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lnius Chronicle2015.06.11 05:59






수년간 매년 임시 거주권을 갱신하며 드디어 영주권자가 되었지만 한국에서도 빌니우스에서도 세상 어디에도 영구적으로 정착하겠다는 생각은 없다. 언젠가 한국에 가서 살 생각이 있느냐, 언제까지 리투아니아에 살꺼냐는 물음에는 그래서 딱히 해줄말이 없다. 모든 가능성은 열려있고 한국도 리투아니아도 아닌 다른 어떤 곳이여도 상관없다. 보다 중요한것은 어디에서 사는것이 아닌 누구와 함께 그리고 어떤 시선으로 어떠한 삶을 사는것이니깐. 당장 떠날 생각도 언젠가 이곳 생활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도 없지만 아마도 언젠가 이곳을 떠나본 적 있는 여행자의 그 아스라한 느낌때문일까 일을 하고 생활을 하고 이곳의 주민으로 살아가지만 여전히 매일매일 여행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 여행자의 느낌을 잃고 싶지 않다는것이 어쩌면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그렇기에 지금 보고 있는 이 평화로운 광경들이 왠지 영원하지 않을지 모른다는 감정에 때때로 사로잡힌다.  갑자기 떠나버리게되면 그리워질까봐 혹은 선명히 기억해낼 수 없어 후회할까봐 끊임없이 쳐다보고 또 쳐다보게 된다.  몇시쯤 몇시방향에 서서 고개를 들었을때 오래된 건물위에 드리워진 그림자의 모습을 기억할 수 있다면, 어떤 거리의 어떤 귀퉁이에 갑자기 나타나도 내가 어디에 있는지 곧바로 파악해낼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하며 끊임없이 두리번거리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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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lnius Chronicle2015.06.08 20:02




지금은 빌니우스의 몽마르뜨로 불리우기도 하는 예술가들, 보헤미안들의 동네 '우주피스 (Užupis)' 이지만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그럴듯한 명성을 가진것은 아니다. 가난한 젊은 예술가들의 구역이라는 낭만적인 이력을 품고 한껏 멋스러워지고 화려하게 소비되는 세상의 많은 구역들이 그렇듯이, 한때는 갱들의 구역이기도 했던 샌프란시스코의 소살리토나 젊은 예술가들이 모이던 뉴욕의 소호처럼 그리고 서울의 합정동이나 연남동, 심지어 신사동 가로수길 같은 공간들이 그렇듯이

빌니우스의 우주피스 역시 비싼 임대료를 피해 그나마 접근성이 좋은 곳에 터를 잡고 젊은이들이 자유를 누리며 교류하던 공간이었다. 지금은 그 모든 지역들이 역설적이게도 돈없는 보헤미안들이 터를 잡기에는 턱없이 비싼 임대료의 핫플레이스로 변해버렸다.  빈궁한 빌니우스의 보헤미안들은 펍이나 레스토랑에 들어가는 대신 좁은 폭의 강에 삼삼오오 모여 병맥주나 싼 보드카를 들이켰다. 날이 따뜻해지기 시작하면 지금도 역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광경이며 우리 역시도 여럿의 친구들과 모일때면 노천 카페나 식당 대신 야외에 머물기를 즐긴다. 공공장소에서 알콜 음용이 불법인 현재 대놓고 맥주를 병째 들이키거나 할 수 없지만, 가끔씩 경찰이나 혹은 근처 식당에 고용된 경비들의 제재를 받기도 하지만

그것이 빌니우스 젊은이들의 포기하고 싶지 않은 권리임에는 틀림없다. 빌니우스의 여름은 너무 짧고 한여름밤은 너무 기니깐.  빌니우스 구시가지 한켠의 길고 긴 언덕을 끼고 이어지는 우주피스 역시 한때는 빌니우스 구시가지에서도 가장 싼 땅값의 지역이었다. 관광객이 모이는 동네들이 늘상 그렇듯 요즘의 우주피스는 예쁜 빵집과 레스토랑이 가득하지만

좀 더 깊은곳을 파고 들어가면 많은 버려진 건물들과 지금은 기능을 상실한 소비에트 시대의 대규모 공장 부지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이미 건축 허가를 받아 접근 금지 구역으로 폐쇄되어 포크레인으로 곳곳이 깊게 패어진 장소들이 있으며

뻥뚫린 창문에 불에 탄 흔적만 지닌채 유령처럼 서있는 주인없는 건물들이 있다. 그리고 얼마후 그런 자리들에 멋스럽게 디자인된 가정집들이 들어서리란것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건축업자와 부동산업자들에겐 더할나위없이 매력적인 구역이겠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9년전에 여행와서 머물렀던 호스텔 주변의 풍경이 계속 바뀌는것 같아 아쉽다. 그 변화를 멈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면 아마도 그곳의 사진을 남기는것 뿐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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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lnius Chronicle2014.07.04 06:23




바람이 불지 않는 날. 빌니우스 하늘에서 알록달록한 열기구를 종종 발견할 수 있다. 높은 산도 건물도 없는 환경에 도심에서 고작 이십분 거리에 공항이 있음에도 항공기의 비행이 잦지 않다는 유리한 조건. 올드타운의 심장부에서 이렇게 열기구가 뜨고 내린다는것은 사실 신기한 일이다.








