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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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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와중의 커피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친구네 시골집 마당에서 서두를 곳 없이 나른한 상태였는지 이것저것 마셔도 몸이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이따금 닭들이 울었고 고양이들은 추격전을 벌였다. 선물로 가져간 바나 탈린 리큐어를 친구 어머님이 기어코 뜯으셨다. 주어진 커피를 갈았고 커피와 번갈아 가며 마셨다. 이것이 무슨 맛일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스카치 캔디 맛이었나 싶다. 불평할 여지없이 즐거운 시간이었지만 습관이 되면 없었던 것 처럼 되어버릴 감정들이 문득문득 보였다. 모든 좋은 것들의 본질은 '가끔'이 부리는 기교에 불과하다는 것.
카드 카운터 (2021) - 오스카 아이작이 사양하는 커피 -커피 마실래요?-언제 만든 건데요?-아침에 내렸어요.-괜찮습니다. 택시 드라이버를 쓴 폴 슈레이더가 연출하고 오스카 아이작이 출연한 카드 카운터라는 영화를 보았다. 럼즈펠드 시절에 문제가 되었던 관타나모 포로수용소에 관련된 구역질 나고 소름 돋는 이야기이다. 신입 고문관으로 일하던 오스카 아이작은 포로 학대와 관련해서 주요 고위 관리들이 모두 처벌을 면하는 가운데 단지 매뉴얼대로 모질게 잘 한 덕에 수감생활을 하게 된다. 긴긴 수감 기간 동안 열심히 카드를 배워서 석방 후엔 나름 원칙 있고 깔끔하고 절제된 방식으로 카지노를 떠돈다. 큰돈을 따고도 카지노의 고급 호텔에 머무르지 않고 싼 여관을 향하는 것은 카지노의 번잡함과 타락한 분위기가 수용소에서 경험한 폭력과 소음을 연상케 하기 때문이다. 아침에 내..
누군가의 커피 2 농축된 인스턴트커피 속에서 거침없이 녹아내리는 빙하들은 혀를 데일 위험이 없는 상냥한 온도의 커피를 남겨놓고 사라지곤 한다. 한 꺼풀 한 꺼풀 시간을 두고 덧입혀지는 옷들은 좀 더 웅크리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안고 서서히 겨울을 맞이한다. 겨울은 생각만큼 급진적이지 않다. 오히려 앙칼진 바람은 아직 난방이 시작되지 않은 이 시기의 방구석으로부터 불어온다. 자비롭지 못한 것은 한겨울의 눈보라라기보다는 인기척 없는 한밤중에 정체되어 있던 10월의 실내 공기이다. 언제나 좀 더 쌀쌀맞은 것은 스카프를 잊은 초가을이고 장갑을 포기한 늦봄이다. 겨울은 결백하다. 겨울의 유배지는 그래서 겨울 그 자신이다. 10월의 방구석은 아직 늦여름에 멈춰져 있는 잠옷을 탓한다. 서랍 깊숙한 곳에서 겨울 니트를 꺼내 입는..
누군가의 커피 어느 일요일 오후, 집을 나서서도 한참이 지나서야 카드를 놔두고 나온 것을 알게 되었다. 현금 카드랑 마트 카드만 들고 마트에 갈 때가 많다 보니 쓰고 나서도 종종 다시 지갑에 집어 넣는 것을 깜박하는 것이다. 자전거를 잡아 타고 대성당 근처에 내려서 어느 상점 계산대 앞에 섰을 때에야 동전도 카드도 없어서 오늘의 나는 커피 한 잔도 사 먹을 수 없겠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동전을 탈탈 털어도 1유로가 모아지지 않았다. 누군가가 마신 이 커피 사진들은 그 날 집을 나와서 걷다가 자전거를 타기 직전 찍은 사진이다. 빌니우스의 모던 아트 뮤지엄 건설이 한창인 그 거리의 자전거 스탠드 앞에 카페 세 곳이 줄지어 서있다. 이곳의 이런 풍경들은 기분 좋은 질투심을 불러 일으킨다. 누군가가 마시고 간 커피 만큼 아..
이런 커피 (Incheon_2017) 친구 가족을 만나러 간 인천의 어느 키즈 카페. 아무리 기다려도 커피를 토해내지 않던 장난감 커피 머신. 몹시 세기말적인 풍경이란 생각이 들었다. 캡슐을 넣지 않아도 커피콩을 담지 않더라도 수북하게 쌓이는 커피 향기를 머금은 기체를 마시는 날이 올까. 그런 커피여도 왠지 커피잔은 덜 진화한 지금의 형태로 남을것 같다. 모든것이 깡그리 변하기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것이다.
티타임 (Seoul_2016) 거리거리 커피자판기, 곳곳의 카페, 한 블럭 건너서 뒤돌아서면 비싸지 않은 커피를 파는 편의점이 즐비하지만 오랜만에 찾아 온 서울에는 의외로 바깥에 앉아서 조용히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은 별로 없었다. 그럼에도 커피가 식을것을 감안하고 조금 더 걸어 찾아가서 앉고 싶은 공간은 생긴다. 동네 구석진곳에는 버릴듯 내다놓은 낡은 소파와 플라스틱 의자가 넘쳐난다. 이곳에서도 역시 손에 쥐어야 할 것은 시간뿐인지도 모른다.
코르토나, 이탈리아인의 모카포트 나이가 들면 정말 코르토나같은 도시에서 한적하게 살고싶다. 워낙에 경사가 심해서 그 지형에 익숙하지 않은 외지인이 살기에는 좀 무리가 있지만 내 정서에 맞는 이탈리아 도시를 하나 꼽으라면 베네치아도 피렌체도 아닌 코르토나이다. 코르토나의 밤길을 걸으면서 까치발을 들고 훔쳐보았던 어떤 부엌. 인테리어 자료나 영화 속 주방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모카포트를 보고 있으면 왠지 사용하지 말고 깨끗하게 진열해놔야하는 장식품처럼 느껴져서 스스로 사용을 하면서도 가끔은 현실적이지 않다는 이중적인 느낌을 받곤 했는데 익숙한 창살사이 꽃무늬 커튼이 쳐진 실제 누군가의 부엌 한켠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모카포트들을 보고있으니 이들도 수많은 부엌살림중의 하나일 뿐인데하며 아차 했다.  2인용 4인용 6인용 8인용쯤 되려나? 나에게..
피렌체의 에스프레소 Firenze_2010피렌체 중앙역에서 베네치아행 기차를 기다리던 중 간단히 요기를 하러 역내 스낵바에 들어갔다. 이탈리아에서 매번 카페에서 주문을 할때마다 이렇게 서서 에스프레소를 단숨에 들이키고 나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에게 커피를 마신다는것은 내가 커피를 마시는 행위와는 전혀 다른 뼛속깊이 체득된 뭔가였다. 이탈리아에서의 커피맛이 다르게 느껴진것은 우유의 지방 함량,커피의 산도, 알맞게 잘 데워진 커피잔의 조화 따위로는 설명될 수 없는것이었다. 그들이 인사를 나누고 주문을 하고 한 잔의 에스프레소가 추출될때까지의 시간, 커피를 들이키고 문을 나설때까지의 낯선이들과의 짧은 대화의 시간은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두세시간씩 앉아서 수다떨때의 나른함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촘촘한 밀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