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휴가 (912) 썸네일형 리스트형 Vilnius 86_장터 풍경 매 월 3월 첫째주 금요일에 열리는 카지우코 장날. 11년 전, 첫 장터에서 받은 인상이 참 강렬했다. 특별한 계획없이 그냥 지나치기 아쉬워 들러가는 어떤 여행지에서 1년에 한 번 열리는 아주 큰 행사에 엉겁결에 빨려 들어가서는 뜻하지 않았음에도 마치 의도한 것 처럼 가슴 속에 큰 의미를 지니게 되는 그런 기분이랄까. 그 기분을 다시 느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올 해도 습관적으로 발길을 옮겼다. 사실 해가 더 할수록 뭔가 규모는 커지지만 별로 새로울 것이 없다. 하지만 이제 별로 재미없다 하고 돌아선다면 좀 쓸쓸한 마음이 들것 같아 최대한 처음 그 기분을 되새김질하며 걷는다. 가끔은 지난 해에 망설이다 결국 사지 않은 것들이 올 해에도 있으면 살까 하고 생각한다. 얇게 잘라 빵에 얹어 먹으면 스르르 녹.. 바이킹스 시즌 6을 기다리며 잡담 3일 간의 짧았던 베르겐 여행. 축축하고 을씨년스러웠던 베르겐의 기운이 아직 콧잔등에 남아있는 채로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보기 시작한 히스토리 채널 드라마 바이킹. 베르겐의 날씨, 하이킹하는 동안 밟았던 이끼 낀 바위산 그리고 어둑어둑해지는 평평한 산 정상으로 불어오던 날카로운 바람들이 드라마를 보는 내내 생각났다. 실제로 얕은 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베르겐은 드라마의 배경이자 인접국은 말할 것도 없고 노르웨이의 군소 왕국의 지배자들도 호시탐탐 노리는 노르웨이 바이킹의 거점 도시, 카테가트와 거의 동일했다. 베르겐은 13세기에 노르웨이의 수도였다고 하는데 아마도 그보다 훨씬 이전의 바이킹이 전성기를 이루던 시절부터 수백 척의 배들이 그 항만을 빠져나가 지금의 영국으로 프랑스로 발트해 연안에 닿았을것이다... 리투아니아어 56_Mugė 박람회 매년 2월 말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빌니우스의 큰 행사. 지난 주 빌니우스에서는 4일 동안 도서 박람회가 열렸다. 전광판에 도서 박람회 광고가 지나가길래 책을 뜻하는 리투아니아 단어 Knyga 를 포착하려고 사진을 찍는데 정작 찍고 나니 광고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책이라는 단어. '20년이나 됐으니 광고할 필요도 없지요' 가 광고 컨셉이라서 '빌니우스'와 '박람회' 단어만 남기고 정작 '도서' 자리에 다른 문구들을 채운 것이다. 그래서 그냥 다른 단어 쓰기. 전시장에서 열리는 대규모 전시회들, 노천에서 열리는 크고 작은 장터들을 리투아니아에서는 보통 '무게 Mugė' 라고 부른다. 봄은 이미 만져질듯 성큼 다가왔다. 2월의 마지막 주부터 연달아 열리는 도서 박람회와 3월 첫째주의 카지우코 무게는 빌니우스.. 수수부꾸미 지금 생각해보니 오래 전에 부모님이 명절을 쇠러 가시면 시골집에서 항상 얻어 오시던 새하얀 찹쌀 음식이 부꾸미였다. 팥이 들어있진 않았고 기름에 지지면 쩍쩍 늘어지던 그 음식을 조청에 찍어 얼마나 맛있게 먹었던지. 팥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이번에 서울에서 처음 먹어 본 수수 부꾸미는 정말 신세계였다. 아마도 그런 식감을 좋아하나보다. 빌니우스로 돌아오던 날, 트렁크를 집에 들여놓자마자 가방을 열어 선물 받은 냉동 부꾸미를 냉동실에 집어 넣었다. 