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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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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rlin 02_마지막 한조각 프렌치 토스트 베를린은 일요일에 마트가 영업을 하지 않아서 한국의 동네 슈퍼나 편의점에 해당하는 슈파티 Spati 같은 곳을 제외하고는 일요일에는 물건이나 식품을 살 수 있는곳이 많지 않다고 한다. 꼭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일요일에 카페에서 아침겸 점심을 먹는 경향이 있다고 하는데 이번에 와서 느끼지만 내가 파리에 가기전에 어렴풋이 예상하고 기대했던 일상적인 느낌을 베를린에서 오히려 많이 받고 있다. 건조하고 무뚝뚝한것 같으면서도 나름 친화적인 사람들, 도시 곳곳의 크고 작은 공원들, 청결이라는 강박에서 해방된 도시, 유럽의 대도시 하면 바로 떠오르는 파리 로마 런던이라는 카테고리에도 쉽사리 집어 넣기 힘든 이곳이 그런 이유로 더 마음이 간다. 어쩌면 리투아니아 생활을 오래하면서 알게모르게 뼛속에 스며든..
토마토를 자르다가 토마토속의 수많은 방. 입구와 출구가 하나뿐인 들어가면 뒤엉켜서 사라지고 마는 방.
Berlin 01_베를린에 두고 온 베를린 론리플래닛 언제나처럼 여행의 시작은 론리플래닛. 잘 읽지도 않을거면서 그냥 습관적으로 사게 된다. 이번엔 서점에서 만지작만지작 거리며 살까 말까 하다가 최신판이라 결국 계산해버리고 기한없는 베를린행을 택한 친구에게 남겨두고 오기로 했다. 난 이곳에 사는게 막연히 좋았지만 자부심 같은것은 느껴본적이 없는데 지척으로 온 친구를 별 부담없이 방문할 수 있는 가까운곳에 살아서 환희에 젖었다. 나중을 기약하면 왠지 기회가 오지 않을것 같아서 검색하자마자 티켓을 사버리고 말았다. 베를린에는 8년전에 프라하에 갔을때 계획에 없던 여행으로 일주일간 다녀온적이 있다. 호스텔에서 제공하는 무료 봉사 가이드를 따라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던 8월의 베를린.  혼자서 비행기에 몸을 맡겨본지 언제인지. 2주동안 기내반입수화물만 지니고 더할나위..
미성년의 책갈피 여행지에 가면 마그넷만큼 많이 파는게 책갈피이다. 서울은 이제 나에게 여행지 비슷한곳이 되어버렸기에 이번에 갔을때 도 의도한것이 아니었음에도 많은 책갈피를 손에 넣게 되었다. 인내심과 집중력 부족으로 책 한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내지 못하는 나에게는 사실 많은 책갈피가 필요하다. 이책에도 찔러 놓고 저책에도 찔러 놓고 기억이 안나서 또 처음부터 다시 읽고. 미성년속에서 직분을 다하고 있는 책갈피는 르코르뷔지에 전에서 사온 그의 모듈러 책갈피이다. 연필글씨를 쓸때 또독또독 소리를 내는 빳빳한 책받침같은 질감을 내서 좋다. 그나저나 미성년의 한 부분을 읽다가, 아르까지 돌고루끼가 경매장에 가서 빨간색 가죽 가족앨범을 2루블 5카페이카에 사서 10루블에 판 날인데 고등학교 친구를 만나러 가는 장면에 이런 구..
s tiLL Ife 이전까지 난 내가 멋진 풍경화속에서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자유로운 인물이였으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 생각에는 큰 변함이 없지만 내 전두엽 깊숙한곳 어디쯤에서는 그냥 평화로운 정물화속의 고정된 피사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보는것은 어때라는 신호를 보내온다. 누군가가 움직여줘야만 비로소 그때 내게 할당한 빛으로 인해 내 신체의 극히 일부분만이 빛을 발하고 의미를 가질 수 있게 된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그런 부자유로 획득할 수 있는 영혼의 자유가 더 무게감있게 다가온다. 타르코프스키의 사진첩 속의 정물들이 너무나 자유롭고도 생동감있게 움직인다. 금방이라도 구를것같은 양파. 물병을 헤엄쳐나와 공기중으로 사라질것만같은 꽃다발. 그들에게 의미를 부여한 빛은 곧 자리를 옮겨가겠지만.
Vilnius 45_Stairway to (Vilnius_2017) 길을 걷다가 나무 계단과 칠이 벗겨진 벽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찍었다. 삐그덕삐그덕 소리를 내지 않을까 올라가 보고 싶었지만 간신히 참았다. 벽을 파고 들어가는 나무 계단이 참을 수 없게 느껴졌다. 살을 파고 들어가는 발톱이나 아스팔트를 뚫고 뻗어나가는 울퉁불퉁한 나무 뿌리처럼.
르코르뷔지에_빌니우스의 롱샹성당 (Vilnius_2017) 가장 자주 걷는 길인데 항상 보던 이 건물이 오늘은 퍽이나 르 코르뷔지에의 롱샹 성당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도대체 어딜봐서 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내 눈엔 매우 몹시 그렇다. 실제 롱샹성당의 둥그스름하고도 오묘한 카리스마는 분명 없지만 그것을 누그러뜨린 직선의 형태로. 언제일지 모르지만 꼭 가게 될것 같은 공간. 가야하는 공간. 매일 지나다니면서 이곳에서 묵념을 해야겠다.
리투아니아어 21_힘, 강인함 Stiprybė 벌써 160년째 벌을 서고 있는 아틀라스를 보면서 아름답다고 생각하는것이 항상 얼마나 미안하던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항상 그 자리에. 오늘 구시가지를 걷는 내내 6개월동안 변한것과 변하지 않은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오래된 건물 하나는 엎어졌고 집 앞 마트에는 우체국이 들어섰다. 그리고 그는 60년후에 내가 죽은 후에도 이 자리에 있겠지. Stiprybė 스티프리베. 이 단어가 이렇게 잔혹하게 느껴진적이 없었다. '힘내, 아틀라스' 애정어린 격려의 메세지라기 보다는. '강인해져. 넌 버텨내야되. 넌 항상 그랬으니 앞으로도 그래야지' 라는 강요의 메세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그랬다. Stiprybės 는 복수형이다. 힘, 강인함, 강점 등등의 뜻이 있다. ė 로 끝나는 여성형명사에는 아름다운 단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