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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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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aha 몇 컷. 여행 중이신 이웃님 덕분에 정말 오랜만에 13년 전 프라하 사진첩을 뒤져보았다. 프라하는 사진들이 실수로 다른 폴더에 들어가 있는 건지 다녀온 곳 중 독보적으로 사진이 적다. 찍은 사진들은 충동적으로 입장한 어린이 대공원에서 일회용 카메라를 사서 친구들이랑 마구 찍은 듯한 느낌이다. 이집트 여행 때부터 많은 추억을 남겨주고 비로소 액정이 나간 쿨픽스를 다루는 게 좀 귀찮았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온전한 사진 몇 장이 있어서 올려본다. 바르샤바에서 밤기차를 타고 새벽에 도착해서 며칠 그저 걷다가 갑자기 예정에도 없던 베를린행 기차표를 사서 허겁지겁 떠났던 프라하. 아침이라고 하기에도 좀 이른 시간이었어서 사람이 정말 없었다. 주말이었을까. 지금이라면 여기저기 세워져 있을 전동 킥보드를 하나 집어타고 장..
Warsaw 10_바르샤바에서 술 한 잔 피에로기에 진심인 폴란드에서 그 진심의 극치를 보여줬던 바르샤바의 어떤 식당. 폴란드어로는 Pierogi라고 하는데 러시아 만두 뻴메니와 동일하다고 보면 된다. 바르샤바의 어디에서든 Pierogarnia 간판을 볼수 있었다. 삐에로기 이외의 요기거리도 팔지만 어쨌든 삐에로기에 장소 접미사 arnia를 붙인 삐에로기가 주인공인 식당들이다. 이 식당의 종업원들은 알록달록 만두가 그려진 앞치마를 입고 있었고 벽에는 블루벨벳에 나오는 잘린 귀 같은 만두 장식이 붙어 있어서 그 귀를 잡고 암벽등반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날씨가 좀 추웠었나. 지나가다가 얼핏 봤는데 비좁은 공간에 손님들이 옹기종기 가득 앉아있는 것이 너무나 아늑해 보여 찜해놓고 더 걷다가 돌아가는 길에 들어갔다. 음식은 리투아니아 음식과 거의 ..
Warsaw 09_바르샤바의 코페르니쿠스 도시 속의 조각들, 동상들을 좋아한다. 빌니우스 구시가에 특히나 조형물들이 많아서 으례 익숙해진 것인지 어딜 가도 늘 몇 개는 지나치게 되는 그런 것들이 사람들에게 추억의 좌표처럼 남는 것이 좀 감동적이라고 해야 할까. 간혹 이념 문제로 없어지고 옮겨지고 하는 것들도 종종 있지만 그 주위를 지나치고 약속을 잡고 걸터앉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책을 읽던 누군가의 기억은 강제로 끌어내 박멸하기 힘든 것들이다. 바르샤바에서 지냈던 숙소 근처에 코페르니쿠스 동상이 있었다. 코페르니쿠스는 쇼팽과 함께 바르샤바의 슈퍼스타였다. 바르샤바에서 아침에 집을 나설때도 온종일 신나게 걷다가 밤이 되어 집으로 돌아갈 때에도 며칠간 매일 마주쳤던 코페르니쿠스. 건물에 비친 뒷모습에서 오히려 더 생동감이 느껴진다. 근데 처음엔 코..
유로 동전의 무게 리투아니아에서는 11월 1일 부터 5000 유로까지만 현금 계산이 가능하다. 리투아니아에서 여행을 하다가 현금 5001유로를 주고 일시불로 계산 할 수 있는게 뭐가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떠오르지 않으니 불법 행위를 저지를 확률도 낮은것으로. 월급도 은행 이체만 가능하다. 현금 안 받는 카페들도 많고 현금 쓸 일이 점점 없어지지만 보통 공병을 팔고 돈을 받거나 버스 시간에 임박해서 버스 안에서 기사 아저씨에게 바로 표를 사야할때 현금을 낸다거나 하면 동전이 생긴다. 그런데 이 동전들이 모이면 또 꽤 무겁다. 셀프 계산대에서 계산을 하려고 카드를 꺼내다가 무거운 지갑을 비울겸 동전을 넣었는데 또 이만큼의 거스름 돈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소비를 했으니 말 그대로 지갑은 가벼워졌다. 동전구에 누워계신 후..
