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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gypt

Egypt 12_함께 오르는 사막

2003_Black desert_Egypt


이집트의 시와에서 남쪽으로 아부심벨 신전이 있는 룩소르까지 가는 동안에는 모래사막부터 백사막과 흑사막이 차례로 펼쳐진다. 투어 차량들이 줄지어 있을 거라 예상하지도 않았지만 깃발 하나를 꽂은 채 짐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바이크를 움직이는 일본인 한 명을 본 것 말고는 대체로 싱겁고 척박했던 도로 풍경. 그렇다고 다카르랠리처럼 쫙쫙 뻗어나갈 수도 없는 것이 사막 투어 차량들의 운명이다. 예정된 시간과 할당된 끼니와 사막의 추위와 하늘의 별들에 대해 지불된 돈이 있으니. 룩소르까지 기차를 타고 곧바로 이동할 수도 있지만 소수인원을 모아 차량을 대절하면 운전기사가 해주는 음식을 먹으며 짧게는 하루 길게는 나흘에 걸쳐서 사막을 이동할 수 있다.


2003


그때 이집션 운전사를 제외한 우리는 5명이었다. 그중 두 명은 이탈리아인 아들과 엄마. 이공계 전공자였던 그는 이집트 여행이 끝나면 연구원 자격으로 일본에 장기간 머무를 예정이라 걱정스러운 어조로 이것저것을 물어왔다. 아마 일본에서의 생활이 한국과 어떤 면에서는 유사할 거라 생각한 것 같다. 그리고 그는 이집트에서 음식이 맞지 않아 내내 고생하고 있는 엄마와 함께였다. 

이동 내내 베두인의 삶 체험 프로그램이라고 해도 상관없을 만큼의 단출한 음식들이 제공되었다. 피타 브래드에 토마토 적양파 샐러드. 그리고 푸석한 푸질리 파스타 같은 것을 냄비 가득 끓여서 별다른 소스없이 먹는다. 그런데 그 마저도 이탈리아 어머니는 먹을 수 없어서 참크래커 같은 비스킷만 드셨다. 밤이 되면 아들의 도움으로 머리에 손전등을 꽂고 양치질을 하러 어딘가로 사라졌다. 그녀에게는 내가 여행 중에 만났던 유럽 여인들 특유의 체득된 여행자의 화술은 전무했다. 대체로 10분 정도는 극도로 사교적이다가 곧 솔로 모드로 쿨하게 전환되는 그 여행자들 특유의 패턴이 있다. 이탈리아 어머니는 영어를 전혀 못하기도 했지만 아들과의 간간한 대화만으로도 이미 충분해 보였다.


2003


우리는 다 같이 버려진 혹성 같은 백사막을 걸었고 채석장과도 같은 흑사막에 올랐다. 크리스털 마운틴이라는 이름만 그럴싸한 작은 돌언덕도 오르내린다. 아무런 재촉 없이 아들은 줄곧 엄마를 기다렸고 우리도 덩달아 서둘지 않았다. 우리의 사막 드라이버 청년은 나의 시디플레이어를 여기저기 눌러보며 아내에게 가져다주고 싶다고 했다.

그들 모두가 기억에 진하게 남아 이따금 떠오른다. 서로를 극진히 보살펴서도 화기애애하고 애틋해서도 아니다. 그저 모두를 둘러싸고 있던 분위기 자체가 퍽퍽하고 멜랑콜리했다. 각자의 마음속에서 따로 떠돌았던 우리는 속절없이 주먹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 같았지만 아무도 모래 더미 그 너머로 헤쳐나가지 못하고 되돌아와서는 결국 작은 냄비를 가운데 두고 둘러 앉았다.

지속적으로 건드려지는 추억들은 모이고 모여서 제법 현재의 비슷한 이야기들과 뒤섞인다. 적어도 그런 흐름들이 있다고 난 믿는 것 같다.

어떤 엄마와 아들이 여행을 떠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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