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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lnius Chron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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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lnius Restaurant 02_Submarine 한국처럼, 여러 아시아 국가처럼 다양한 먹거리를 가진것은 참 행운이다. 한편으로는 정말 먹기 위해 살고 일한다는 느낌이 들때도 있지만 좋아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는것만큼 즐거운 일이 또 있을까. 게다가 맛있는게 너무 많아서 항상 뭘 먹을지 고민해야 한다면. 그런데 오랫동안 한국을 떠나 멀리서 한국 생활을 관조하고 있자니 그렇게 많은 먹거리들중에 정작 먹던 음식은 항상 정해져있었던것 같다. 다음에 한국을 방문하면 많은것을 먹어보겠다 다짐하지만 아마도 결국은 또 엄마가 해준 집밥만 먹고 올게 뻔하다. 리투아니아에서는 뭘 먹을까. 특히 밖에나가서 먹을 수 있는 메뉴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그 종류가 그리 많지 않다. 물론 매년 거리 분위기가 바뀌고 식당의 지형도가 바뀐다는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빌니우스..
Vilnius Restaurant 01_ Blusynė 여행중이든 일상속에서든 기분 좋은 한끼를 위해 헤매다가 이렇게 밖에서 두리번 두리번거리게라도 하는 식당이 있다면 일단 들어가보는것이 좋다. 들어갔는데 지금 땡기지도 않는 음식만 메뉴에 잔뜩 있으면 어쩌지, 직원이 영어를 못하면 어쩌지라는 고민은 개에게나 줘버리고 우선은 들어가서 두리번거리는게 낫다. 특히 빌니우스 구시가지에 인적이 드문 이런 거리에서 빛바랜 건물 외벽에 군데군데 페인트 칠이 벗겨진 레스토랑을 발견했다면, 예쁘게 꾸미려 노력한 흔적도, 옥외 메뉴판에 공들인 흔적도 없는 그런 식당을 발견했다면 말이다. 그것은 비단 여행자에게만 국한된것은 아닌것 같다. 매일매일 도시를 걸으면서도 거리 이름도 모른채 지나다니는 현지인들에게도 해당사항이다. 이런 한적한 거리속의 좁은 입구를 가진 뭔가 폐쇄적이고 ..
Vilnius 14_루디닌쿠 거리 Rūdininkų gatvė 수년간 매년 임시 거주권을 갱신하며 드디어 영주권자가 되었지만 한국에서도 빌니우스에서도 세상 어디에도 영구적으로 정착하겠다는 생각은 없다. 언젠가 한국에 가서 살 생각이 있느냐, 언제까지 리투아니아에 살꺼냐는 물음에는 그래서 딱히 해줄말이 없다. 모든 가능성은 열려있고 한국도 리투아니아도 아닌 다른 어떤 곳이여도 상관없다. 보다 중요한것은 어디에서 사는것이 아닌 누구와 함께 그리고 어떤 시선으로 어떠한 삶을 사는것이니깐. 당장 떠날 생각도 언젠가 이곳 생활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도 없지만 아마도 언젠가 이곳을 떠나본 적 있는 여행자의 그 아스라한 느낌때문일까 일을 하고 생활을 하고 이곳의 주민으로 살아가지만 여전히 매일매일 여행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 여행자의 느낌을 잃고 싶지 않다는것이 어쩌면 ..
Vilnius 13_우주피스 (Užupis) 지금은 빌니우스의 몽마르뜨로 불리우기도 하는 예술가들, 보헤미안들의 동네 '우주피스 (Užupis)' 이지만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그럴듯한 명성을 가진것은 아니다. 가난한 젊은 예술가들의 구역이라는 낭만적인 이력을 품고 한껏 멋스러워지고 화려하게 소비되는 세상의 많은 구역들이 그렇듯이, 한때는 갱들의 구역이기도 했던 샌프란시스코의 소살리토나 젊은 예술가들이 모이던 뉴욕의 소호처럼 그리고 서울의 합정동이나 연남동, 심지어 신사동 가로수길 같은 공간들이 그렇듯이빌니우스의 우주피스 역시 비싼 임대료를 피해 그나마 접근성이 좋은 곳에 터를 잡고 젊은이들이 자유를 누리며 교류하던 공간이었다. 지금은 그 모든 지역들이 역설적이게도 돈없는 보헤미안들이 터를 잡기에는 턱없이 비싼 임대료의 핫플레이스로 변해버렸다. 빈궁..