조청이 없어서 시럽을 뿌렸다. The hunt (2012) The hunt_Thomas Vinterberg_2012 이런 영화를 보고 났을때 가장 기분이 좋다. 우연히 보게 됐는데 생각지도 못한 긴장감으로 눈을 뗄 수 없을때, 보고 나서도 한참동안 여운이 남아서 계속 생각하게 될때, 그러다가 곧 잘 꿈도 꾸게 하는 영화들. 우습게도 얼마전에 빌니우스 거리에 사슴 네 마리가 무리지어 뛰어 가는 꿈을 꾼 것은 아마도 매우 이 영화 때문일거다. 물론 포스터 속에 매즈 미켈슨이 아니라 모르는 배우의 얼굴이 있었다면 보지 않았을지도 모르니 결국 배우의 힘이 가장 큰 것인지도 모르겠다. 무엇을 의미하는 표정일까. 어떤 장면일까. 고아로 태어나 용병으로 길러진 슬픈 남자의 이야기인가. 거대한 권력에 철저하게 이용당하다 피를 흘리며 터벅터벅 어두운 아파트로 돌아와 위스키 병 .. Lost in Paris (2016) 좀 더 이전에 본 파리 배경의 영화 한 편 더. 에펠 탑 위의 이들은 캐나다인 사서 피오나와 그녀의 이모 마르타 그리고 파리의 노숙자 돔이다. 피오나는 파리에 사는 이모 마르타로부터 엽서 한 통을 받고 배낭 하나를 달랑 짊어지고 이모를 찾아 파리에 도착한다. 마르타는 피오나가 아주 어렸을때 파리를 꿈꾸며 이민을 왔고 이제는 보호자도 없는 고령의 노인이 되어 요양 시설에 보내질 위기에 처해있다. 그녀는 피오나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비록 약간의 치매 증상을 보이지만 시설에 옮겨져서 지금껏 누려온 자유를 빼앗기고 싶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피오나가 배낭과 함께 센 강에 빠지면서 모든 일이 꼬인다. 그리고 그 배낭을 파리의 노숙자 돔이 발견하면서 그들은 연결된다. 돔은 센 강변의 텐트 속에 살며 쓰레기 통에서 .. La melodie (2017) La melodie_Rachid hami_2017 영화를 보고 나서 제목이 기억이 안 나는 경우가 점점 잦아 진다. 최근 들어서 부쩍 자주 그러는듯. 심지어 배우나 감독 이름을 몰라서 영영 기억해내지 못하는 영화가 있을 정도. 영화 내용을 대충 적었을 때 검색이 되면 그나마 다행이다. 학창시절에는 영화를 보고나면 작은 수첩에 기본 정보 정도는 기록하는 버릇이 있었는데 그때처럼 해야지 라고 생각하고서도 그런 생각을 했다는 사실 조차 잊고마니 우스울 뿐이다. 가끔 보는 프랑스 영화들은 특히나 배우나 감독의 불어 이름들이 입에 붙지 않아서 기억하는데에 더 애를 먹는다. 이렇게 한 번 정도 쓰면서 되새겨보는 이 영화는 언제까지 기억할 수 있을까. 파리의 초등학교 음악 수업에 강사로 초대 받는 어떤 바이올린 연주.. Vilnius 85_오후 4시 12분 '날이 좀 따뜻해졌어. 좀 가벼운 신발을 신고 나가자.' 그렇게 신고 나간 가을 신발이 결국 성급한 결정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데에 대략 20여 분의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아직은 안돼. 그래. 아직은 겨울이야' 라는 생각 대신 그 사실을 지각하는 데에 5분이 아닌 20여 분씩이나 필요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봄을 향하는 급커브에 마주선다. 퇴각하는 겨울에도 심리적 저지선이 있다. 그것이 무너지는 가장 단적인 예는 하나 둘 제거되는 건물의 크리스마스 조명이다. 일년 중 세 달은 꼬박 매달려있었을 겨울 전구들이 다시 상자 속으로 창고 속으로 들어가는 시간. 이전 1 ··· 49 50 51 52 53 54 55 ··· 11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