타려는 사람들과 태우려는 사람들의 왁자지껄함 속에서 열기구를 실은 트레일러가 하나둘 모여들고

적당한 간격을 유지한 채 상기된 표정으로 때를 기다린다. 마치 웨딩 드레스를 정리하는 예식장 직원들처럼 기구를 꺼내 잔디 위에 조심스럽게 늘어 놓는다. 그리고 동시에 공기를 주입하기 시작했다. 








데워진 공기에 오똑이처럼 일어난 바스켓에 상기된 표정의 탑승자들이 하나둘 오른다. 이 거대한 풍선은 내가 생각했던것보다 훨씬 치열한 모습으로 이륙했다. 남겨질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조급해하며 떠나지 못해 안달 난 사람처럼.

널찍했던 트레일러 사이의 간격은 순식간에 채워진 공기에 터질듯 협소해졌다. 지나가던 사람들도 걸음을 멈추고 이륙을 구경했다.







열기구가 적정고도에 다다르면 열기구내에서 서비스로 샴페인을 터트린다고 한다.  사라져가는 열기구를 보며 구경꾼들은 황급히 자리를 떴다.  바람이 불지 않는 따뜻한 날 차갑게 데워진 샴페인을 들고 다시 찾아와야겠다.  7월에 접어들었는데도 10도에서 15도를 맴도는 기온. 모두가 여름을 돌려달라고 아우성치는 요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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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lnius Chronicle2013.12.24 05:45







내일이면 리투아니아 최대 명절인 크리스마스 연휴가 시작된다. 일반적으로 24일 저녁에 온 가족이 '크리스마스 이브 식탁'에 둘러 앉아 크리스마스를 기념하기 시작하지만  재작년까지만 해도 크리스마스 이브는 정식 공휴일이 아니었다. 24일이 평일일경우 대부분은 단축 근무를 하고 저녁때에 맞춰 부랴부랴 고향으로 떠나는 식이었는데  작년부터 크리스마스 이브가 정식 공휴일이 되었으니 공식적으로 크리스마스 당일 그리고 크리스마스 세컨드 데이까지 합해서 3일간의 휴일이 주어지게 된셈이다. 연간 4주라는 법정 유급 휴가가 주어지는 리투아니아에서 올해는 많은 이들이 쾌재를 불렀다. 23일이 월요일이고 27일이 금요일이니 조율이 가능한 사람들은 지난 21일부터 29일까지 황금연휴를 만끽하는 것이다. 크리스마스를 다른 나라에서 보내는것도 한편으로는 좋은 경험이겠지만  익숙한곳에서 마음껏 축축 늘어지면서 편히 쉬는것 또한 나쁘지 않다. 어쩌면 그게 가장 현명한 선택일지도.







리투아니아의 12월은 몹시 분주하다. 오후 4시가 되면 이미 어둠이 가라앉는 거리,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에게서 들뜬 기분을 감지하는것은 어렵지 않다. 참으로 구태의연하지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크리스마스만 같아라'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정말 사람들이 항상 이렇게 행복한 표정을 하고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리투아니아에서도 크든 작든 대부분의 집에서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한다.  난 그냥 슈퍼에서 사먹은 초콜렛 틴 케이스로 대신하기로 했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오면 마트 주류 코너에 등장하기 시작하는 글뤼바인. 짐작컨데 프랑스나 저기 독일 같은곳에서 시작된 전통이려나. 북유럽쪽일까. 적어도 이 와인은 독일산이다. 크리스마스 전에 대략 4000원 정도에 마트에 깔리고 갑자기 가격이 오르기도 하며 크리스마스 후에 운이 좋으면 2000원까지 내린다. 두고두고 마시겠다는 기분으로 여러병 살 수도 있겠지만 같은 겨울이어도 2월보다는 12월에 어울리는 이 놈. 일년에 한 두번 정말 마시고 싶을때 마셔야 맛있는 그런 놈이다. 어둡고 쌀쌀한 골목을 걸을때 따뜻한 실내조명 아래 도란도란 앉아 얘기를 나누는 사람들을 볼때면 항상 생각나는 뜨거운 와인. 뭐랄까 맛은 다르지만 정종을 데워먹는 정서와 비슷한것 같다.






