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휴가 (912) 썸네일형 리스트형 타르코프스키의 책 작년에 리투아니아어로 번역되어 나온 타르코프스키의 책을 찔끔찔끔 읽고 있다. 이런 책은 사실 진도가 잘 안 나가지만 그나마 처음부터 순서대로 쭉 읽어야 하는 부담감이 없어서 단어 사냥한다 생각하고 하루에 한 페이지씩이라도 읽는데서 보람을 느끼려고 한다. 특히나 이 책은 예전부터 읽어보고 싶기도 했지만 처음에 얼핏 본 표지가 너무 마음에 들기도 했다. 노스탤지어의 한 장면인데 이 영화 자체는 나의 베스트라고 할 수 없지만 타르코프스키의 눈으로 한컷 필터링된 이탈리아를 감상하는 매력이 있다. 많은 감독들을 좋아하지만 그 작품들은 보통은 그들의 연출작이라고 일컫게 되는데 유독 타르코프스키의 작품들은 그의 유산이라는 개념으로 다가온다. 아마도 각각의 작품들이 서로 겹치거나 반복되는 인상이 없이 구성도 느낌도 다.. 리투아니아어 88_연극 Spektaklis 부활절을 지내러 갔다가 우연히 연극 한 편을 보았다. 흡연 장면도 많고 총격씬도 있어서 냄새까지는 아니지만 뭔가 매케하고 몽롱한 느낌이 들었다. 옷 찾느라 줄서 있는게 싫어서 끝난 후에 최대한 끝까지 앉아 있는데 넓은 공간에서 맞이한 고요함이 뭔가 새삼스러웠다. 이 연극은 알고보니 퀜틴 타란티노의 헤이트풀 8(https://ashland11.com/m/320) 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었는데 연극 제목은 Šv. speigas 였다. '세인트 혹한', 성인으로 추대된 엄동설한이다. 영화를 봤다면 심히 납득이 되는 제목이다. 엄동설한, 동장군이라고 하면 저녁 뉴스 일기예보 느낌이 든다만 Speigas 는 어쨌든 혹한을 일컫는 말이지만 약간 미화되고 신성화된 추위의 뉘앙스가 있다. 밀폐된 공간속에서 진행되는 영화.. 콤포트 콤포트는 리투아니아에서는 남성어미 붙여서 콤포타스라고 부른다. 보통 학교 식당이나 아주 전형적인 리투아니아 음식을 파는 식당의 카운터 근처에 이렇게 놓여있다. 이들은 항상 이렇게 놓여있다. 채도도 항상 비슷하다. 이들은 더 진해서도 더 큰 잔에 담겨서도 안된다. 이들에게 많은 것을 기대할 수 없기때문에 실망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캅카스의 사카르트벨로 요즘 마트에 뼈대가 보이는 비교적 매끈하고 친절하게 생긴 등갈비가 팔기 시작해서 한번 사 와봤다. 친절한 등갈비는 오래 삶아서 그냥 소스를 발라 구워 먹었고 다음날 냄비에 남은 육수를 보니 본능적으로 쌀국수가 생각이 나서 팔각과 카다멈, 시나몬 스틱 등의 향신료의 왕족들을 살포시 넣으니 은근슬쩍 쌀국수 육수가 만들어졌다. 쌀국수에 몇 방울 간절히 떨어뜨리고 싶었던 스리라차 같은 소스가 없어서 뭘 넣을까 하다가 조지아 그러니깐 그루지야 그러니깐 사카르트벨로의 양념장인 아지카를 꺼내서 대충 피시소스와 섞어서 함께 먹었다. 아지카라는 이 이름부터 캅카스적인 소스는 빌니우스를 처음 여행하던 시기에 처음 알고 즐겨 먹게 되었는데 캅카스식 뻴메니나 샤슬릭 같은 것과 주로 먹지만 때에 따라서는 고추장처럼 사용하게도 .. Vilnius 161_4월의 아인슈타인 요 며칠 갑자기 맥머핀이 생각나서 토요일에 아침으로 먹기로 나름의 계획을 세웠다. 