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니우스에서 13번의 겨울을 나는 동안 가장 따뜻한 겨울이다. 모든 생명체가 예고를 하고 나타나듯 카페도 예외는 아니다. 카페의 삶도 '이곳에 곧 카페가 생깁니다' 라는 문구로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생긴다고 하는 카페가 생기지 않은 적도 있으니 첫 잔을 마주하기전까지는 경건한 마음으로 잠자코 기다리는 것이다. 이제는 열었을까 하고 찾아 갔던 어떤 카페. 사실 구시가의 척추라고 해도 좋을 거리이지만 차량통행이 일방통행이고 반대 차선으로는 트롤리버스만 주행이 가능해서 유동인구가 적고 저 멀리에서 신호라도 걸리면 온 거리가 적막에 휩싸여버리는 거리이다. 건물 1층의 점포들은 대체로 뿌연 회색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 누구에게 임대를 해서 뭘 해도 잘 안되니 왠지 건물 주인이 뭐라도 해보겠다고 궁여지책으로 시작한 듯한 잡다한 인상의 가게들이 많다. 그러니 이 거리에 카페가 생긴다고 했을때는 무모하거나 아주 잘 계산된 사업이거나 라고 생각했다.
이 카페는 빌니우스 구시가의 유일한 시나고그 바로 앞에 있다. 시나고그의 코랄빛 돔과 상당히 잘 어울리는 색의 간판에 적힌 상호를 보고 있으면 왠지 건너편 시나고그 속에서 유대 경전이나 탈무드를 읽는 소리에 맞춰 커피들도 함께 주문을 외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미끄럼방지매트 위에서 제자리 행진을 하듯 신발을 부산스럽게 문지르고 옷 위에 내려 앉은 눈들을 털어내며 들어서는 날의 아침의 카페는 어떤 커피를 주어도 맛있게 마실 수 있을것 같다. 게다가 이곳은 천장이 높은 옛날 건물인데다 서향이라 아침의 자연광을 기대하기 힘든데 테이블에 미니 스탠드까지 놓여있어서 어두운 아침의 카페라면 지녀야 할 느낌으로 충만했다. 어떤 날엔 배가 너무 고파서 진열되어 있는 샌드위치를 같이 산다. 어제 만들어 놓은듯한 샌드위치 속의 루꼴라가 다듬어 놓은 쪽파 찌꺼기처럼 다 말라비틀어져 있었지만 타협하며. 그런데 한참이 지나도 가져다 주지 않아서 보니 심혈을 기울여 크루아상을 가르며 새 샌드위치를 만들어주었다.
거의 같은 시각의 아침이었지만 갈때마다 다른 사람이 커피를 만든다. 당연히 틀어주는 음악도 다르다. 그것은 손님이 나가자마자 바로 달려가서 남긴 잔을 치우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간의 차이, 커피 이외의 뭔가를 기술적으로 추천하는 사람과 방금 주문한 커피 조차 다시 물어 확인하는 사람간의 차이와도 비슷하다. 많은 테이블에 지나간 이들의 흔적을 고스란히 남긴채로 자신이 들을 음악을 트는데 열중하며 그 리듬에 취한 채 서두르지 않고 커피 기계로 다가가는 사람들이 있는 카페가 보다 자유롭다. 커피가 갈리고 뽑아지는 소리가 마치 치과의 스케일링 장비가 뿜어내는 소리처럼 눈치없고 투박하게 들릴때에도 비오는 날의 카페가 후덥지근한 식물원의 공기를 뿜어낼때에도 커피는 늘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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