방 속에 한가득 담겨져 있던 서적들. 혹시 유용한 책이 있을지 몰라 습관처럼 뒤적여 보지만 보통은 허탕을 치고 마는데 그날은 색다른 표지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이때까지만해도 저 책을 사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책 표지가 눈에 들어왔던 것은 아마도 6번이 적혀있는 저 그리스 요리책 때문이었을거다. 딱 눈에 띄지만 역시나 파란색 하얀색을 섞은 디자인이다. 이것은 언젠가 구입한 Phaidon (어떻게 읽어야 할까. 페이동?) 출판사의 요리책 속에 끼워져 있던 출판사의 요리책 리스트였는데 이 출판사의 두툼하고 묵직하고 느릿한 백과사전 같은 느낌이 너무 좋아서 긴 시간을 가지고 한권씩 구입하면 참 좋겠다 싶어서 가지고 싶은 순위를 매겨서 보관하고 있었다. 6권의 책을 ..
[리투아니아생활] 외국인 시어머니 댁 속의 한국 풍경 시어머니는 빌니우스에서 버스로 2시간 정도 걸리는 파네베지라는 도시에 살고 계신다. 인구수로 따지면 리투아니아에서 다섯번째로 큰 도시이지만 한국이라는 좁고도 큰 나라, 서울이라는 대도시에서 자란 나에게는 빌니우스도 한 나라의 수도라기 보다는 지방의 소도시처럼 느껴지고 지방의 소도시 파네베지는 한적한 시골처럼 느껴지는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막상 리투아니아의 진짜 시골에 가면 파네베지도 빌니우스도 얼마나 도시스러운지 모른다. 아기를 낳기 두달 전을 마지막으로 장장 7개월간 방문하지 않았던 시어머니댁에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처음으로 아기와 버스를 타고 방문했다. 내가 빌니우스를 여행할때 맸던 배낭속에 아기 기저귀를 넣고 셋이 되어 파네베지를 향하는 마음은 뭔가 감격스러웠다. 여행을 중단하고 리투아니아에 머물던..
Vilnius 24_빌니우스의 크리스마스 장터 토요일 이른 아침. 사람도 차량도 없는 구시가지를 혼자 걷는것은 나의 작은 일상이 되었다. 텅 빈 구시가지와 구름 낀 하늘은 온통 내 차지이다. 집과 식당 중간 쯤, 로맹 개리의 조각이 있는 이 골목의 고풍스런 건물에 매번 크리스마스 조명을 달린다. 이 사진을 찍고 나는 장갑 한 짝을 잃어버린것을 알아챘다. 거리 이곳저곳에 크리스마스 관련 용품 광고가 눈에 띈다. 크리스마스는 다른 서양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리투아니아의 최대 명절이다. 올해는 크리스마스 이브인 24일부터 27일까지 4일 연휴이다. 리투아니아에서는 24,25,26 3일이 기본적으로 크리스마스 공휴일이다. 크리스마스 당일보다는 24일 저녁을 가장 중요한 순간으로 기념한다. 크리스마스 어드벤트 캘린더과 곰인형 광고. 곰인형 들고 크리스마스를 기..
Vilnius 23_빌니우스와 몽마르뜨 이른 아침 거리를 걷다 들어선 좁은 골목에서 발견한 손잡이. 빌니우스도 누군가에게는 여행지인게지. 휴가철이 아닌 주말이 아닌모두가 일하고 있는 시간에 걷는 여행지의 거리에는 아주 개인적인 자유와 쓸쓸함이 있다. 이 거리 구석구석에 아름다운 조각들이 많아서인지 이런 손잡이가 있는것도 퍽이나 당연해보였다. (빌니우스 구시가지의 Stiklių 거리) 그리고 몇 해 전 몽마르뜨 언덕을 내려오던 길에서 마주쳤던 손잡이가 떠올랐다. 8월의 파리는 그렇게나 따뜻해서 사계절 내내 손을 내밀고 있는 그 손잡이가 처량해 보이지 않았는데, 빌니우스의 손잡이는 날이 점점 추워지는데 장갑도 없이 손이 얼면 어쩌나. 몽마르뜨의 손잡이엔 수줍게나마 손을 내밀어 줄 수 있었는데. 가슴에는 아기가 잠들어 있었고 한손에는 음료가 들려져..
Vilnius 22_예술가에 대한 정의 -컨템포러리 아트 센터 Šiuolaikinio meno centras- 10여년 전, 빌니우스를 여행자의 발걸음으로 누빌 수 있는 시간은 결코 길지 않았다. 예정된 일정은 2박3일. 리가에서 빌니우스에 도착하자마자 망설임없이 다음 예정지인 바르샤바행 버스표를 샀다.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인가. 우연과 필연으로 엮인 미래의 모든 가능성을 헌 짚신짝 버리듯 내팽개치고, 새로운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다음 도착지의 티켓을 미리 구입 한다는것. 내가 몹시 상상이 결여된 여행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살고 있던 인생에 대해서야 더 말할것 없었다. 그나마 티켓을 버릴 한 조각 용기가 있었던것은 지금 생각하면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나에겐 빌니우스에 조금 더 머물고 싶은 동기가 생겼고 내친김에..
리투아니아의 자린고비 이야기 간장 한번 찍어 먹고 천장에 걸어 둔 굴비 한번 쳐다보며 밥을 먹는다는 한국의 자린고비 이야기를 언젠가 남편에게 해준적이 있다. 부채를 가만히 들고 부채가 닳을까 아까워 부채 대신 머리를 좌우로 흔드는 이야기도 덤으로 해줌. 음식을 적게 먹다보니 확실히 치즈며 버터며 크림을 주로 이용하는 느끼한 음식들이 갈수록 맛있어짐을 느낀다. 이것은 뭐랄까. 고추장에 익숙치 않았던 외국인이 매운 맛이 두려워 밥을 비빌때 커피 숟가락 만큼 고추장을 넣다가 고추장의 진면목을 깨닫고 밥 숟가락으로 고추장을 퍼대기 시작하는 변화와 비슷한걸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런 외국인이 있다면 말이다. (글을 다 쓰고 네이버에서 자린고비를 검색해보니 자린고비는 심지어 간장 조차 찍지 않고 그냥 굴비를 올려다 본단다. 간장을 낭비하는 자린..
Vilnius 21_없는 것 없는 중고 옷 가게 빌니우스 거리를 걷다보면 흔히 발견 할 수 있는 중고 옷 상점들. Humana, 50c 같은 간판을 달고 있는 체인점들도 구시가지내에 서너군데 있을뿐만 아니라 개인이 운영하는 작고 야무진 가게들도 많이 있다. 나는 옷을 즐겨 입는 옷쟁이가 아니라 보통은 옷이 필요하다 싶을때에야 큰 결단을 하고선 옷을 사러 가는 편인데 물론 그렇게 필요에 의해 옷 가게에 가면 적당한 옷을 찾기가 힘들다. 꾸미기 좋아하는 내 친구중 몇몇은 주기적으로 재미삼아 이런 상점들을 방문하는데 그들 대부분 깔끔하니 옷을 잘 입는다. 비싼옷도 새옷도 아니지만 상황과 날씨에 맞게 이렇게 저렇게 잘 갖춰 입는 모습이 보기 좋다. 뭔가에 애정을 가진다는 것은 옷입기에도 예외는 아닌것 같다. 단순히 누군가에게 예뻐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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