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휴가 (931) 썸네일형 리스트형 Egypt 10_팔라펠 아저씨 마트에 팔라펠 믹스가 새로 나왔길래 사 와서 만들어 보았다. 물만 붓고 조금 기다리면 반죽이 걸쭉해져서 바로 숟가락으로 떠서 튀길 수 있게 되어있다. 룩소르의 골동품 시장에서 팔라펠을 만들고 있던 아저씨가 생각났다. 그때 난 아마 조그만 일인용 원형 양탄자를 사고 기분이 몹시 좋았던 순간이었다. 인생 첫 팔라펠은 유난히 초록색이었고 아마 벌어진 피타빵 속에 토마토 오이 샐러드와 같이 넣어 먹었을 거다. 뷰파인더를 통해서만 주변을 관찰할 수 있었을 땐 그만큼에 해당하는 박자와 예의 같은 것이 따로 있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나 하면 막상 또 그런 것 같지도 않다. 나이가 아무리 들어도 사람의 내면에 자리 잡는 속도와 마음가짐은 결국 그 자신이 20대에 누렸던 가장 안락한 지점에 수렴되는 것 같다. 13시의 엠빠나다와 커피. 스포티파이에서 슈게이징과 로우 파이 장르를 랜덤으로 걸어놓고 듣다가 Bubble Tea and Cigarettes 란 밴드를 알게 되었다. 요즘 같아선 드림팝을 베이스로 한 음악들이 유행을 하는 세월도 찾아오는구나 싶어서 신기하다가도 너무 귀에 쏙들어오는 멜로디들에선 아쉽게도 곡 전체가 산으로 가는 듯한 슈게이징 특유의 헤매는 멋은 없는것같아 결국 90년대 슈게이징 시조새들의 음악에 더 빠져들게 된다. 아무튼 이 밴드도 등록곡이 많지 않아서 들은 곡을 듣고 또 듣고 했는데 조금은 검정치마를 떠올리게도 했지만 결정적으로 공일오비의 멜로디를 슈게이징화한듯한 느낌에 꽂혀서 오히려 90년대 가요들이 많이 생각났다. 제일 먼저 듣고 귀를 쫑긋 세우게 했던 노래는 5AM Empanada with you. 빌니우스에.. Russia 12_한편으로는 그저 여전한 것들에 대해서 언어라는 것은 마냥 신기하다. 모든 언어가 그런 것은 아니다. 그 단어의 의미 그 이상의 살아 숨 쉬는 느낌을 가져버린 그런 언어와 단어들이 있다. 꿈을 꾸며 배웠던 언어들이 보통 그렇다. 가령 말라꼬에 대해서라면 난 우유를 마신다기보다는 말라꼬를 마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흘롑은 단지 빵이기 이전에 이미 흘롑이고 울릿쨔는 시작과 끝이 있는 통로라기보다는 모든 시대에서 동시에 쏟아져 나온 결코 진화하지 않는 사람들이 부대끼는 커다란 공동이다. 쵸르니는 이 세상에는 없는 농도의 검음이며 스따깐은 아무리 떨어뜨려도 깨지지 않을 그 무엇이다. 16년 전 이번 주는 뻬쩨르에 있던 날들이다. 짧은 감상 두 영화. '슬픔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영화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중경삼림이나 접속, 베를린 천사의 시와 같은 팔구십년대 영화들이야말로 멜랑콜리를 알려줬다.' 이런 대사가 나온다. 배우 유태오가 직접 연출하고 연기한 영화 '로그 인 벨지움'. 배우 자신의 지극히도 개인적인 감상이겠지만 깊이 공감했다. 이것이 이 짧고도 다소 오그라들수도 있는 자전적인 기록 영화를 관통하는 대사이다. 인간이라면 그 자신의 깊숙한 곳에 자리잡아서 결정적인 순간에 건들여지는 자신만의 멜랑콜리가 있어야 한다고 넌시지 말하는 것 같다. 영원한 휴가의 앨리, 소년 소녀를 만나다의 알렉스를 움직였던 그런 보이지 않는 힘 말이다. 자신을 성찰하는 배우의 모습이 극영화 속의 주인공으로 그대로 확장된다면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진다. 그런 영화.. 