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휴가 (931) 썸네일형 리스트형 돌고 돌아 집으로 묻지도 않은 정보를 친절하게 나열하는 사람들이 있고 더 알려줬으면 싶지만 딱 물어본 만큼만 알려주는 사람들이 있다. 간혹 물어봐도 잘못 알려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묻는 것을 주저하기도 하고 거짓임이 분명할 것 같은 대답도 믿고 싶은 강한 열망으로 내치지 못할 때가 있다. 엉터리 같은 질문에 나름의 좋은 대답을 했다고 만족하는 빈도가 있어 보이는 질문에 잘못된 대답을 한 것 같아 찝찝한 경우보다 훨씬 많아진다. 남을 향한 질문은 현저히 줄어든다. 스스로에게 내뱉는 질문은 늘어난듯하지만 답변은 미룬다. 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한 번도 타본 적 없는 텅 빈 버스가 내 앞에 멈춰 섰다. 왠지 이 버스를 타야 할 것 같은 느낌에 그냥 올라타서는 기사분에게 중앙역까지 가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한다. 그리고 버스는 정.. 영원한 휴가, 멋진 영화들은 어떤 장면에서 멈춤 버튼을 누르든 전부 명장면이지. 아주 오래전 이 영화의 첫 장면을 보고 이 영화가 정말 정말 내 마음에 들기를 바랬었다. 텅 빈 거리의 삐딱한 정적과 밤새도록 이곳저곳을 떠돌다 아침이 되어 겨우 잠들어가는 중의 퀴퀴함이 화면을 뚫고 전해졌으니 그것은 당시의 나에겐 굉장히 신선한 것이었어서 오그라듬은 오히려 아방가르드하게 보일 뿐이었고 값싼 철학을 롱테이크로 읊는 게으름뱅이의 배회는 저렇게 살아도 살아지는 삶에 대한 은근한 공감과 안도를 불러일으켰다. 삶은 정말 이렇게도 살아지고 저렇게도 살아지는 놈일 뿐인 것이다. 인간에게 더 이상의 오글거림을 포기하고 세상에 대항하여 자신의 모든 행동을 계면쩍어 하기 시작하는 순간이 오는것이라면 그 시기는 아예 늦거나 영원히 오지 않아.. 오스카 아이작이 사양하는 커피 -커피 마실래요? -언제 만든 건데요? -아침에 내렸어요. -괜찮습니다. 택시 드라이버를 쓴 폴 슈레이더가 연출하고 오스카 아이작이 출연한 카드 카운터라는 영화를 보았다. 럼즈펠드 시절에 문제가 되었던 관타나모 포로수용소에 관련된 구역질 나고 소름 돋는 이야기이다. 신입 고문관으로 일하던 오스카 아이작은 포로 학대와 관련해서 주요 고위 관리들이 모두 처벌을 면하는 가운데 단지 매뉴얼대로 모질게 잘 한 덕에 수감생활을 하게 된다. 긴긴 수감 기간 동안 열심히 카드를 배워서 석방 후엔 나름 원칙 있고 깔끔하고 절제된 방식으로 카지노를 떠돈다. 큰돈을 따고도 카지노의 고급 호텔에 머무르지 않고 싼 여관을 향하는 것은 카지노의 번잡함과 타락한 분위기가 수용소에서 경험한 폭력과 소음을 연상케 하기 때문이다. 아침.. 토마토 모리스 모리스라는 이름의 보라색 토마토가 팔길래 한 개 사와서 먹었다. Vilnius 160_조심히 걷기 10미터 정도 앞에 먼저 가고 있던 남자가 꽈당 넘어지길래 반대편 길로 가서 걸음을 이어갔다. 언젠가 나의 미끄러짐도 누군가에게 귀감이 되었겠구나 싶어 마냥 창피한 행위는 아니란 생각이 들며 괜시리 마음이 편해지면서 앞서 넘어진 남자의 겸연쩍은 뒷모습을 진심으로 위로해주었다. 지붕으로부터 물이 떨어져 거리에 쌓인 눈에 꽂히는 소리가 발자국 소리와 비슷하다. 계속 뒤에 누가 오는 느낌이 들었지만 거리엔 혼자였다. 제법 밝아졌고 어느새 2월이 되었다. 이 길에서 나는 보통 왼쪽 길로 꺾는다. 장르만 로맨스 2019년 가을. 빌니우스 우주피스에서 이 영화를 촬영하는 모습을 구경할 기회가 있었다. 이따금 구름이 몰려오긴 했지만 9월의 날씨는 찬란했다. 만약 그날의 날씨가 가을 빌니우스의 일반적인 음울 우중충 모드였다면 엔딩에 등장하는 두 작가의 만남은 먹먹하고 무겁게 느껴졌을거다. 돌이켜보니 그날의 날씨는 정말 큰 행운이었다. 처음 크랭크인 할때의 가제는 입술은 안돼요 인걸로 알고 있었는데 장르만 로맨스라는 제목으로 공개됐다. 결과적으로는 잘 바꾼 제목이라는 생각이 든다. 약간은 어색하게 코믹스러운 부분들이 있었지만 또 한편으론 그런 부분이 복고적이고 클래식하게 다가왔다. 배우 류승룡은 웃기지만 우습지 않은 캐릭터를 구현해내는데 탁월한 것 같다. '내 아내의 모든 것'이나 '염력' 같은 작품속의 인물들이 내겐.. 영화 한 편, 미성년 얼마 전 모가디슈를 보고 배우 김윤석의 인터뷰를 읽었다. 그는 모가디슈 같은 대작을 만드는 일은 감독으로서 너무 힘든 일일 것이라며 자신은 그냥 지금처럼 작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모가디슈는 상습적으로 대작을 만드는 감독들도 만들기 쉬운 영화는 아닐것으로 보여지지만) 그래서 나는 그의 작고 잔잔한 두 번째 영화를 몹시 기다리는 중. 미성년. 이것은 내가 좋아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제목이기도 하지만 그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고.(한편으론 정말 상관있다. 소설에도 무책임한 어른들 여럿 나오니깐) 작년에 본 영화인데 생각난 김에 뜬금없이 짧게 기록해 놓기로 한다. 배우가 만든 영화여서일까. 배우 기용에 있어서도 재치가 넘쳤고 모든 배우들이 동료 배우의 감독 데뷔작을 위해 으싸으싸 하는 느낌이 들었다.. India 09_바라나시의 아침 잊기 힘든 중요한 날도 가끔은 정신없이 잊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은데 유독 인도에 도착한 1월17일이 되면 그 날짜는 마치 꺼도 꺼도 꺼지지 않는 알람처럼 하루 온 종일 가슴속에서 울려댄다. 난 참으로 좋은 여행을 했다. 그때도 매순간 그걸 알았다. 그래서 참 슬펐다. 그것은 행복의 극단에서 모든 것이 끝을 향해 가고 있음을 인식할때 찾아오는 우울이다. 이전 1 ··· 19 20 21 22 23 24 25 ··· 11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