모르긴 해도 이 뜨거운 와인에 딸린 레시피도 수천가지일거다. 사실 이 와인 자체가 계피와 정향, 오렌지를 이미 함유한 상태라서 그냥 바로 끓여 먹어도 큰 상관은 없다. 저기 계피 스틱이나 정향 같은 것이 어떤 풍미를 더해주는것은 확실하지만  일반 와인을 끓이는 경우라면 모를까 이 글뤼바인을 끓이는데에 반드시 필요한것도 아니다. 불가사리 모양의 아나이스나 통후추, 생강,오렌지,자몽, 레몬을 넣는 사람들도 있고  설탕을 첨가하기도 한다. 와인을 끓일때 그냥 뜯어서 쏟아 붓기만 하면 되는 간편한 첨가제를 팔기도 한다.  나는 최소한 오렌지와 시나몬 정도를 넣어준다. 그리고 가가멜이 스프를 끓이는 마음가짐으로 끓어 오르기 전까지 잠시 저어주면 된다. 







이 정향의 생김새는 그냥 뭔가 사랑스럽다. 달팽이 눈 같기도 하고 사슴 뿔 같기도 하고 봄의 새순 같기도 하다.

신은 정향에게 귀여움을 주신 대신 곧바로 씹어 먹을 수 없는 인간과의 거리감도 동시에 주신듯. 일종의 민간요법인데 치통이 심할때 소량의 보드카에 정향을 넣어 우려낸 것을 솜에 적셔 물고 있는 경우도 있다. 말린 사과를 끓이는 겨울 음료에도 이 정향을 넣는다. 






빨대로 마셔야 더 맛있다.

몹시 뜨거우므로 천천히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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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lnius Chronicle2013.05.19 02:53

 

 



어제 아빠 어디가를 보는데 성동일이 아들에게 비가 어떻게 해서 오는지 아냐고 묻는 장면이 있었다. 헉! 순간 뜨끔했다. 나한테 물어봤으면 난 그 아들처럼은 둘째치고 심지어 매니져처럼 재치있게 비는 호랑이가 장가가면 온다는 대답조차 못했을것 같다. 언젠가 고등학교 시절 지구과학 시험문제에도 등장했을거고 객관식이었으면 상식적으로 답을 골랐겠지만 꼬맹이의 똑부러지는 대답을 듣고 나니 난 구름이 끼면 비가 오지 라는 생각만 줄곧 했지 왜 구름이 생기는지를 주관식으로 물었다면 대답을 못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구름은 그냥 날씨가 안좋으면 끼는 걸로. 헐헐헐




 


 



이번 5월에 들어서는 오전 6시만 되도 자동적으로 눈이 떠진다. 물론 곧바로 다시 잠이 들긴 하지만. 햇살이 정말 부서진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바깥은 눈이 부실 정도로 밝다. 오전부터 오후 세네시까지 바람 한점 없이 쨍쨍하다가 갑자기 구름이 몰려오면서 비가 내리는 날씨의 연속이다. 정말 요새 빌니우스의 날씨를 보고있자면 수증기가 모여서 무거워지면 비가 내린다는 그 대답이 실감이 난다. 리투아니아에 한국의 장마처럼 집중적으로 비가 내리는 시기가 있는것은 아니지만 여름이 지나고 나면 맑개 개인 날이 드물고 흐리고 구름낀 날씨의 연속이다. 비는 항상 갑자기 한바탕 쏟아지고는 사라진다. 비가 와도 급하게 뛰는 사람들은 없고 대부분은 걸음을 멈추고 기다린다. 다들 경험을 통해서 내리자마자 금새 멈출 비라는것을 아는것 같다.



 

 




네잎 클로버처럼 말의 편자도 여러나라에서 행운을 상징하는데 리투아니아에서도 그렇다. 물론 모든 리투아니아의 가정에서 발견할 수 있는것은 아니지만 리투아니아에도 집에 말의 편자를 걸어두는 풍습이 있다. 보통은 들어오는 현관문의 위쪽에 걸어두는데 우리집은 네버엔딩 집수리때문에 안되고 적합한 장소를 찾은곳이 바로 이곳. 말의 편자는 네잎 클로버처럼 거저 굴러들어온 행운보다는 열심히 성실하게 일해서 스스로 얻은 행운을 상징한다고한다. 말굽에 편자를 박는 경우는 경주마이거나 일하는 말인 경우가 대부분이기때문이다. 그렇게해서 얻은 행운이 새어나가지 않게 하기위해서 움푹 패인부분을 위로해서 걸어 놓는다. 아주 오래전에 생긴 녹슨 편자를 고이 간직해놓았다가 이사오자마자 바로 걸어놓았다. 등에 걸린 저 물건을 봐서는 말도 전생에 자유롭게 뛰어다니던 야생마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저 편자는 머리도 없는 이 가여운 목마에게서 나온걸로 하자. 지금까지 우리에게 가져다 준 행운만큼은 아니더라도 앞으로도 쭉 부탁할께.



 

Posted by 영원한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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