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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lnius 55_발 있는 새 주말에 큰 도매 시장에 다녀왔는데 바다를 꿈꾼 것 같다. 갈매기가 되고 싶었던 까마귀는 아니었기를.
꿀과 코티지 치즈 고양이 맡기고 간 윗층 여인이 오레가노와 함께 키프로스에서 사다준 것. 양과 젖소와 염소의 젖으로 만들어진 코티지 치즈. 헉. 너무 맛있다. 리투아니아에서 사먹는 것은 아무리 압축된 것이어도 소량의 수분을 함유하고 있기 마련인데 이 코티지 치즈는 손가락 사이에서 뽀드득거리는 전분처럼 수분 제로의 짱짱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서 자연스레 꺼내는 것은 꿀. 정말 자동적으로 이제 꿀에 손이 간다. 리투아니아 꿀집에서 꿀을 사거나 양봉을 하는 사람들 (친구의 친구의 친구들중에는 숲속에서 생활하며 소규모 양봉도 하는 삼촌을 가진 이들이 꼭 한 두명씩 있게 마련이다.) 에게서 꿀을 얻어 먹으면 보통 저런 플라스틱 용기에 꿀을 담아 준다.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오이에도 가끔 저 꿀을 찍어 먹는데 정말 맛있는것은 ..
리투아니아어 43_공항 Oro uostas 주말에 버스 터미널에 마중 나갈 일이 있었다. 공항 가는 버스 타는 곳이 표시가 되있었는데 글씨가 잘 안보이네. 저렇게 작아서 안 보일줄은 몰랐다. 빌니우스 구시가지에서 국제 공항까지 엄청 가깝다. 빌니우스 시외 버스 터미널을 기준으로 하면 택시로는 10분정도 시내 버스 타고도 30분이 안걸려서 도착할 수 있다. '공항 방면'이라고 리투아니아어 영어 러시아어 순으로 써있다. Oro uostas 는 날씨, 공기, 공중을 뜻하는 Oras 에 항구를 뜻하는 Uostas 가 결합된 합성 명사이다. 명사앞에 į 라는 전치사가 붙으면 동작의 주체가 그 명사를 향하고 있음을 뜻한다. 공항 가고 싶다. 마중을 위한 공항이든 떠남을 위한 공항이든. 나 조차도 낯선 어떤 공항에서 누군가를 기다려보고도 싶다.
리투아니아어 42_Raudonėlis 오레가노 윗집에 사는 리투아니아 여인이 키프로스로 일주일 간 휴가를 가면서 고양이를 부탁했다. 하루에 한 번 물을 열고 들어가서 물과 먹이를 갈아주고 고양이 화장실 청소를 해주는 것. 덕분에 한 번도 열일이 없을 것 같았던 캔에 든 고양이 습식 사료도 열어 보고 그 캔을 열심히 다 비우는 내숭없는 고양이도 구경 할 수 있었다. 휴가에 다녀 온 여인이 페타 치즈, 코코넛 디저트 스틱 같은 이런 저런 귀여운 식품들과 함께 기념품으로 사다 준 것은 오레가노 였다. 내가 허브 중에서 오레가노를 가장 좋아한다는 것을 절대 알 리가 없는데 사다 주셨다. 저번에 베를린에서도 사온 예쁜 동그란 통의 오레가노도 아직 개시조차 하지 못했는데 또 다른 오레가노가 생겨 버린 것이다. 가장 자주 사용하는 것인데도 이상하게 쉽게 줄지 않..
누군가의 커피 2 농축된 인스턴트커피 속에서 거침없이 녹아내리는 빙하들은 혀를 데일 위험이 없는 상냥한 온도의 커피를 남겨놓고 사라지곤 한다. 한 꺼풀 한 꺼풀 시간을 두고 덧입혀지는 옷들은 좀 더 웅크리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안고 서서히 겨울을 맞이한다. 겨울은 생각만큼 급진적이지 않다. 오히려 앙칼진 바람은 아직 난방이 시작되지 않은 이 시기의 방구석으로부터 불어온다. 자비롭지 못한 것은 한겨울의 눈보라라기보다는 인기척 없는 한밤중에 정체되어 있던 10월의 실내 공기이다. 언제나 좀 더 쌀쌀맞은 것은 스카프를 잊은 초가을이고 장갑을 포기한 늦봄이다. 겨울은 결백하다. 겨울의 유배지는 그래서 겨울 그 자신이다. 10월의 방구석은 아직 늦여름에 멈춰져 있는 잠옷을 탓한다. 서랍 깊숙한 곳에서 겨울 니트를 꺼내 입는..
리투아니아어 41_불꽃놀이 Fejerverkai 여의도에서 불꽃 축제가 열렸다는데 신기하게도 빌니우스에서도 같은 날 불꽃 축제가 열렸다. 9월 30일이 세계 불꽃 축제의 날이라도 되는건가. Fejerverkai 는 '페예르베르카이' 로 읽는데 아무래도 그냥 영어의 Firework 를 비슷하게 리투아니아어로 옮긴게 아닌가 싶다. 영어의 w를 보통 v 비슷하게 발음하고 r 을 '에르' 처럼 두드러지게 발음하는 식이라 파이어보르크 에서 폐예르베르카이 가 된 것 인듯. 축제가 열리는 공원이 멀지 않아서 폭죽이 터지면 집에서 보이겠지 했는데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았다. 했겠지 뭐.
리투아니아어 40_시간 Valanda 거의 4년동안 사용하지 않고 있던 식당 은행 계좌를 다시 사용하겠다고 해서 기억이 날리 없는 코드 생성기 접근 번호를 새로 발급받기 위해 매우 오랜만에 은행에 다녀왔다. 결국은 잊고 있던 옛 번호를 그대로 받았는데 번호를 보니 너무나 익숙해서 신기했다. 앞의 네 자리만 이라도 기억했더라면 뒷자리는 기억해낼 수 있었을까. 리투아니아의 은행은 사람이 별로 없어도 오래 기다려야 할 때가 많고 사람이 많아도 창구의 절반만 열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국의 은행 시스템에 대해 이제는 잘 모르지만 옛 기억에 의존해서 비교하자면 리투아니아에서는 은행 내부에서 처리하면 더 비싼 수수료를 물어야 할 때가 많고 현금 출입금기에 돈을 입금해도 기본 수수료와 입금 금액에 따른 수수료를 지불해야 한다. 저금 하는데 돈을 내야한다..
Berlin 26_Berlin cafe 08_Five Elephants 그날은 비가 내렸다. 갑작스럽고도 짧은 비로 하루 온종일 후덥지근함이 지속되었다. 왠지 모든 탓을 비로 돌려야만할 것 같은 날의 그런 가엾은 비들이 있다. 비 내리는 횡단 보도를 건너 현금 지급기가 여러 대 놓인 은행 건물로 들어섰을 때 손수 문을 열어주고는 자신의 동전통을 내미는 아저씨가 있었다. 섹스 피스톨즈의 시드 비셔스를 떠올리게 했던 차림의 그 아저씨, 하지만 시드 비셔스처럼 취해있지 않아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는 모아진 동전으로 무얼 했을까. 빌니우스에는 꽤나 알려진 거리의 여자와 남자가 한 명씩 있다. 매우 화려한 화장과 옷차림으로 매일 빌니우스 근교 도시에서 기차를 타고 빌니우스로 출근을 해서 보통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동전을 부탁하거나 그녀를 알아보고 사진을 찍자는 사람들과 포즈를 취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