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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아니아 유로기념주화 - 리투아니아의 십자가 언덕 (Kryžių kalnas)

 



유로 동전 디자인은 15년마다 한 번씩 바꿀 수 있다. 평균 수명이 80세라고 하면 살아가면서 네다섯 번 정도는 다른 동전 도안을 볼 수 있다는 소리인데 유로가 과연 그 정도로 영원불멸의 존재인지는 모르겠다. 리투아니아가 근 80년 동안 사용한 화폐만 놓고 봐도 러시아 루블과 리투아니아 리타스와 유로화 세 종류이다. 
 
리투아니아는 2015년부터 유로화를 사용하기 시작했으니 (https://ashland.tistory.com/336)  원한다면 2030년이면 동전 디자인을 바꿀 수 있다. 국가 차원에서는 나름의 비전이 있었겠지만 솔직히 1센트부터 2유로까지 모든 동전 도안을 국장 하나로 통일한 것은 참 따분하고 재미없다. 보여주고 싶은 게 차고 넘치는 나라와 하나라도 제대로 품고 싶은 나라를 비교하는 것은 무리겠지만 왜 리투아니아는 이탈리아처럼 단테의 콧날과 비트루비안맨의 배꼽을 더하면 3유로가 될 수 있도록 동전을 만들지 않았을까. 현금 사용이 점점 줄어드는 추세이긴 하지만 그래도 다음번 리투아니아 동전 도안은 좀 다채로웠으면 좋겠다.

척박한 동전 디자인에 대한 보상심리인지 리투아니아는 기념주화를 자주 만든다. 소장용으로도 팔지만 정규 거래도 가능해서 꽤나 자주 보인다. 리투아니아 기사의 단순 묵직함과 비교하면 기념주화 디자인들은 상대적으로 소소하고 구체적이다. 지자체에서 경쟁적으로 지역축제를 기획하는 것처럼 나라 구석구석을 소개하기 위해 관광 명소나 무형문화유산을 새겨 넣는 식이다.
 
 

십자가 언덕

 

2020년에 발행된 리투아니아 기념주화 속에는 리투아니아의 관광 명소, 리투아니아인들의 저항과 신앙심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십자가 언덕이 새겨져 있다. 리투아니아에 보통 하루 정도만 머무는 단체 관광객들은 빌니우스 구시가와 트라카이성, 십자가 언덕을 거쳐서 라트비아로 향한다. 그래서 십자가 언덕에 가면 한글이 적힌 십자가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십자가 언덕 Kryžių kalnas



리투아니아에서 가장 높은 산은 300미터가 채 안된다. 국토 대부분이 평지인 리투아니아에는 특유의 언덕 지형이 있는데 중세 이전에는 그런 언덕을 중심으로 요새형 성곽이 건설됐다. 지금은 십자가로 발 디딜 틈이 없는 이 언덕도 알고 보면 그런 지형중 하나이다.  그런데 십자가 언덕 (Kryžų kalnas)에는  산을 뜻하는 Kalnas라는 단어가 들어간다. 빌니우스 구시가에 있는 게디미나스 언덕(Gedimino kalnas)에 산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리투아니아인들은 그들에게 의미 있고 상징적인 언덕들에 대부분 '산'을 붙인다
 

Kazimieras Skerstonas.1935

 
 
이 언덕에 십자가가 나타난 시기는 대략 19세기 중엽쯤으로 알려져 있다. 제정 러시아 때 민중 봉기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기리기 위해 십자가를 세우기 시작했다는 설부터 십자가를 세우고 병이 나았다는 소문이 돌아 여기저기에서 십자가를 세우러 오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까지 어디서 한 번쯤은 들어봄직한 이야기이다. 

사람들은 각각의 사연을 담아 십자가를 몸에 지니고 부엌 창가에도 놓고 자기 마당에도 세웠다.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고 영원한 사랑을 소망했다면 오히려 평온한 십자가다. 한밤중에 졸지에 시베리아행 기차에 태워진 사람들의 무사귀환을 바라며 세워진 절절한 십자가도 있을 거고 시신을 수습할 수 조차 없었던  다수를 위해 세워진 십자가도 있었을 거다. 십자가는 누군가의 묘지에도 성당에도 늘 세워졌지만 이것들이 언덕 가득히 쌓인 모습을 보면 개개인의 소망을 넘어서 같은 역사를 공유한 사람들이 서로를 위로하는 방식이었을 수도 있었겠단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직접 나무를 깎아 십자가를 만들기도 했고 십자가 장인에게 주문 제작을 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십자가의 재료도 다양해져서 돌과 시멘트, 금속으로 된 십자가들도 세워졌다.
 

Balys Buračas. 1934

 
 
하지만 19세기 민중 봉기를 전후로 뚜렷한 탄압의 역사가 시작되면서 성당과 묘지 이외의 장소에 십자가를 세우는 것은 금지된다. 종교 자체를 금지했던 소련 시대에는 말할 것도 없다.
 
