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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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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st in Paris (2016) 좀 더 이전에 본 파리 배경의 영화 한 편 더. 에펠 탑 위의 이들은 캐나다인 사서 피오나와 그녀의 이모 마르타 그리고 파리의 노숙자 돔이다. 피오나는 파리에 사는 이모 마르타로부터 엽서 한 통을 받고 배낭 하나를 달랑 짊어지고 이모를 찾아 파리에 도착한다. 마르타는 피오나가 아주 어렸을때 파리를 꿈꾸며 이민을 왔고 이제는 보호자도 없는 고령의 노인이 되어 요양 시설에 보내질 위기에 처해있다. 그녀는 피오나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비록 약간의 치매 증상을 보이지만 시설에 옮겨져서 지금껏 누려온 자유를 빼앗기고 싶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피오나가 배낭과 함께 센 강에 빠지면서 모든 일이 꼬인다. 그리고 그 배낭을 파리의 노숙자 돔이 발견하면서 그들은 연결된다. 돔은 센 강변의 텐트 속에 살며 쓰레기 통에서 ..
La melodie (2017) La melodie_Rachid hami_2017 영화를 보고 나서 제목이 기억이 안 나는 경우가 점점 잦아 진다. 최근 들어서 부쩍 자주 그러는듯. 심지어 배우나 감독 이름을 몰라서 영영 기억해내지 못하는 영화가 있을 정도. 영화 내용을 대충 적었을 때 검색이 되면 그나마 다행이다. 학창시절에는 영화를 보고나면 작은 수첩에 기본 정보 정도는 기록하는 버릇이 있었는데 그때처럼 해야지 라고 생각하고서도 그런 생각을 했다는 사실 조차 잊고마니 우스울 뿐이다. 가끔 보는 프랑스 영화들은 특히나 배우나 감독의 불어 이름들이 입에 붙지 않아서 기억하는데에 더 애를 먹는다. 이렇게 한 번 정도 쓰면서 되새겨보는 이 영화는 언제까지 기억할 수 있을까. 파리의 초등학교 음악 수업에 강사로 초대 받는 어떤 바이올린 연주..
Vilnius 85_오후 4시 12분 '날이 좀 따뜻해졌어. 좀 가벼운 신발을 신고 나가자.' 그렇게 신고 나간 가을 신발이 결국 성급한 결정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데에 대략 20여 분의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아직은 안돼. 그래. 아직은 겨울이야' 라는 생각 대신 그 사실을 지각하는 데에 5분이 아닌 20여 분씩이나 필요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봄을 향하는 급커브에 마주선다. 퇴각하는 겨울에도 심리적 저지선이 있다. 그것이 무너지는 가장 단적인 예는 하나 둘 제거되는 건물의 크리스마스 조명이다. 일년 중 세 달은 꼬박 매달려있었을 겨울 전구들이 다시 상자 속으로 창고 속으로 들어가는 시간.
Vilnius 84_옛 주차장 구청사에서 새벽의 문을 향하는 짧은 길목. 이곳은 종파가 다른 여러 개의 성당이 밀집해 있는 곳이다. 러시아 정교와 카톨릭 성당, 우크라이나 정교 성당을 등지고 섰을때 보이는 볼록 솟아오른 쿠폴은 바로크 양식의 카톨릭 성당이지만 화려한 제단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내부 장식이 남아있지 않은 성 카시미르 성당의 것이다. 제정 러시아 시절에 러시아 정교 성당으로 바뀌며 양파돔이 얹어지고 내부의 화려한 바로크 장식을 걷어내야 했던 이 성당은 소비에트 연방시절엔 급기야 무신론 박물관으로 쓰여지기도 했다. 평범한 건물도 세월이 흐르면서 소유주가 바뀌고 상점으로 쓰였다가 여관이 되기도 하고 카페가 되는 것이 특이한 일이 아니듯 점령자의 필요에 의해 때로는 와인창고가 되고 원정에 나선 군대의 병영으로 쓰여졌던 교회의..
