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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lnius Chron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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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lnius 17_루디닌쿠 서점 Rūdininkų knygynas 대부분의 약국과 서점이 체인 형식으로 운영되는 리투아니아. 헌책방이나 북카페가 아니라면 개인이 운영하는 순수 개념의 동네 서점을 찾기 힘든데 빌니우스 구시가지에 꼿꼿하게 허리를 세우고 자리잡고 있는 서점이 있으니 바로 루디닌쿠 서점이다. 카페나 음식점이 자리 잡기에는 너무 아담한 거리이지만 서점 바로 근처에 카페 체인이 하나 들어서면서 서점은 왠지 더 서점다워졌고 카페는 더욱 카페스러워졌다. 서점 안에 들어선 미니 카페 컨셉은 너무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전략이어서 마음에 들지 않아 쉽사리 들어가지지 않는다. 그저 책을 읽고 싶은 이들도 그저 커피를 사이에두고 마냥 수다를 떨고 싶은 이들, 아무도 편치 않은 넉넉하지 않은 아우라를 주기 때문인데 이렇게 약간의 거리를 두고 위치해 있는 서점과 카페를 보니 ..
Vilnius 16_빌니우스의 오래된 발코니 빌니우스 구시가지를 걷다보면 흔히 볼 수 있는 풍경. 바로 녹색 그물망으로 아랫부분이 꽁꽁 싸매어진 발코니이다.겨우내 쌓인 눈이 녹기 시작하면 건물 처마 밑의 거대한 고드름이 무서워서 인도로 걷더라도 긴장하게 되는 구시가지인데 고드름말고도 또 다른 골칫거리가 바로 이 오래된 발코니에서 떨어지는 콘크리트 부속물들. 땅아래에 이미 떨어져서 산산조각난 일부 콘크리트 조각을 보면 그 순간에 지나가지 않은게 얼마나 다행인지 가슴을 쓸어내리게 된다.예전에 우리집 베란다를 떠올리면 그곳엔 계절이 지나 더이상 필요없게 된 물건들을 넣어 놓을 수 있는 선반 같은것이 있었고물 빠질 배수구가 있으니 호스를 끌어와 화초들에 흠뻑 물을 줄 수도 있었고 빨래를 널 수 있는 기능은 물론 첫번째로 중요한 기능이었을테고하지만 베란다에..
Vilnius 15_오래된 극장, Skalvija kino centras 1963년부터 50년 넘게운영되고 있는 빌니우스의 토종 극장. 스칼비야. 제발 문닫지 않고 오래도록 남았으면 하는 빌니우스의 몇몇장소 중 하나이다. 극장 프로그램을 식당에 가져다 놓아도 되냐는 부탁에 동의한 이후로 매월 초 부클릿과 함께 우리 직원들을 위해 두세장의 초대권도 함께 가져온다. 개인적으로는 보고싶은 흑백영화가 있을때 초대권을 가져가서 보는편인데 식당의 어린 아르바이트생들은 주로 어떤 영화를 보는지 사뭇 궁금해진다. 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들은 주로 비주류, 비상업적인 영화들인 경우가 많은데 보기힘든 리투아니아의 옛날영화라든가 외국 문화원이나 대사관과 연계해서 특정 감독의 회고전을 열기도 하고 매년 9월이면 빌니우스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를 개최하며 얼마전에 폐막한 국제 영화제 '키노 파바사리스..
Vilnius 14_루디닌쿠 거리 Rūdininkų gatvė 수년간 매년 임시 거주권을 갱신하며 드디어 영주권자가 되었지만 한국에서도 빌니우스에서도 세상 어디에도 영구적으로 정착하겠다는 생각은 없다. 언젠가 한국에 가서 살 생각이 있느냐, 언제까지 리투아니아에 살꺼냐는 물음에는 그래서 딱히 해줄말이 없다. 모든 가능성은 열려있고 한국도 리투아니아도 아닌 다른 어떤 곳이여도 상관없다. 보다 중요한것은 어디에서 사는것이 아닌 누구와 함께 그리고 어떤 시선으로 어떠한 삶을 사는것이니깐. 당장 떠날 생각도 언젠가 이곳 생활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도 없지만 아마도 언젠가 이곳을 떠나본 적 있는 여행자의 그 아스라한 느낌때문일까 일을 하고 생활을 하고 이곳의 주민으로 살아가지만 여전히 매일매일 여행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 여행자의 느낌을 잃고 싶지 않다는것이 어쩌면 ..
