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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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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아니아어 23_Stiklas 유리 작년인가 파네베지에 왔을때에도 Popierius (종이) 가 적힌 쓰레기통 사진을 올린적이 있다. 이런 쓰레기통들은 빌니우스 에도 널렸는데 왜 꼭 파네베지에서만 찍게되는지 모르겠다. 아니다. 알것같다. 사람도 차도 소음도 절대적으로 적은 적막한 파네베지의 휑한 거리에 움직임없이 서있는 이 쓰레기통들 만큼 이곳 역시 사람이 사는곳임을 느끼게 하는것이 없기때문이다. 좀 더 안락해보이는 삶을 위해 이민을 떠나는 사람들, 학생이 부족해서 문을 닫는 학교들이 있어도 여전히 누군가는 쓰레기를 버리고 치워가고 쓰레기통을 뒤진다. 허리를 넘겨 무성하게 자란 잡초들로 버려진 땅처럼 보였던 곳들엔 정원을 가진 좋은 단독 주택들이 지어진다. 외국에 살며 돈을 번 사람들이 돌아와서 살 집을 짓거나 그들이 돌아오고 있거나 어느..
리투아니아어 22_Prieiti po vieną 한명씩 차례대로 병원이든 어디든 줄을 서서 기다리는 접수 창구 같은 곳이나 은행의 자동입출금기가 놓여진 장소 등등 약간의 익명성이 요구되는곳에서 으례 발견할 수 있는 말. '한명씩 차례대로' . Prieiti 는 어떤 장소로 가까이 다가서는 것을 의미하는 동사인데 리투아니아어도 러시아어와 비슷하게 동사원형에 다양한 접두사가 붙어서 동작의 경로나 완료 방식, 정도, 횟수등의 뉘앙스가 변한다. '과식하다'. '입가심으로 조금만 먹다'. '너무 먹어서 질린다'. 등의 먹는다 동사의 뉘앙스가 동사 앞에 붙는 접두사로 다 표현이 된다. 한편으로는 참 편리한 구조인데 언어가 생소할때에는 그 뻔해보이는 차이 조차 감지해내기가 힘들때가 있다. 그런 시기들을 지나고 실수조차 하기 힘들정도로 그런 동사들이 상황에 맞게 입에 착착 붙어서 ..
드레스덴의 보위와 로스코 베를린에서 드레스덴으로 연두색 플릭스 버스를 타고 나와 함께 이동하여 다시 프라하로 그리고 한국으로 토끼님 손을 잡고 돌아간 이 친구들.  내 품을 떠나기 직전에 토끼님의 주스 옆에서 자비롭게 포즈를 취해주었다.  이들은 유태인 뮤지엄에  갔을때 산 로스코 엽서와 드레스덴 가기 바로 전날 패브릭 마켓에서 가까스로 만난  데이빗 보위가 프린트된 타일이다.   유태인 뮤지엄 기프트 샵에 로스코 엽서가 여러 종류 있었지만 이 한 작품만  집어온 이유는 파리 지하철역에서 발견한 단 한 장의 로스코 엽서처럼  이번 베를린 여행에서도 한 장만 데려가는 원칙을 고수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런 색감의 로스코 그림은 사실 본적이 없기도했고 이미 그때부터 토끼님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던것인지 똑같은 엽서를 두..
드레스덴에서 친구 만나기, 에벨과 엘베 베를린과 커피. 나로 하여금 수십잔의 커피를 마시게 한 도시. 당분간은 다른 새로운 곳을 여행하는 대신 이곳에만 자주 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곳. 그곳에 갈때마다 빠뜨리지 않고 찾아가고 싶은,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는듯한 정말 마음에 드는 나만의 카페를 나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곳. 그리고 이번 여행에서 난 누군가가 몹시 소중하게 여기는 그런 카페에서  손수 고른 예쁜 에스프레소 잔과 커피콩과 엽서를 선물받았다. 베를린도 아닌 드레스덴에서 가슴이 따뜻해졌던 유쾌한 만남이 있었다. 이 정열적이고도 몽환적인 커피잔은 프라하의 에벨이라는 카페문을 나서서 똑같은 이름이 적힌 종이 가방에 담겨져 노란 꿀벌 버스를 타고 나에게로 왔다.  꿀벌이 날라다 준 커피. 어찌 달콤하지 않을 수 있을까. 조만..
