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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lnius 14_루디닌쿠 거리 Rūdininkų gatvė 수년간 매년 임시 거주권을 갱신하며 드디어 영주권자가 되었지만 한국에서도 빌니우스에서도 세상 어디에도 영구적으로 정착하겠다는 생각은 없다. 언젠가 한국에 가서 살 생각이 있느냐, 언제까지 리투아니아에 살꺼냐는 물음에는 그래서 딱히 해줄말이 없다. 모든 가능성은 열려있고 한국도 리투아니아도 아닌 다른 어떤 곳이여도 상관없다. 보다 중요한것은 어디에서 사는것이 아닌 누구와 함께 그리고 어떤 시선으로 어떠한 삶을 사는것이니깐. 당장 떠날 생각도 언젠가 이곳 생활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도 없지만 아마도 언젠가 이곳을 떠나본 적 있는 여행자의 그 아스라한 느낌때문일까 일을 하고 생활을 하고 이곳의 주민으로 살아가지만 여전히 매일매일 여행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 여행자의 느낌을 잃고 싶지 않다는것이 어쩌면 ..
Vilnius 13_우주피스 (Užupis) 지금은 빌니우스의 몽마르뜨로 불리우기도 하는 예술가들, 보헤미안들의 동네 '우주피스 (Užupis)' 이지만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그럴듯한 명성을 가진것은 아니다. 가난한 젊은 예술가들의 구역이라는 낭만적인 이력을 품고 한껏 멋스러워지고 화려하게 소비되는 세상의 많은 구역들이 그렇듯이, 한때는 갱들의 구역이기도 했던 샌프란시스코의 소살리토나 젊은 예술가들이 모이던 뉴욕의 소호처럼 그리고 서울의 합정동이나 연남동, 심지어 신사동 가로수길 같은 공간들이 그렇듯이빌니우스의 우주피스 역시 비싼 임대료를 피해 그나마 접근성이 좋은 곳에 터를 잡고 젊은이들이 자유를 누리며 교류하던 공간이었다. 지금은 그 모든 지역들이 역설적이게도 돈없는 보헤미안들이 터를 잡기에는 턱없이 비싼 임대료의 핫플레이스로 변해버렸다. 빈궁..
<Clouds of Sils Maria> Olivier Assayas (2014) 구름낀 날이 상대적으로 많은 리투아니아. 시골 땡볕이 내리 쬐다가도 한무리의 구름에 어두컴컴해지는 날씨가 아침부터 해질녘까지 수십번이고 반복된다.하지만 바람도 땡볕도 그 자체로 소중한, 한여름의 무더위도 초가을의 스산함도 없는 요즘이 일년 중 가장 이상적인 달임에는 틀림없다.구름...그렇게 한참을 우리 머리위에 소리없이 머물다가 아 오늘은 흐린날이구나 비가 오려나 생각할때쯤 스르륵 밀려나가 숨겨놓았던 햇살을 보여주고 아 비는 오지 않겠어 라고 생각하기 무섭게 보란듯이 몰려들어와 비를 내리는 변덕의 결정체.그런 구름은 내가 리투아니아 생활에서 소중하게 생각하는 많은 것들 중의 하나이다. 얼마전에 본 올리비에 아사야스의 이 영화속에서 서로 다른 연령의 세 여성이 겪는 감정적 변화와 과도기도 그런 구름을 몹시..
<Song of the sea> Tomm Moore (2014) 예쁜 만화 영화가 몹시 보고 싶은 요즘. 지브리 스튜디오의 만화와 현학적이기만한 일본의 SF 만화들 그리고 미쿡의 3D 애니메이션과는 사뭇 다른 스타일의 그림과 색상의 만화 영화를 보았다.화면을 빈틈없이 채운 아기자기한 사물들과 자연경관들은 기하학적이고 비현실적이다. 외투를 벗었을때 인간이 되는 전설속의 셀키라는 존재는 흡사 우리나라의 선녀와 나무꾼의 선녀와 비슷한데 여러가지 느낌상 북유럽 신화를 토대로 한 북유럽 애니메이션일것이라고 생각하며 계속 보는데도시에 내려온 등대지기 아빠가 펍에 앉아 쓸쓸하게 맥주를 마시는 장면을 보고 있자니 언젠가 더블린을 여행하던 지인이 보내온 엽서 속의 아일랜드 흑맥주가 떠올랐다.만화영화였지만 몇몇 아일랜드 바닷가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과 유사한 느낌을 주는것이 신기했다.아..
