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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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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의 리알토 극장 (Amsterdam_2008)  암스테르담에서 알게된 인도네시아 여자가 한 영화제에서 '시크릿 션샤인' 이라는 한국 영화를 인상깊게 봤다고 했다. 처음에는 무슨 영화인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영화 줄거리를 듣고 있다보니 이창동 감독의 '밀양'이었다.  그 영화를 봤었던게 참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아무도 미국인을 만나서는 '나 너네 나라 영화 스파이더맨 봤는데 너는 알아?"  라고 말하진 않을것이다. 왠지 아득하게 느껴지는 나라들, 쉽게 접하기 힘든 나라의 독특한 영화들, 음악들에 대해 넌지시 물을 수 있는 기회를 잡았을때 그리고 소통이 이루어졌을때의 전율이란것이 있다. 나는 그 여인이 그 짤막한 대화에서 그런 희열을 느꼈을거라고 멋대로 짐작하며 기분이 좋아졌다.  3주라는 짤막한 시간에 타지에서..
몽마르뜨의 크레페리아 (Paris_2013)나는 일하는 도중에 나와서 혼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좋다. 뒷문의 후미진 골목에 쪼그리고 앉아서 쫓기듯 담배를 피우고 땅바닥에 멋없이 비벼끄는 사람들보다는 곧 돌아가야 할 일터를 등지고 먼곳을 응시하고 서서는 난 지금 쉬는중이요. 알았소? 라고 말하고 있는듯한 당당함이 좋다. 그들 대부분은 앞치마를 두르고 있거나 키친 클로스따위를 주머니에 아무렇게나 찔러 넣고 있었다. 가게 안은 그로 인해 텅 비어 있다. 대신 주문을 받아줄 수 있는 동료가 있는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항상 여유로워 보였다. 배가 고프오? 나는 담배가 고프오. 라고 말하고 있는것 같았다. 우리의 욕망은 충돌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나의 허기짐은 내 옆을 스쳐지나가는 거대한 운석을 ..
파리의 바그다드 카페 (Paris_2013) 파리의 어디쯤이었을까. 아마도 머물던 집을 나와서 센강 주변으로 이동할때 지나치던 길목중 하나였을것으로 짐작된다. 우리가 머물던곳은 파리 5구에 위치한 가정집이었는데 세탁소와 헌책방이 있는 평범하고 한적한 동네 어귀를 돌아 얼마간 걷다보면 당혹스러울만치 뜬금없었던 매우 커다란 이슬람 사원 (Mosquee de Paris) 이 나타났다. 그 사원은 우리가 여전히 길을 잃지 않고 노트르담 사원 (Cathedrale de Notre Dame de Paris) 이 있는 서쪽으로 향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하나의 이정표였다. 그렇게 서쪽으로 계속 걷다보면 골목의 초입부터 항상 북적북적되던 무프타르 거리 (Rue Mouffetard) 가 나왔다. 길게 늘어진 오르막길 양옆으로 간판에 그리스 국..
리투아니아의 유로 동전 2015년 1월1일. 리투아니아에 유로가 처음 사용되던 그날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물론 신년 휴일이었고 화창한 날씨에 구시가지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마음이 안놓여 정오가 지나 식당에 나가봤는데 생각보다 모든게 자연스러워보였다. 식당에서 일하고 있던 나에게는 이미 2014년 여름부터 유로화 도입 관련 메일들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유로화 사용이 가능한 1월 1일부터 한달간은 모든 공공 장소에서 리투아니아 자국 화폐 리타스의 사용이 가능했지만 거스름돈은 반드시 유로로 거슬러줘야했기에 식당으로써는 유로 화폐와 동전을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11월 한달간 법인 고객에 한해서 유로 동전을 예약할 수 있는 기간이 주어졌지만 이른 여름부터 수신하기 시작했던 광고 메일들에 익숙해진 나머지 완전..