리투아니아어 87_어둠 Tamsa 세상의 여러 전쟁들 중엔 알려지면 알려질수록 길면 길어질수록 누군가에게는 이로운 전쟁, 그러니 구조적으로 알려지지 않으면 안 되는 전쟁과 알려져 봤자 별로 좋을 것도 없고 관심도 못 받을 테니 알려지더라도 묻히고 근본적으로 알려지지 조차 않는 그런 전쟁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전쟁들이 대외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와 상관없이 그의 영향 아래 놓여 있는 힘없는 사람들의 고통은 매한가지로 참혹한 것이다. 그러니 새삼 전쟁이 나면 알려질 가능성이 높은 위치에 살고 있다는 게 최소한 다행이라는 우습고도 자조적인 생각이 들었다. 전쟁은 그렇게 쉽게 일어나지 않겠지만 지금 피난길에 오른 사람들의 얼마 전 일상도 아마 쉽게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믿고 싶었던 전쟁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했겠지. 삶의 터전을 등지고.. 옛날 달력 한 장. 헌책을 읽는 경우 이전 책 주인의 흔적이 남아있는 경우가 있다. 특정 부분에 줄이 그어져 있거나. 메모가 되어있거나. 날짜와 함께 건넨 이의 이름이 적혀 있기도 하고 직접 산 책에 대한 기대 같은 것도 간혹 적혀 있다. 책을 팔았다는 것은 더 이상 그 책이 필요 없어졌기 때문이겠지만 아무런 인상을 남기지 않는 책이란 사실 없다. 나도 이곳으로 오기 전에 많진 않지만 가지고 있던 책을 대부분 팔고 왔지만 어떤 책들을 여전히 기억한다. 거리 도서관에서 가져오는 책들도 자신들의 사정이 있다. 며칠 전 카페 가는 길에 발견해서 카페로 데려간 톨스토이의 부활은 리가에서의 추억이 담긴 책인가 보다. 반갑게도 그 속엔 뜯어서 간직한 달력 한 장이 들어 있었다. 비 오는 날에 길거리에서 열어 봤으면 아마 나풀나풀 떨어.. 리투아니아어 86_오리 Antis 지난주에 별생각 없이 집어 온 동화책. 오리는 또 왜들 그렇게 귀여운지. 현실에서 이 오리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대포 속의 오리. 전쟁 시작 전. 병사가 다급하게 장군에게 달려온다. -장군님. 대포를 쏠 수가 없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냐 대포를 쏠 수 없다니! -대포 속에 오리가 둥지를 틀었습니다. -뭐라고? 공격하려던 도시의 수장에게 대포를 빌리러 백기를 들고 들어가는 장군 -대포 하나 빌려주세요. 전쟁을 하는데 우리만 대포가 없으면 공평하지 않습니다. -대포가 우리도 하나밖에 없는데 어떻게 빌려준단 말이오. -그러니깐 그쪽에서 우리쪽으로 대포를 쏘면 우리가 대포를 가져와서 또 그쪽으로 쏘면 되지 않습니까. -아니 절대 그렇게는 안되오. 게다가 우리 대포는 너무 무거워서 꿈쩍도 안 할 거요. .. 비 내린 다음. 윗줄은. 카푸치노와 카사블랑카라는 이름의 도나스. 아랫줄 왼쪽으로부터는. 카페에서 읽으려고 가져 간 도스토예프스키의 유럽 인상기. 카페 가는 길목에 있는 거리 도서관에 있길래 습관적으로 집어 온 톨스토이의 부활. 카페에 비치되어있던 빌니우스 관련 계간지 순이다. 이들이 모두 우연인데 어떤 면에서는 비교할 구석을 주었다. 따끈따끈한 계간지는 늘 그렇듯이 빌니우스가 발굴해서 기억하고 지켜나가야할 가치가 있어보이는 과거의 것들에 대한 감상적인 시선이 담겨있다. 부활은 보통 카츄사와 네흘류도프가 법정에서 조우하는 순간까지는 나름 생명력있는 서사에 사로잡혀 순식간에 읽지만 그 이후부터는 뭔가 새로움을 주입하며 혼자 앞으로 막 내달리는듯한 느낌에 오히려 마음속은 정체된듯 오글거린다. 겨울에 쓴 유럽의 여름 인상기는.. 이전 1 ··· 18 19 20 21 22 23 24 ··· 11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