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휴가 (907) 썸네일형 리스트형 Vilnius 163_밤나무와 장난감 기차 구시가의 밤나무 지도를 그리라고 해도 얼추 그릴 수 있을 정도로 무리 속에서도 보통 한 그루씩만 의젓하게 서있다. 아직 밤나무 꽃을 피울 정도로 날씨가 따뜻해지지 않았음에도 대성당 근처의 밤나무는 워낙에 채광이 좋은 위치에 사는 놈이어서 인지 주변의 나무 동료들 덕분인지 이미 꽃을 피웠다. 대성당 근처를 한 바퀴 야무지게 도는 장난감 기차도 운행을 시작했다. Vilnius 162_5월 12일의 아침 밤 기온이 계속 내려가니 집은 춥고 10도 언저리에서 맴돌던 낮 기온은 그래도 이제 많이 올라갔다. 다소 늦게 찾아온듯한 봄이라고 하기에도 참 정의하기 애매한 계절이다. 그래도 화창한 날이 많아서 볕이 드는 곳으로만 걸어다니면 따뜻하다. 신발은 아직 바꿔신지 못했다. 나무엔 꽃이 제법 피었다. 리투아니아어 89_집 Namai 아주 오래 전에 집수리를 하면서 걷어낸 두꺼운 나무 기둥들로 좁은 발코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인용 벤치 같은 것을 만들어서 앉아 있고 그랬는데 비가 오면서 젖고 벌레가 생기길래 빌라 놀이터로 옮겨 놨었다. 이미 7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상당히 갈라지고 먼지가 쌓이니 앉기엔 불가능했지만 동네 아이들은 그것을 딛고 얕은 언덕을 오르내렸다. 며칠전에 이웃 할머니가 봄이 되면 가꾸는 화단 옆에 놀이터를 뒹굴던 큼지막한 쓸모있는 쓰레기들과 함께 우리 벤치가 분해되어 있었는데 며칠 후 누군가가 그 나무들로 이렇게 벌레의 보금자리를 만들어놓았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리사이클이 아닌가. 벌레들이 모래상자나 미끄럼틀 따위를 등지고 전부 이 아늑한 펜트하우스로 몰려들기를 염원한다. 타르코프스키의 책 작년에 리투아니아어로 번역되어 나온 타르코프스키의 책을 찔끔찔끔 읽고 있다. 이런 책은 사실 진도가 잘 안 나가지만 그나마 처음부터 순서대로 쭉 읽어야 하는 부담감이 없어서 단어 사냥한다 생각하고 하루에 한 페이지씩이라도 읽는데서 보람을 느끼려고 한다. 특히나 이 책은 예전부터 읽어보고 싶기도 했지만 처음에 얼핏 본 표지가 너무 마음에 들기도 했다. 노스탤지어의 한 장면인데 이 영화 자체는 나의 베스트라고 할 수 없지만 타르코프스키의 눈으로 한컷 필터링된 이탈리아를 감상하는 매력이 있다. 많은 감독들을 좋아하지만 그 작품들은 보통은 그들의 연출작이라고 일컫게 되는데 유독 타르코프스키의 작품들은 그의 유산이라는 개념으로 다가온다. 아마도 각각의 작품들이 서로 겹치거나 반복되는 인상이 없이 구성도 느낌도 다.. 리투아니아어 88_연극 Spektaklis 부활절을 지내러 갔다가 우연히 연극 한 편을 보았다. 흡연 장면도 많고 총격씬도 있어서 냄새까지는 아니지만 뭔가 매케하고 몽롱한 느낌이 들었다. 옷 찾느라 줄서 있는게 싫어서 끝난 후에 최대한 끝까지 앉아 있는데 넓은 공간에서 맞이한 고요함이 뭔가 새삼스러웠다. 이 연극은 알고보니 퀜틴 타란티노의 헤이트풀 8(https://ashland11.com/m/320) 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었는데 연극 제목은 Šv. speigas 였다. '세인트 혹한', 성인으로 추대된 엄동설한이다. 영화를 봤다면 심히 납득이 되는 제목이다. 엄동설한, 동장군이라고 하면 저녁 뉴스 일기예보 느낌이 든다만 Speigas 는 어쨌든 혹한을 일컫는 말이지만 약간 미화되고 신성화된 추위의 뉘앙스가 있다. 밀폐된 공간속에서 진행되는 영화.. 콤포트 콤포트는 리투아니아에서는 남성어미 붙여서 콤포타스라고 부른다. 보통 학교 식당이나 아주 전형적인 리투아니아 음식을 파는 식당의 카운터 근처에 이렇게 놓여있다. 이들은 항상 이렇게 놓여있다. 채도도 항상 비슷하다. 이들은 더 진해서도 더 큰 잔에 담겨서도 안된다. 이들에게 많은 것을 기대할 수 없기때문에 실망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캅카스의 사카르트벨로 요즘 마트에 뼈대가 보이는 비교적 매끈하고 친절하게 생긴 등갈비가 팔기 시작해서 한번 사 와봤다. 친절한 등갈비는 오래 삶아서 그냥 소스를 발라 구워 먹었고 다음날 냄비에 남은 육수를 보니 본능적으로 쌀국수가 생각이 나서 팔각과 카다멈, 시나몬 스틱 등의 향신료의 왕족들을 살포시 넣으니 은근슬쩍 쌀국수 육수가 만들어졌다. 쌀국수에 몇 방울 간절히 떨어뜨리고 싶었던 스리라차 같은 소스가 없어서 뭘 넣을까 하다가 조지아 그러니깐 그루지야 그러니깐 사카르트벨로의 양념장인 아지카를 꺼내서 대충 피시소스와 섞어서 함께 먹었다. 아지카라는 이 이름부터 캅카스적인 소스는 빌니우스를 처음 여행하던 시기에 처음 알고 즐겨 먹게 되었는데 캅카스식 뻴메니나 샤슬릭 같은 것과 주로 먹지만 때에 따라서는 고추장처럼 사용하게도 .. Vilnius 161_4월의 아인슈타인 요 며칠 갑자기 맥머핀이 생각나서 토요일에 아침으로 먹기로 나름의 계획을 세웠다. 밤에 이동을 하며 여행을 하던 때에는 새로운 도시에 도착해서 호스텔 체크인 직전까지의 배회를 위해 화장실을 쓰고 아침을 먹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어서 이 작은 음식에 약간의 향수가 있다. 어딘가에서 만들어진 아침을 먹기 위해 일어나자마자 굳이 옷을 챙겨 입고 나가는 귀찮음에 웃음이 나왔지만 순식간에 안락하고 따사로운 기운에 사로잡혔다. 4월이 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칼바람이 불며 날씨가 걷잡을 수 없이 사나워졌다. 따뜻한 커피 한 잔에 달걀과 치즈가 들어간 맥머핀을 먹고 속이 든든해져서 돌아오는데 아인슈타인이 너무 추워 보인다. 빌니우스 버스터미널을 빠져나와 구시가를 향하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지나치는 건물. 그러니 중앙.. 이전 1 ··· 18 19 20 21 22 23 24 ··· 11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