십자가 언덕은 샤울레이라는 도시에 내려 시내버스를 타고 더 가야 한다. 버스에 내려서도 얼마간 가로수길을 따라 걸어 들어가면 주차장과 인포메이션 센터가 나오고 조금 더 걸으면 멀리 십자가로 뒤덮인 얕은 언덕이 보인다. 그렇게 상대적으로 외진 장소에 십자가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십자가를 뽑아서 없애도 밤새 십자가를 나른 탓에 다음날이면 또 십자가로 가득했다고 한다.  언덕 주변에 개울이 흐르고 있어 언덕으로부터 전염병이 퍼진다는 이유를 들어 전면 소각되기도 했다. 그렇게 완전히 소각되고 불도저로 밀리는 탄생과 소멸을 반복하면서도 어쩐지 언덕은 계속 성장했다.
 
사진 속 십자가들은 대략 30년 후인 1960년대에 전부 불에 태워 없어진다. 그 뒤로도 여러 번의 파괴 작업이 있었으니 현재 십자가 언덕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십자가의 나이는 대략 45년 안팎이라고 할 수 있다. 
 

Antanas Gylys.1989

 

 
십자가 언덕은 교황이 방문했고 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찾는 성지 순례 장소이긴 하지만 사실 뭔가를 세우는 행위, 믿고 숭배하는 역사는 기독교 이전부터 인류의 존재와 더불어 이미 있어왔다. 리투아니아인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마을 어귀든 자기 집 마당이든 솟대 혹은 장승을 떠올리게 하는 나무 건축물들을 세우기를 좋아했다. 역사적으로 가톨릭 성당이 세워진 자리는 대부분 가톨릭을 받아들이기 전 다신교와 자연숭배가 주를 이루던 때의 신전터인 경우가 많다. 유럽에서 가장 나중에 가톨릭을 받아들이기도 했지만 토착민족을 중심으로 꾸준히 성장한 나라여서 옛 전통과 토속신앙이 깊게 뿌리를 내렸다. 그리고 사실 국가가 가톨릭을 받아들였다고 해도 그것이 민간까지 널리 퍼지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나라의 대표가 로마 교황의 승인을 받고 왕관을 쓸 수 있게 되었다고 파발을 보냈다한들 궁벽한 시골의 사냥꾼은 여전히 숲 속에서 사냥신을 향해 무릎을 꿇었을 거다. 
 
 

십자가 언덕을 채운 다양한 형태의 기둥들



리투아니아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십자가 언덕이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은데 사실 십자가 언덕 자체는 유네스코 자연문화유산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리투아니아의 전통 십자가 공예(Kryždirbystė)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십자가 공예는 다양한 예술 장르와 신앙심이 결합된 결과물이다. 아주 작은 성당만 봐도 그곳을 채우고 있는 가구들과 조각상, 프레스코, 석고 장식들이 수많은 상징과 의미로 가득 찬 것처럼 리투아니아아 곳곳에 세워져 있는 다양한 형태의 십자가 기둥들은 작은 종교 건축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냥 단순한 십자가 하나를 만드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나무 기둥이 지탱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작은 공간을 품은 건축물을 얹고 그곳에 조각상을 집어넣고 때로는 금속 조형물을 지붕 끝에 설치하기도 한다. 건축과 조각과 금속 공예가 기둥 하나에 모두 망라되는 것이다.
 



 
세상만사에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고 시시한 자연현상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며 마음속 불안을 잠재우려 노력하던 사람들이 신전이나 성당을 찾았다면 십자가 기둥은 넓은 대지와 큰 자금이 필요한 여타 다른 종교 건축들에 비해 설치하는데 제약이 적었다. 이들 하나하나가 품고 있는 독특한 전통 문양들과 장식들을 구경하는 것도 큰 재미이다. 창작자의 개성도 느껴지고 주문한 사람 저마다의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런 다양한 작품들이 십자가 언덕을 채우고 있다.
 
 

Romualdas Požerskis.1989

 
 
이 십자가 언덕 사진은 조금 아련하다. 스카프를 머리에 두른 여인들, 언덕을 오를 채비를 하고 있는 아이들은 소련시절 스카우트 비슷한 피오네리아이를 떠오르게 한다. 자작나무는 늘 흑백사진 속에서 더 선명하다. 여러 인종들이 오래전부터 함께 뿌리내리고 살아온 탓에 십자가를 세우고 태우는 것으로 상징되는 탄압과 저항의 역사 속에서도 사실 서로를 처절하게 미워할 수도 없다. 결국 저 시기를 상상케 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이런 그림들이다. 마음껏 추억하기에는 거짓이 많았던 시기이지만 자기 생의 일부를 부정하기도 편치 않다.
 
리투아니아에는 사실 딱히 압도적인 것이 없다. 뭔가를 이기고 굴복시키려는 욕망으로 충만한 것들이 사실상 없다. 지켜내려는 역사가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십자가 언덕이 관광 명소라고는 하지만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다는 느낌도 없고 많은 관광객들이 오지만 지역 경제를 살릴 만큼 상업화된 모습은 더더욱 없다. 그저 정말 발 디딜 틈 없이 많은 십자가들이 있을 뿐이다. 눈과 비를 오롯이 겪어내며 썩어가는 중의 나무 십자가부터  수백의 작은 십자가들이 주렁주렁 매달려있어 말 그대로 십자가를 진 고뇌하는 예수상까지. 꺾여서 쓰러진 마른 고목과 싹을 틔우는 초목이 한데 어우러진 숲처럼 그저 자연스럽다. 이곳에서 압도당하고 싶다면 아름답고 성스럽고 거대하다는 것에 대한 정의가 조금은 달라야 할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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