Russia 02_10년전 3월_2 영화를 보다 마음에 드는 음악이 흘러나오면 수록곡이 나열되는 순간이 올때까지, 그렇게 크레딧이 다 올라가서 대부분의 경우 돌비 사운드 마크가 나올때까지 영화를 보곤 한다. 그리고 그 음악들을 찾아 듣고 나면 어쩔때는 그 노래의 특정 가사에 꽂혀 또 생각나는 어떤 이미지들이나 영화들을 검색하게되고 그러다보면 또 어떤 영화들을 찾아 보고 있고 그러다가 영화 속에 나오는 음식이나 도시들의 이미지에 사로 잡혀서는 혹시 운이 좋아서 내가 이미 가본 곳이거나 내가 먹어본 것이거나 내가 경험했던 뭔가에 상응하는 장면이 있다면 자잘한 개인사에 연결지어서 또 수많은 기억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된다. 그렇게 있다보면 어느새 하루가 간다. 나는 아직 내게 벌어지지 않은 새로운 삶의 바퀴를 매순간 밀고있지만 방금전에 내 손..
라트비아의 유로 동전속의 여인 '밀다 Milda' 카라멜이 들어가있는 쭉쭉 늘어나는 쵸코바들을 별로 안 좋아하는 나. 스니커즈는 내가 좋아하는 쵸코바가 아닌데 왜 사먹었을까. 이 쵸코바는 10년전 라트비아에서 리투아니아로 넘어가는 도중의 작은 휴게소에서 사먹은것이다. 왜냐하면 가지고 있는 라트비다 돈을 최대한 없애야 했기때문에. 곰곰히 생각해보면 나름대로 역사적인 사진. 요즘의 어린이들에게 "떨리는 수화기를 들고 너를 사랑해...야윈 두손에 외로운 동전 두개 뿐" 이라는 015B의 노래를 들려주면 10원짜리 동전 두개를 넣으면 길거리에서 전화를 걸 수 있었던 시대를 이해할 수 없을것이다. 시간이 조금만 더 지나면 이 노래는 가족 오락관이나 골든 벨 같은 퀴즈 프로그램에서 '왜 동전이 두개였을까요?'라는 퀴즈로 등장할지도 모른다. (이 두개의 퀴즈 프로그..
이탈리아 2유로 동전속의 '단테 Dante Alighieri' 해가 나고 따뜻한 날이 많았던 지난주와 달리 이번주 내내 비가 내리고 날이 어둡다. 춥다기 보다는 차가운 날씨. 쌀쌀하다기 보다는 쓸쓸한 날씨. 촉촉하다기 보다는 축축한 날씨. 그런 날이 되면 늘 생각나는 동네 빵집에 오늘 근 몇달만에 커피를 마시러 들렀다. 이 빵집은 일전에 남편이 에클레르를 샀던 빵집인데 그 날 지갑속에서 생소한 유로 동전을 발견하는 바람에 두개 사려던 에클레르를 하나만 샀던 적이 있다. 오늘 계산을 하고 손에 쥐어 진 잔돈을 보니 운좋게도 처음 보는 2유로 짜리 동전이었다. 왠지 이 빵집에 오면 다른 나라의 유로 동전 볼일이 자주 생길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버스 터미널에서 가까우니 관광객들이 자주 드나들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유로 동전을 발견하면 어떤 나라의 동전일까 짐작해보는 재..
Vilnius Sculpture 02_빌니우스의 사냥개 동상 작년 8월 즈음. 대성당이 자리잡은 게디미나스 언덕 아래 공원을 걷다가 발견한 개들. 언제부터 여기에 이렇게 살고 있었지? 자주 걷던 구역인데 못보던 친구들이다. 보자마자 지나치게 흥겨운 노래 한 곡 떠오름. Who let the dogs out! 어디서 뛰쳐 나온 개들이지. 멀리서 어렴풋이 봤더라면 살아있는 개라고 생각했을것 같다. 금세라도 달려 나갈것처럼 한 방향을 주시하고 있음. 으르렁거리고 있진 않음. 빌니우스에 동상 하나가 더 생긴게 너무 기뻐 한참을 요리조리 살펴 봄. 이 근처에 봄되면 졸졸졸 강물이 흐르는데 1년후에 아기가 걷게되서 함께 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었다. 그리고 어느덧 시간이 흘러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국가의 주도로 정치적인 목적으로 세워지는 인물 동상을 제외하면 특정 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