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휴가 (907) 썸네일형 리스트형 30/8/2021 생각해보면 지난 8월은 이렇다 할 날씨가 없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듯 딱히 취향도 성질도 없는 완전히 정체된 공기 속에서 다 마른 것 같기도 하고 덜 마른 것 같기도 한 질긴 청바지 같은 날씨였다면. 간간히 실수인 듯 햇살을 내비치기도 하며 그렇게 8월이 흘러간다. 지갑 속에 웬일로 동전이 있어서 시장 근처의 오래된 과자 가게에서 과자 몇 개를 사서 돌아왔다. 깨물면 여기저기서 투박한 크림이 삐져나오는 묵직한 커피에 잘 어울리는 옛날 과자. 며칠 계속 비가 왔다. 이성경이 어떤 영화에서 불렀던 사랑은 창밖의 빗물 같아요와 비와 당신의 이야기에서 인상 깊었던 영화 주제곡들을 찾아들었다. 갑자기 이런 노래들이 뜬금없이 생각나는 순간이 있다. 후자는 특히나 옛날 그룹 모노의 메인 보컬과 목소리가 너.. 여름 종료 8월이 끝을 향한다. 저녁에 부엌 창가로 더 이상 볕이 들지 않는 대신 아침은 한층 어두워져 건너편 병원의 불빛이 훨씬 도드라졌다. 언젠가 십자가 언덕에 다다르는 와중에 쏟아지던 우박과 몰아치던 폭풍 그리고 얼마 후 거짓말처럼 내리쬐던 햇살을 떠올린다. 그 이후로 8월 이면 그런 우박과 햇살을 한 번쯤은 기다리게 된다. 그런데 이번 8월은 우박 없이 지나가려나보다. 비는 지속적으로 내리고 기온도 줄곧 떨어진다. 주말이면 사람들은 버섯 채집을 하러 이동한다. 정류장에서 양동이 가득 노란 버섯을 들고 버스에서 내리는 사람을 보았다. 끓인 다음에 양파와 판체타랑 잘 볶아서 크림에 졸여서 먹으면 정말 맛있는 버섯이다. 옛날 러시아 소설 읽다 보면 버섯 이야기는 단골이다. 말린 버섯을 할머니가 실에 꿰고 있는 장.. 7월 종료 쓰레기이지만 아름다운 것과 아름답지만 쓰레기인 것과 그저 아름다운 것에 관해 이야기하며 마시는 커피. 7월 중순 일주일간은 매우 무더웠다. 하지만 이 여름이 어처구니없이 짧을 걸 알기에 혹은 서울의 무더위를 (서울에서의 나의 마지막 여름이 15년 전 이었단걸 감안하면 또 지금의 여름과는 비교가 안 될 더위겠지만)아는 나에겐 이곳의 여름은 현지인들의 아우성과는 달리 완전히 견딜만한 종류의 것이다. 몇 번의 비가 가기싫다 버티고 있던 여름을 완전히 몰아낸것처럼 보일때도 있지만 8월에 내리쬐던 어떤 태양을 분명히 기억한다. Vilnius 158_안뜰 이 풍경에서 많은 이들이 떠오른다. 바르바라와 제부쉬낀이 그 중 일등으로 떠오른다. 대나무 막대기 에스프레소 신도심의 구석진곳에 있던 로스터리인데 얼마전에 구시가에 카페를 열었다. 이 카페 이름이 오래 전 자주갔던 신촌의 음악 감상실과 같아서 그냥 정이 간다. 피칸 파이가 너무 맛있어보여 잠시 뜨거운 커피를 먹을까 망설였지만 처음 온 카페의 신선하고 청량한 여름의 인상을 위해서 계획했던대로 토닉 에스프레소를 마셨다. 가능하면 구겨지는 잔이 아닌 깨지는 잔으로 마시는 커피가 더 맛있지만 특히 에스프레소 토닉은 다소 촌스럽기조차한 골진 도톰한 투명 유리잔 이외의 경우를 생각조차 할 수 없다. 날씨가 꽤 무덥다가 비를 한번 내리더니 민망할 정도로 서늘해졌지만 잠시 비가 갠 상태에서 구름 사이로 내리쬐는 태양은 부정할 수 없이 여름 태양이다. 물론 얼음 조각은 다 마시고 난 후에도 한참 머물러있겠지만. 다른 동네 커피 오랜만에 기차 여행. 이라고 하기에도 좀 그런게 빌니우스에서 출발하는 기차가 가장 처음으로 정차하는 역으로의 여행이다. 대략 8분 정도 걸리니 구시가 중심까지 걸어가는 시간이랑 비슷하고 결국 빌니우스인데 늘 올때마다 꽤나 먼곳으로 떠나왔다는 느낌이 든다. 한 시간에 한 대 지나가는 빌니우스행 기차를 기다리며 역 근처 슈퍼마켓 건물 뒤쪽 지하에 의심쩍은 모습으로 위치한 카페에 들렀다. 간판에 앵무새가 그려져있는 마틸다라는 카페. 주인은 당황했다. 주스나 잔술 따위를 파는 이 카페는 사실상 영업을 하고 있지 않은 상태였는데 낮부터 술을 마시는 것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사람들을 위해 구비해 놓은 것 같은 커피 기계를 이리 저리 만지더니 거의 15분만에 커피를 만들어냈다. 일주일째 30도가 웃도는 무더위이지만.. 여름 6월을 흔히 여름의 시작이라고 한다. 고작 열흘 정도가 흘렀을 뿐인데 하지가 가까워 오고 있어서인지 이미 절반의 여름이 지나버린 것 같다. 겨울나무에 내려앉은 새들은 참 잘 보였다. 나뭇잎이 우거지고 나니 새소리가 무성해도 새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러니 바람이 불지 않는 날은 쉽다. 모두가 고요한 중에 유난히 흔들리는 나뭇가지들이 있다. 그걸 딛고 날아가는 중의 새도 방금 막 날아와 앉은 새도 모두 보인다. 옛날 여행에서 한번쯤은 다시 가볼 계획이 있지만 그럴 땐 왠지 다시 사게 될 것 같아 그냥 오래된 론리플래닛과 이별하기로 했다. 론리플래닛은 그냥 좋다. 특히 시티 가이드. 사실 난 사진 없이 글씨만 많아서 깝깝하고 답답한 스타일이 좋은데 점점 보기 편안하고 트렌디하게 바뀌고 있어서 좀 별로이긴하다. 이 시국에 어떻게 살아남고 있는지 모르겠다. 책을 펼쳐보니 알고 있었지만 또 모르고 있었던 많은 것들이 와르륵 쏟아져 나온다. 쓰고 남은 파리의 까르네. 공항버스 티켓, 아르쪼에서 코르토나로 가던 기차 티켓, 무수한 카르푸 영수증 틈 사이의 루브르 기념품 가게의 엽서 산 영수증 등등. 이전 1 ··· 22 23 24 25 26 27 28 ··· 11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