Berlin 06_100번 버스를 타고 거리 이름들을 잘 기억하는 편인데 돌아 온 지금 어떤 거리들을 돌아다녔는지 그곳이 베를린의 어디쯤이었는지 별로 감이 안온다. 환승을 자주 했던 Hermannplatz 나 Kottbusser tor 역 정도만이 선명하게 기억날뿐이다. 다행히 론리플래닛을 남겨놓고 오는 대신 데리고 온 베를린 지도를 가끔씩 들여다보니 내가 갔던곳들이 어디의 어디쯤이었는지 좌표를 가지기 시작했다. 여기 거기 저기를 가자고하면 친구는 아침에 루트를 만들고 R2D2 와 같은 헌신적인 자세로 모든 여행을 지휘했다. 그 덕에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마치 Jabba 처럼 거리에 눕다시피한 무대뽀 마인드로 베를린을 부유할 수 있었다. 나는 단지 떠나왔기때문이 아니라 이곳에 존재하고 있었기에 해방된 느낌이 들었다. 구글맵스같은것을 켜면 지도..
Berlin 05_붉은 파라솔 사이로 베를린에 있는 동안 날씨가 좋았다. 나는 내가 낯선 곳에 도착했을때 방금 막 비가 내린 상태의 축축함이나 공기중에 아지랑이처럼 묻어나는 흙냄새를 느낀다면 가장 이상적인 여행의 시작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아마 지나간 어떤 여행들이 그런 모습이었고 그 모든 여행들이 좋았기에 그런것같다. 하긴 여행이 싫었던적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베를린에서는 매우 짧고도 인상적인 비가 딱 한번 내렸다. 내가 비를 맞은 횡단보도를 영원히 기억할 수 있을 지경이다. 밤이되면 친구의 어플속에서 새어나오는 빗소리를 들으며 잠에 들었다. 그것이 베를린에서 나에게 할당된 빗방울의 전부였다. 그외의 순간들은 모두 해가 쨍쨍났다. 도착한 다음날부터는 32도에 육박하는 무더운 날씨가 지속되었다. 다소 덥다 싶은 옷을 입고 신발을 신고..
Berlin 04_베를린 쾌변의 뮤즈들 베를린 도착 다음날. 그날 두번째로 갔던 카페의 화장실 문에 저런것이 걸려있었다. 얼마전에 운명을 달리 하신 캐리 피셔 공주님. 베를린 화장실 문속에서 환하게 웃고 계셨다. 죽어도 죽지 않은 그녀. 묵념을 하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같은 날 자리를 옮겨 혼자 돌아다니다 들어간 카페. 이름하여 'Karl Marx says relax' 칼 마르크스 거리에 있는 카페였다. 그래 맛있는 커피나 마시며 칼 옹 말씀대로 릴랙스 하자였는데 화장실 문을 보는순간 카페 이름을 더 실감하게 했던. 100년도 훨씬 전에 돌아가신 이분도 베를린의 카페 화장실 문속에서 진한 핑크빛으로 살아계셨다. 사실 꼭 외국 여행을 하지 않더라도 어딜가든 항상 가게되는 장소들이나 반복적으로 보게 되는 물건들에는 눈이 가지 않을 수 없는데 어쨌..
Berlin 03_케밥집 앞 횡단보도 빌니우스에서 베를린까지 한시간 반. 가방을 올리고 앉자마자 거의 내리다시피 했다. 보딩패스도 미리 프린트를 해갔기에 짐가방의 무게를 체크하는 사람도 없었고 작은 테겔 공항을 아무런 입국 절차도 없이 엉겁결에 빠져나왔을때엔 마치 시골 시외버스터미널 화장실에서 먼저 나와 나를 기다리는듯한 느낌으로 친구가 서있었다. 두달만에 만난 친구. 서울도 빌니우스도 아닌 제 3의 장소에서. 베를린의 첫 느낌은 그랬다. 몹시 익숙하고도 낯설었다. 전신주에 붙어있는 횡단보도 스위치는 빌니우스의 그것과 같았지만 길거리를 가득 메운 케밥 가게와 경적을 울리며 승용차 차창밖으로 머리를 내밀어 지나가는 아랍 친구들을 불러 세우는 이민자들의 모습에서 이곳은 분명 내가 모르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도 이곳에서는 여행객이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