Vilnius 12_ 빌니우스의 열기구 바람이 불지 않는 날. 빌니우스 하늘에서 알록달록한 열기구를 종종 발견할 수 있다. 높은 산도 건물도 없는 환경에 도심에서 고작 이십분 거리에 공항이 있음에도 항공기의 비행이 잦지 않다는 유리한 조건. 올드타운의 심장부에서 이렇게 열기구가 뜨고 내린다는것은 사실 신기한 일이다. 타려는 사람들과 태우려는 사람들의 왁자지껄함 속에서 열기구를 실은 트레일러가 하나둘 모여들고적당한 간격을 유지한 채 상기된 표정으로 때를 기다린다. 마치 웨딩 드레스를 정리하는 예식장 직원들처럼 기구를 꺼내 잔디 위에 조심스럽게 늘어 놓는다. 그리고 동시에 공기를 주입하기 시작했다. 데워진 공기에 오똑이처럼 일어난 바스켓에 상기된 표정의 탑승자들이 하나둘 오른다. 이 거대한 풍선은 내가 생각했던것보다 훨씬 치열한 모습으로 이륙했다..
Vilnius 11_뜨거운 와인과 크리스마스 내일이면 리투아니아 최대 명절인 크리스마스 연휴가 시작된다. 일반적으로 24일 저녁에 온 가족이 '크리스마스 이브 식탁'에 둘러 앉아 크리스마스를 기념하기 시작하지만 재작년까지만 해도 크리스마스 이브는 정식 공휴일이 아니었다. 24일이 평일일경우 대부분은 단축 근무를 하고 저녁때에 맞춰 부랴부랴 고향으로 떠나는 식이었는데 작년부터 크리스마스 이브가 정식 공휴일이 되었으니 공식적으로 크리스마스 당일 그리고 크리스마스 세컨드 데이까지 합해서 3일간의 휴일이 주어지게 된셈이다. 연간 4주라는 법정 유급 휴가가 주어지는 리투아니아에서 올해는 많은 이들이 쾌재를 불렀다. 23일이 월요일이고 27일이 금요일이니 조율이 가능한 사람들은 지난 21일부터 29일까지 황금연휴를 만끽하는 것이다. 크리스마스를 다른 나라에서..
Vilnius 10_행운의 말굽편자 어제 아빠 어디가를 보는데 성동일이 아들에게 비가 어떻게 해서 오는지 아냐고 묻는 장면이 있었다. 헉! 순간 뜨끔했다. 나한테 물어봤으면 난 그 아들처럼은 둘째치고 심지어 매니져처럼 재치있게 비는 호랑이가 장가가면 온다는 대답조차 못했을것 같다. 언젠가 고등학교 시절 지구과학 시험문제에도 등장했을거고 객관식이었으면 상식적으로 답을 골랐겠지만 꼬맹이의 똑부러지는 대답을 듣고 나니 난 구름이 끼면 비가 오지 라는 생각만 줄곧 했지 왜 구름이 생기는지를 주관식으로 물었다면 대답을 못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구름은 그냥 날씨가 안좋으면 끼는 걸로. 헐헐헐 이번 5월에 들어서는 오전 6시만 되도 자동적으로 눈이 떠진다. 물론 곧바로 다시 잠이 들긴 하지만. 햇살이 정말 부서진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바깥은 눈이 ..
Vilnius 09_빌니우스의 겨울 빌니우스에도 눈이 많이 내렸다 고개를 치켜들면 벌써부터 무시무시한 고드름이 달려있다. 자주 지나다니는 길들이 일방통행인곳이 많아서 보도블럭보다 차도로 걸어다니는게 더 나을정도이다. 두툼한 털 양말속에 바지를 집어넣고 묵직한 등산화를 신어야 그나마 녹아서 질퍽해진 눈 사이를 걸어갈 수 있을 정도인데 혹한과 폭설에 길들여진 유전자들이라 높은 겨울 부츠를 신고도 별 문제없이 잘 걸어다니는것 같다. 곳곳이 진흙탕 물인 거리를 마구 뛰어다녀도 종아리에 꾸정물 하나 안묻히던 인도인들의 유전자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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