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휴가 (909) 썸네일형 리스트형 캅카스의 사카르트벨로 요즘 마트에 뼈대가 보이는 비교적 매끈하고 친절하게 생긴 등갈비가 팔기 시작해서 한번 사 와봤다. 친절한 등갈비는 오래 삶아서 그냥 소스를 발라 구워 먹었고 다음날 냄비에 남은 육수를 보니 본능적으로 쌀국수가 생각이 나서 팔각과 카다멈, 시나몬 스틱 등의 향신료의 왕족들을 살포시 넣으니 은근슬쩍 쌀국수 육수가 만들어졌다. 쌀국수에 몇 방울 간절히 떨어뜨리고 싶었던 스리라차 같은 소스가 없어서 뭘 넣을까 하다가 조지아 그러니깐 그루지야 그러니깐 사카르트벨로의 양념장인 아지카를 꺼내서 대충 피시소스와 섞어서 함께 먹었다. 아지카라는 이 이름부터 캅카스적인 소스는 빌니우스를 처음 여행하던 시기에 처음 알고 즐겨 먹게 되었는데 캅카스식 뻴메니나 샤슬릭 같은 것과 주로 먹지만 때에 따라서는 고추장처럼 사용하게도 .. Vilnius 161_4월의 아인슈타인 요 며칠 갑자기 맥머핀이 생각나서 토요일에 아침으로 먹기로 나름의 계획을 세웠다. 밤에 이동을 하며 여행을 하던 때에는 새로운 도시에 도착해서 호스텔 체크인 직전까지의 배회를 위해 화장실을 쓰고 아침을 먹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어서 이 작은 음식에 약간의 향수가 있다. 어딘가에서 만들어진 아침을 먹기 위해 일어나자마자 굳이 옷을 챙겨 입고 나가는 귀찮음에 웃음이 나왔지만 순식간에 안락하고 따사로운 기운에 사로잡혔다. 4월이 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칼바람이 불며 날씨가 걷잡을 수 없이 사나워졌다. 따뜻한 커피 한 잔에 달걀과 치즈가 들어간 맥머핀을 먹고 속이 든든해져서 돌아오는데 아인슈타인이 너무 추워 보인다. 빌니우스 버스터미널을 빠져나와 구시가를 향하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지나치는 건물. 그러니 중앙.. Egypt 11_카이로의 쿠샤리 여기는 카이로의 프랜차이즈 쿠샤리 가게였다. 이층이 따로 있어서 연신 구경을 하며 아랍 음식 특유의 매콤함에 경도되었다. 대략 설명하자면 짧은 버미셀리가 섞인 바스마티류의 쌀밥에 바삭하게 튀긴 양파며 콩이며 마카로니를 섞은 베이스 위에 알싸한 향신료들이 섞인 토마토 소스를 한 국자 퍼서 넣어주면 섞어서 먹는 음식. 아직 고집스러운 미각이 자리잡기 이전엔 모든게 꿀맛이었다. 음식이 맛있으려면 사실 미각조차도 중요한것이 아닌걸 알아버렸지만. Egypt 10_팔라펠 아저씨 마트에 팔라펠 믹스가 새로 나왔길래 사 와서 만들어 보았다. 물만 붓고 조금 기다리면 반죽이 걸쭉해져서 바로 숟가락으로 떠서 튀길 수 있게 되어있다. 룩소르의 골동품 시장에서 팔라펠을 만들고 있던 아저씨가 생각났다. 그때 난 아마 조그만 일인용 원형 양탄자를 사고 기분이 몹시 좋았던 순간이었다. 인생 첫 팔라펠은 유난히 초록색이었고 아마 벌어진 피타빵 속에 토마토 오이 샐러드와 같이 넣어 먹었을 거다. 뷰파인더를 통해서만 주변을 관찰할 수 있었을 땐 그만큼에 해당하는 박자와 예의 같은 것이 따로 있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나 하면 막상 또 그런 것 같지도 않다. 나이가 아무리 들어도 사람의 내면에 자리 잡는 속도와 마음가짐은 결국 그 자신이 20대에 누렸던 가장 안락한 지점에 수렴되는 것 같다. 13시의 엠빠나다와 커피. 스포티파이에서 슈게이징과 로우 파이 장르를 랜덤으로 걸어놓고 듣다가 Bubble Tea and Cigarettes 란 밴드를 알게 되었다. 