밤에 이동을 하며 여행을 하던 때에는 새로운 도시에 도착해서 호스텔 체크인 직전까지의 배회를 위해 화장실을 쓰고 아침을 먹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어서 이 작은 음식에 약간의 향수가 있다. 어딘가에서 만들어진 아침을 먹기 위해 일어나자마자 굳이 옷을 챙겨 입고 나가는 귀찮음에 웃음이 나왔지만 순식간에 안락하고 따사로운 기운에 사로잡혔다. 4월이 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칼바람이 불며 날씨가 걷잡을 수 없이 사나워졌다. 따뜻한 커피 한 잔에 달걀과 치즈가 들어간 맥머핀을 먹고 속이 든든해져서 돌아오는데 아인슈타인이 너무 추워 보인다. 빌니우스 버스터미널을 빠져나와 구시가를 향하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지나치는 건물. 그러니 중앙.. Egypt 11_카이로의 쿠샤리 여기는 카이로의 프랜차이즈 쿠샤리 가게였다. 이층이 따로 있어서 연신 구경을 하며 아랍 음식 특유의 매콤함에 경도되었다. 대략 설명하자면 짧은 버미셀리가 섞인 바스마티류의 쌀밥에 바삭하게 튀긴 양파며 콩이며 마카로니를 섞은 베이스 위에 알싸한 향신료들이 섞인 토마토 소스를 한 국자 퍼서 넣어주면 섞어서 먹는 음식. 아직 고집스러운 미각이 자리잡기 이전엔 모든게 꿀맛이었다. 음식이 맛있으려면 사실 미각조차도 중요한것이 아닌걸 알아버렸지만. Egypt 10_팔라펠 아저씨 마트에 팔라펠 믹스가 새로 나왔길래 사 와서 만들어 보았다. 물만 붓고 조금 기다리면 반죽이 걸쭉해져서 바로 숟가락으로 떠서 튀길 수 있게 되어있다. 룩소르의 골동품 시장에서 팔라펠을 만들고 있던 아저씨가 생각났다. 그때 난 아마 조그만 일인용 원형 양탄자를 사고 기분이 몹시 좋았던 순간이었다. 인생 첫 팔라펠은 유난히 초록색이었고 아마 벌어진 피타빵 속에 토마토 오이 샐러드와 같이 넣어 먹었을 거다. 뷰파인더를 통해서만 주변을 관찰할 수 있었을 땐 그만큼에 해당하는 박자와 예의 같은 것이 따로 있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나 하면 막상 또 그런 것 같지도 않다. 나이가 아무리 들어도 사람의 내면에 자리 잡는 속도와 마음가짐은 결국 그 자신이 20대에 누렸던 가장 안락한 지점에 수렴되는 것 같다. 13시의 엠빠나다와 커피. 스포티파이에서 슈게이징과 로우 파이 장르를 랜덤으로 걸어놓고 듣다가 Bubble Tea and Cigarettes 란 밴드를 알게 되었다. 요즘 같아선 드림팝을 베이스로 한 음악들이 유행을 하는 세월도 찾아오는구나 싶어서 신기하다가도 너무 귀에 쏙들어오는 멜로디들에선 아쉽게도 곡 전체가 산으로 가는 듯한 슈게이징 특유의 헤매는 멋은 없는것같아 결국 90년대 슈게이징 시조새들의 음악에 더 빠져들게 된다. 아무튼 이 밴드도 등록곡이 많지 않아서 들은 곡을 듣고 또 듣고 했는데 조금은 검정치마를 떠올리게도 했지만 결정적으로 공일오비의 멜로디를 슈게이징화한듯한 느낌에 꽂혀서 오히려 90년대 가요들이 많이 생각났다. 제일 먼저 듣고 귀를 쫑긋 세우게 했던 노래는 5AM Empanada with you. 빌니우스에.. 이전 1 ··· 19 20 21 22 23 24 25 ··· 11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