Vilnius 13_우주피스 (Užupis) 지금은 빌니우스의 몽마르뜨로 불리우기도 하는 예술가들, 보헤미안들의 동네 '우주피스 (Užupis)' 이지만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그럴듯한 명성을 가진것은 아니다. 가난한 젊은 예술가들의 구역이라는 낭만적인 이력을 품고 한껏 멋스러워지고 화려하게 소비되는 세상의 많은 구역들이 그렇듯이, 한때는 갱들의 구역이기도 했던 샌프란시스코의 소살리토나 젊은 예술가들이 모이던 뉴욕의 소호처럼 그리고 서울의 합정동이나 연남동, 심지어 신사동 가로수길 같은 공간들이 그렇듯이빌니우스의 우주피스 역시 비싼 임대료를 피해 그나마 접근성이 좋은 곳에 터를 잡고 젊은이들이 자유를 누리며 교류하던 공간이었다. 지금은 그 모든 지역들이 역설적이게도 돈없는 보헤미안들이 터를 잡기에는 턱없이 비싼 임대료의 핫플레이스로 변해버렸다. 빈궁..
Vilnius 12_ 빌니우스의 열기구 바람이 불지 않는 날. 빌니우스 하늘에서 알록달록한 열기구를 종종 발견할 수 있다. 높은 산도 건물도 없는 환경에 도심에서 고작 이십분 거리에 공항이 있음에도 항공기의 비행이 잦지 않다는 유리한 조건. 올드타운의 심장부에서 이렇게 열기구가 뜨고 내린다는것은 사실 신기한 일이다. 타려는 사람들과 태우려는 사람들의 왁자지껄함 속에서 열기구를 실은 트레일러가 하나둘 모여들고적당한 간격을 유지한 채 상기된 표정으로 때를 기다린다. 마치 웨딩 드레스를 정리하는 예식장 직원들처럼 기구를 꺼내 잔디 위에 조심스럽게 늘어 놓는다. 그리고 동시에 공기를 주입하기 시작했다. 데워진 공기에 오똑이처럼 일어난 바스켓에 상기된 표정의 탑승자들이 하나둘 오른다. 이 거대한 풍선은 내가 생각했던것보다 훨씬 치열한 모습으로 이륙했다..
Vilnius 10_행운의 말굽편자 어제 아빠 어디가를 보는데 성동일이 아들에게 비가 어떻게 해서 오는지 아냐고 묻는 장면이 있었다. 헉! 순간 뜨끔했다. 나한테 물어봤으면 난 그 아들처럼은 둘째치고 심지어 매니져처럼 재치있게 비는 호랑이가 장가가면 온다는 대답조차 못했을것 같다. 언젠가 고등학교 시절 지구과학 시험문제에도 등장했을거고 객관식이었으면 상식적으로 답을 골랐겠지만 꼬맹이의 똑부러지는 대답을 듣고 나니 난 구름이 끼면 비가 오지 라는 생각만 줄곧 했지 왜 구름이 생기는지를 주관식으로 물었다면 대답을 못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구름은 그냥 날씨가 안좋으면 끼는 걸로. 헐헐헐 이번 5월에 들어서는 오전 6시만 되도 자동적으로 눈이 떠진다. 물론 곧바로 다시 잠이 들긴 하지만. 햇살이 정말 부서진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바깥은 눈이 ..
Vilnius 09_빌니우스의 겨울 빌니우스에도 눈이 많이 내렸다 고개를 치켜들면 벌써부터 무시무시한 고드름이 달려있다. 자주 지나다니는 길들이 일방통행인곳이 많아서 보도블럭보다 차도로 걸어다니는게 더 나을정도이다. 두툼한 털 양말속에 바지를 집어넣고 묵직한 등산화를 신어야 그나마 녹아서 질퍽해진 눈 사이를 걸어갈 수 있을 정도인데 혹한과 폭설에 길들여진 유전자들이라 높은 겨울 부츠를 신고도 별 문제없이 잘 걸어다니는것 같다. 곳곳이 진흙탕 물인 거리를 마구 뛰어다녀도 종아리에 꾸정물 하나 안묻히던 인도인들의 유전자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