요즘 같아선 드림팝을 베이스로 한 음악들이 유행을 하는 세월도 찾아오는구나 싶어서 신기하다가도 너무 귀에 쏙들어오는 멜로디들에선 아쉽게도 곡 전체가 산으로 가는 듯한 슈게이징 특유의 헤매는 멋은 없는것같아 결국 90년대 슈게이징 시조새들의 음악에 더 빠져들게 된다. 아무튼 이 밴드도 등록곡이 많지 않아서 들은 곡을 듣고 또 듣고 했는데 조금은 검정치마를 떠올리게도 했지만 결정적으로 공일오비의 멜로디를 슈게이징화한듯한 느낌에 꽂혀서 오히려 90년대 가요들이 많이 생각났다. 제일 먼저 듣고 귀를 쫑긋 세우게 했던 노래는 5AM Empanada with you. 빌니우스에.. Russia 12_한편으로는 그저 여전한 것들에 대해서 언어라는 것은 마냥 신기하다. 모든 언어가 그런 것은 아니다. 그 단어의 의미 그 이상의 살아 숨 쉬는 느낌을 가져버린 그런 언어와 단어들이 있다. 꿈을 꾸며 배웠던 언어들이 보통 그렇다. 가령 말라꼬에 대해서라면 난 우유를 마신다기보다는 말라꼬를 마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흘롑은 단지 빵이기 이전에 이미 흘롑이고 울릿쨔는 시작과 끝이 있는 통로라기보다는 모든 시대에서 동시에 쏟아져 나온 결코 진화하지 않는 사람들이 부대끼는 커다란 공동이다. 쵸르니는 이 세상에는 없는 농도의 검음이며 스따깐은 아무리 떨어뜨려도 깨지지 않을 그 무엇이다. 16년 전 이번 주는 뻬쩨르에 있던 날들이다. 짧은 감상 두 영화. '슬픔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영화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중경삼림이나 접속, 베를린 천사의 시와 같은 팔구십년대 영화들이야말로 멜랑콜리를 알려줬다.' 이런 대사가 나온다. 배우 유태오가 직접 연출하고 연기한 영화 '로그 인 벨지움'. 배우 자신의 지극히도 개인적인 감상이겠지만 깊이 공감했다. 이것이 이 짧고도 다소 오그라들수도 있는 자전적인 기록 영화를 관통하는 대사이다. 인간이라면 그 자신의 깊숙한 곳에 자리잡아서 결정적인 순간에 건들여지는 자신만의 멜랑콜리가 있어야 한다고 넌시지 말하는 것 같다. 영원한 휴가의 앨리, 소년 소녀를 만나다의 알렉스를 움직였던 그런 보이지 않는 힘 말이다. 자신을 성찰하는 배우의 모습이 극영화 속의 주인공으로 그대로 확장된다면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진다. 그런 영화.. 리투아니아어 87_어둠 Tamsa 세상의 여러 전쟁들 중엔 알려지면 알려질수록 길면 길어질수록 누군가에게는 이로운 전쟁, 그러니 구조적으로 알려지지 않으면 안 되는 전쟁과 알려져 봤자 별로 좋을 것도 없고 관심도 못 받을 테니 알려지더라도 묻히고 근본적으로 알려지지 조차 않는 그런 전쟁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전쟁들이 대외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와 상관없이 그의 영향 아래 놓여 있는 힘없는 사람들의 고통은 매한가지로 참혹한 것이다. 그러니 새삼 전쟁이 나면 알려질 가능성이 높은 위치에 살고 있다는 게 최소한 다행이라는 우습고도 자조적인 생각이 들었다. 전쟁은 그렇게 쉽게 일어나지 않겠지만 지금 피난길에 오른 사람들의 얼마 전 일상도 아마 쉽게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믿고 싶었던 전쟁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했겠지. 삶의 터전을 등지고.. 이전 1 ··· 19 20 21 22 23 24 25 ··· 11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