리투아니아어 55_전당포 Lombardas 항상 이 단어를 보면 이탈리아의 롬바디라는 잘 알지도 못하는 동네를 떠올리곤 괜히 따스해지고 뭔가 넉넉해지는 기분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이들 단어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롬바르다스는 전당포이다. 조금만 눈을 크게 뜨고 구시가를 걷는다면 옷가게든 빵집이든 한 번에 알아봄직한 상점들 사이에 별다른 간판도 없이 영업하고 있는 전당포들을 간혹 마주칠 수 있다. 특히나 부엌 찬장 속의 마지막 남은 싸구려 숟가락 마저 전부 저당잡히고 영혼이라도 꽁꽁 싸매서 가져다 줘야 할 것 같은 후미진 전당포가 구시가의 트라카이 거리에 하나 남아 있다. 바사나비치어스 거리에서 주욱 내려와 횡단보도 하나를 건너면 들어설 수 있는 거리이다. 건너편 상점들의 조명이 반사된 탓에 속이 쉽사리 들여다보이지 않는 이곳은 ..
Vilnius 83_카페 풍경 요즈음 빌니우스 거리 곳곳에서 마주치는 캠페인. 펄펄 끓는 커피 포트나 다리미, 떨어져서 깨지기 직전의 도자기들을 배경으로 폭발 일보 직전의 자신을 뒤돌아보라는 메세지를 담고 있다. 커피 포트가 뿜어내는 연기가 불안감을 주긴 하지만 어쨌든 새로 문을 연 카페의 오렌지색 간판 때문에라도 구시가의 어떤 장소보다 이곳에 가장 잘 어울린다. 이곳은 내가 좋아하는 거리, 행인들이 안겨주고 가는 꽃다발로 한시도 외로울 틈 없는 로맹 개리의 동상과 러시아 드라마 씨어터가 자리잡은 바사나비치우스 거리이다. 문화부나 리투아니아 철도청 같은 주요 관공서들이 유서 깊은 건물들에 터를 잡은 꽤나 진지하고 격조있는 거리인데 이곳에서 아래로 이어지는 몇몇의 거리들을 통해 곧장 빌니우스 대학과 대통령궁, 대성당까지 닿을 수 있음에..
Vilnius 82_창 밖 풍경 병원 복도를 무심코 지나치다 다시 되돌아가서 마주선 풍경. 새롭게 생긴 창이 아닐텐데 항상 그 자리에 있었을 굴뚝과 건물의 능선들을 이제서야 알아본 것이 조금 미안하게 느껴졌다. 주홍 지붕을 감싸안은 하얀 눈과 겨울 아침 특유의 잿빛 하늘이 간신히 포섭해 놓은 성 카시미르 성당의 쿠폴. 매년 3월의 첫 금요일, 구시가 곳곳에서는 성 카시미르의 축일을 기념하는 큰 장이 열린다. 성당의 쿠폴속으로 아낌없이 쏟아지던 어느 해 장날 아침의 하얀 햇살이 기억난다.
양양 큰아버지네 집 마당에서 참 자주 사용하는 표현 중에. 자주 못 만난다. 자주 못 간다. 그런 표현들. 그런데 내가 경험할 수 있는 횟수가 어렴풋이 이미 정해져 있는듯 보이는 그런 상황들이 있다. 김치를 담그지는 않지만 이를 테면 김장 같은 것. 여권 갱신 횟수 따위들. 한국에 가는 일 같은 것. 그런것들을 떠올리고 있으면 자주 라는 단어는 힘을 잃는다. 모든 것이 이미 내 인생 속에서의 정해진 횟수 중의 한 번 이라는 이미 고정된 찰나의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이미 벌어진 기억에 더해지는 한 번이 아닌 뺄셈으로 사라지는 한 번의 뉘앙스가 때로는 마음을 움츠리게 한다. 시골 큰 집의 장독대는 이번에도 다른 색이었다. 그것도 내가 많이 좋아하는 색. 여름이면 피서객들이 드나들 곤 하는 집안 구석구석을 항상 열심히 칠하고 돌보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