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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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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과시간의 커피 린넨샵에 수수한 테이블 러너가 반값에 팔길래 한 장 샀다. 테이블 러너로 사용하기엔 아직은 번잡한 일상이고 그냥 두개로 갈라서 부엌수건으로 쓰면 좋을 것 같아서. 겨울 코트를 직접 만들어 입는 친구에게 빵과 함께 가져간다. 그냥 쭉 잘라서 한 번 접어서 박으면 되겠지 생각했는데 다림질부터 하라며 다리미를 꺼내온다. 멀쩡한 실밥을 뜯고 천을 접어 집어 넣고 짜투리 천으로 고리까지 만들어 끼워 박는다. 그러고도 남은 천으로는 안경 케이스 같은 주머니를 만든다. 적당히 사는 삶은 너무 낭만적이지만 대충이란 단어는 간혹 걸러내야겠단 생각을 아주 잠시하고 이내 잊는다. 열심히 일한 친구가 이브릭에 카다멈을 넣고 커피를 끓여주었다.
Vilnius 154_좋아하는 오르막길 대성당과 종탑이 있는 곳은 구시가에서도 저지대에 속해서 그쪽 방향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에는 어떤 거리가 됐든 경사진 길을 통해야 한다. 오른쪽은 리투아니아 국방부의 옆모습이고 정면으로는 새까맣게 타들어간 눈을 가진 버려진 수도원과 그 지붕 너머로는 성당 종탑이 보인다. 왠지 모를 음습함과 삼엄함의 앙상블인 이 짧은 오르막길을 좋아한다. 이 수도원 건물은 빌니우스에 손님이 오면 데려가지 말아야 할 곳이 있다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장소이다. 복원과 재정비가 필요한 대상으로 늘 분류되지만 시 재산이 아니라 특정 종파의 소유물인 경우가 많아서 투자자가 없으면 기약 없이 버려지는 구시가의 많은 장소들에 연민을 느끼면서도 오히려 그런 이유로 그나마 계속 회자되고 부담 없이 눈길을 줄 수 있음에 안도하기도 한다. ..
그저 다른 커피 미리 약속시간을 정하는 것이 지루하고 소모적으로 느껴질때가 있다. 만나려는 목적이 아주 단순할경우엔 더욱 그렇다. 그럴 땐 그저 내가 걷고 있는 지점에서 누군가가 생각났는데 설상가상 그 어떤 집과 내가 서 있는 곳 중간 즈음에 빵집이라도 있다면 그냥 시간이 있냐고 넌지시 물어봐서 그렇다고 하면 빵을 사서 향하면 된다. 3월 들어 집에서는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그래서 커피를 갈아본지도 오래. 친구에게 '커피(라도) 내가 갈게' 말했더니 아침에 일어나서 커피밀을 돌리며 그 날의 힘을 측정한다는 농담 반 진담 반의 농담을 하며 커피를 간다. 어떤 잔에 얼마큼 태운 콩으로 얼마큼 진하게 마실 것인가에 대한 단순한 이야기가 믿기 힘들 정도로 유려한 롱테이크가 될 때가 있다. 짧은 단편 소설 속의 공들인 프롤로그..
리투아니아어 83_기적 Stebuklas 거리거리에 남겨진 재밌는 물건들. 누군지 거의 알 것 같았지만 그래도 누구지 하고 쓰윽 눈을 밀어내본다. '요한 바오로 2세의 기도서에는 결코 눈이 쌓이지 않더랍니다.' 17세기였더라면 기적이 되었을 텐데. 곧 부활절이다.
Vilnius 153_3월의 마지막 눈 구청사의 뒷모습과 컨템포러리 아트 센터 옆모습. 걸어도 걸어도 계속 걸어질 것 같은 거리들. 지나치고 지나쳐도 계속 부대끼고 아른거리는 모습.
Vilnius 152_일요일 오전 3월의 마지막 일요일. 기온이 부쩍 올라서 이곳저곳에 단추를 채우지 않은 채 코트를 펄럭이는 사람들이 출몰했고 서머타임도 적용되기 시작했다. 햄버거집 자리에는 새로운 카페가 생겼고 이쯤에 서면 늘 코를 찌르던 식당의 그루지야 음식 냄새는 아직 나지 않는다. 그리고 돌바닥은 아직 차갑다.
다른 창가의 커피 가끔 재택근무하는 친구의 점심시간에 맞춰 커피를 마시러 간다. 부엌 한 가득 오래 된 전동 커피밀 돌아가는 소리. 이어지던 대화가 잠시 중단되고 다 갈린 커피를 포트에 옮겨 담으며 언제나처럼 유서 깊은 전동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쉽게 망가지지 않는 것들이 주는 한 보따리의 이야기들. 그들이 만들어냈을 무수한 커피들. 제각기 다른 방식과 다른 배경의 커피. 때가 되면 자리를 떠야 하는 상황이 주는 미묘한 긴장감속에서 질척 밍그적거리지 않을 수 있는 짧은 시간 속의 상큼한 커피. 정해진 시간만큼의 단어들을 내뱉고 단어 사이사이의 시간을 부여잡고 열심히 홀짝인다.
리투아니아어 82_장갑 Pirštinės 겨울이면 주인을 잃은 장갑이 지천인데 사실 주인을 잃어서라기보단 제 짝을 잃은 것 같아 처량하다고 하는 편이 옳다. 보통 한 짝만 덩그러니 남아있기 때문이다. 장갑이야 한 짝을 잃으면 운 좋게 남은 한 짝도 거의 쓸모가 없어지니 하나를 잃든 둘을 잃든 크게 달라질 것은 없지만 남은 장갑 한 짝 탓에 잃어버린 장갑이 잊히지 않고 계속 생각나니 차라리 두 짝을 한꺼번에 잃어버리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런데 아예 양 손바닥이 줄로 이어져 절대 서로 이별할 수 없었던 아동용 장갑은 그야말로 주인을 잃었다. 날이 따뜻해져서 장갑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게 되었고 저렇게 작은 손바닥을 지닌 아이라면 분명 다음 겨울엔 저 장갑이 맞지 않을거다. 그나마 장갑은 지난겨울 한 철 제 할 일을 다했으니 주인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