키프로스의 유로 동전 - 키레니아의 배 (10ct,20ct,50ct) 유로 동전 속에서 항해 중인 배 한 척을 보면서 한국의 100원짜리 동전에 새겨진 이순신 장군님을 떠올렸다. 이순신 장군님의 모습도 충분히 타당하고 멋있지만 거북선이 그려진 동전이었더라면 어땠을까 그냥 상상했다. 사실 동전에 새겨진 이순신 장군의 모습은 바다 위에서 전투를 지휘하는 장군의 모습이라기보다는 문관의 모습에 가까워서 다른 지폐에 그려진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의 모습과 별 차이를 느낄 수 없다. 왠지 이순신 장군의 머릿속은 백성의 안위와 앞으로 벌어질지 모르는 전투들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어서 운동 에너지로 충만한듯한 느낌인데 동전 속에서는 장군의 공을 치하하려는 왕을 알현하기 위해 목욕재계하고 평소에 안 입던 옷을 입고 한양으로 올라가실 때의 느낌처럼 너무 정적이랄까. 해야 할 연구가 산..
카페가 생기는 순간. 필요한 사진이 있어서 찾다가 급 지울 사진들을 적당히 지우며 사진 정리를 하다가 찾은 몇 장의 사진. 카페 오픈 전에 커밍쑨~ 하는 사진들인데 그래도 이 카페들은 여태껏 살아남았다. 대략 사오년전 이다. 사진을 보다 보니 락다운 되기 직전에 갔다가 그때 마신 커피가 마지막이 되어서 문 닫은 카페들도 많았다. 러시아 드라마 씨어터 앞에 있는 카페인인데, 이 장소에 들어온다고 했을 때 참 좋았다. 극장에 보통 있을 법한 카페테리아가 없으니 연극 볼 때 가면 되겠다 싶었으니. 이 거리가 참 조용하고 창밖으로 로맹가리 동상도 보이고 한가하고 좋아하는 지점. 여기도 아직 있다. 이곳 커피가 맛있긴 한데 계단을 올라가거나 내려가야하는 매장의 카페들은 왠지 잘 안 가게 된다.
Warsaw 08_올 가을 바르샤바의 마지막 커피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을 맹신하며 마지막이라는 단어를 꽤나 조심스럽게 사용하는 편이라 마지막을 한정하는 말들은 최대한 세부적으로 소심하게 좁혀 쓴다. 터미널 근처에 와서 밤차를 탈 때까지 코스타 커피에서 시간을 보냈다. 혼자서 서둘 곳이라곤 없으니 역시 오래 앉아 있어도 자리가 불편하지 않은 이런 대형 카페에 머물게 된다. 며칠 전 바르샤바에 아침 6시에 도착해서 중앙 역을 향해 걸어갈 때 처음 봤던 카페였지만 그래도 다소의 추억이 남아 있을 중앙역까지 가서 아침 커피를 마시자는 생각에 카페인의 유혹을 뿌리치고 내 갈길을 갔었다. 이렇게 '다음에 오면 되니깐 우선 딴 데부터 가자' 하고 안 가는 경우 아예 갈 기회를 놓쳐버릴 때가 있는데 8차선 도로를 건너기 싫었던 게으름 덕분에 계획대로 오게 되었다. 앉..
Warsaw 07_ 바르샤바의 타투 스튜디오 친구를 베를린행 기차에 태워 보내고 중앙역에서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불과 며칠 전에 걸어왔던 길의 오른쪽 풍경이 왼쪽 풍경이 되자 그때는 보이지 않던 또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라며 아직 끝나지 않은 여행의 감흥을 애원하듯 붙들고 계속 직진한다. 8차선 도로를 쭈욱 걸어가고 있자니 가끔 방문했던 거대 식물원 가는 길의 춥고 공기 나쁜 하얼빈 생각도 나고 цум 백화점이 있던 모스크바의 어떤 큰 대로도 생각이 났다. 이제 나에게 이런 광활한 도로는 한없이 비현실적인 공간이다. 그 단조로움의 대열들이 수타면 장인이 한없이 늘리는 면 반죽과 같았으니 처음엔 어안이 벙벙하다가 좀 지나면 그 조차도 익숙해져서 종국엔 그저 펄펄 끓는 빨간 국물 속의 쫀득한 면만을 기대하게 한다. 아침으로 우육면을 먹어서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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