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입구에 책 교환 수레가 있다. 매 번 갈때마다 빈 손이어서 쉽게 다른 책을 들고 올 엄두를 내지 못하다가 어떤 날에 수레에 놔두고 올 책 한 권을 챙겨서 도서관에 갔는데 이 책이 보였다. 카라마조프 형제들의 리투아니아어 번역본을 가지고 있지만 이제는 굵직한 장편들은 한국어든 리투아니아어든 여러 다른 번역으로 읽고 싶다. 더 이상 새로운 작품을 쓸 수 없는 작가를 지속적으로 기억하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고 복잡한 번역이 있고 또 좀 수월한 번역이 있기도 하니깐. 살짝 집어 든 책은 몹시 가벼웠고 정갈했고 게다가 한 권짜리. 하지만 첫 잔상이 사라지고 몇 초후에 선명하게 포착한 O 자 위의 사선. 내가 읽을 수 없는 노르웨이어였다. 하지만 어쨌든 들고 왔다. 집에 돌아와서 러시아 찻 잔에 차를 담고 버섯 빵을 대동하고 책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정말 대작가의 이름과 카라마조프의 카리스마는 어떤 언어로도 지울 수 없구나. 작가가 단 몇 년 만이라도 더 살았어서 막내 아들 알료샤의 이야기를 끝맺을 수 있었다면 참 좋았을텐데. 하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그랬을까. 써야 했던 책이라면 그는 분명 써내려갈 수 있지 않았을까. 남은이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이 작품은 정말 미완성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 리투아니아어로 남자 형제는 Brolis. 복수는 Broliai. 노르웨이어의 형제들도 러시아의 영어의 형제들도 거의 비슷하지만 노르웨이어는 뭔가 몹시 빵이라는 단어를 연상케한다. 언어를 몰라도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그냥 구석구석 이해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다. 이즈음이겠지 하고 펴서 보면 생각했던 등장인물들의 대화체가 등장하고 그들의 논쟁이 들리는 듯 하다. 마차가 눈 앞을 지나 달리고 누군가가 황급히 담을 넘는 모습이 펼쳐진다. 첫 장에는 어김없이 이 책을 안나에게 바친다는 문구와 요한복음 12장 24절의 구절이 적혀 있었다. 모르는 언어를 들여다 본 다는 것이 기억의 점자를 더듬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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