<I Origin> Mike Cahill (2014) 무슨 이유에서인지 영화에 집중을 하지 못하고 두세번 정도를 초반 십분 가량을 보다가 꺼버렸던 이 영화.드디어 제대로 봐야지 마음을 먹고 영화를 보기 시작해 중반에 다다르면서 빠져들기 시작했다.결말이 다소 지나치게 감상적이다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독창적이었고 뭉클했다.임신이라는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또는 내 인생에서의 매우 새롭고 의미있는 출산이라는 경험을 목전에 둔 지금의 상황에서최근에 접한 영화나 책, 주변 사람들의 얘기와 삶에 대한 그들 각자의 시선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영감과 영향을 준다.확실히 인간은 각자가 처한 상황에서 주변 상황들을 연결지으며 듣고자 하는것을 듣고 느끼고자 하는것을 느끼는데 능숙한 동물인듯하다.뱃속의 아기는 어디에서 왔을까 라는 생물학적인 공식으로는 설명이 되지 ..
<소년, 소녀를 만나다 Boy meets girl> Leos Carax (1984) 올해 빌니우스 영화제에서는 레오 까락스 회고전을 통해 다섯편의 그의 영화가 상영되었다. 맨 앞에서 가장 뒷줄의 부스럭거림이 들릴 정도로 작았던 예전의 동숭씨네마텍이나 코아 아트홀의 가장 작은 상영관과 비슷한, 멀티플렉스가 아닌 빌니우스 토종 극장 Skalbija 에서 영어 자막이 담긴 필름에 리투아니아어 자막이 동시에 지나가는 자막 기구와 함께 매우 고요한 가운데 보았다. 이 영화는 동숭씨네마텍이 개관하고 두번째인가 세번째 상영작이었다. 왜인지 꼭 한 번 다시 극장에서 보고 싶었던 이 흑백 영화를 그렇게 우연인듯 필연인듯 다시 보았다. 제목이 너무나 예쁜 영화다. 그대로 번역한 한국어 제목도 그냥 그대로 너무나 아름답다. 동사가 문장에 마지막에 오는 우리말 특성 때문에 생겨난 소년과 소녀사이의 쉼표도 뭔..
<우리 선희> 홍상수 (2013)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인데 홍상수 감독의 새로운 영화의 배경이 수원이란다. 매번 무슨 영화를 만드는지도 만들었는지도 모른채 마치 비디오 가게에 열편씩 나열된 신작 비디오를 발견할때처럼 습관처럼 보아오던 그의 영화인데 영화의 배경 덕택에 처음으로 기대란걸 하고 기다리게 됐다. 수원에 세번을 갔는데 간 목적은 화성이 전부였다. 수원의 시내버스까지 갈아타야 했었는데 그 울렁이는 기분도 추억이 됐다. 고궁 촬영을 즐기는 감독이니 수원에 가서 수원 화성을 지나치진 않겠지? 게다가 새로운 영화에 에서 인상 깊었던 정재영이 나온다니 더더욱 기다린다. 정재영한텐 미안하지만 이 배우는 천만배우 이런거 안되고 그냥 뭔가 이런 귀여운 배우로 남았으면 좋겠다. 가끔 생각한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그 자신도 아카데미 남우주연..
<자유의 언덕> 홍상수 (2014) 올해 리투아니아의 빌니우스 영화제 Kino Pavasaris 에서는 홍상수의 2014년작 도 상영이 된다. 빌니우스의 관객들이 그의 이전 다른 작품들을 접할 기회가 있었기를 바란다. 그의 영화들만큼 유기적으로 연결된 영화들이 있을까도 싶고 그 연결 장치조차 우연처럼 가장 할 줄 아는 감독의 연출 방식을 알고 볼때에야 영화가 배로 재밌어지기 때문이다. 그의 영화의 내러티브는 작품내에서가 아닌 오히려 작품외에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이 가끔든다. 그는 이미 어떤 등장인물이 참가해도 무리가 없는 자신의 이야기 하나를 가진채로 그때그때 시간이 되는 등장인물들을 비슷한 공간에 불러다 놓고 그들 자신의 이야기를 약간 버무려서 영화를 만들어낸다. 사건의 나열은 뒤죽박죽이고 간신히 정립해놓은 인과관계도 익숙한 공간의 뜬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