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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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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아니아어 2_안녕, 나중에 봐 - iki 리투아니아의 주요 마트 체인 중 하나인 '이키 IKI' 리투아니아어로 ' 안녕' '잘있어'의 뜻으로 가장 널리 쓰이는 작별인사이다.iki는 안면이 있는 사람, 가까운 사람들에 한해서 다시 만나는것이 어렵지 않은 상황에서 주로 쓰인다. 퇴근을 하면서 동료들에게 인사한다거나 잠깐 외출을 할때 집에 남아있는 사람들한테 할 수 있다. 반면에 잘 모르는 사람이라던가 안면이 있지만 아주 가깝지는 않을 경우, 특히 상점을 나서면서 점원들에게 예절바르게 할 수 있는 인사말은 '비쏘게로' viso gero! 이것은 visas geras. 라는 1격형 단어를 2격으로 변환시킨것으로 러시아어의 всего хорошего 와 일치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출처] 간단한 러시아어강의 1.5 - 필수 회..
Russia 05_오래전 러시아 여행 회상하며 보낸 소포 (Vilnius_2006) 러시아부터 발트 3국을 여행하고 바르샤바로 떠나기전 빌니우스에서 해당 나라의 론니 플래닛을 전부 잘라서 버렸다. 동유럽 론니 플래닛이 너무 두꺼워서 무겁기도 했지만 (물론 그것을 잘라 버렸어도 결코 가벼워지지 않았지만) 3월말에도 짖궂게 쌓여있는 눈을 보며 4월에는 제발 따뜻한 봄이 오기를 간절히 바랬었다. 물론 지금은 4월에 겨울 부츠를 신고다니는것이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기나긴 겨울에 익숙해졌다. '여름이 싫다, 추운 나라에 살면 좋겠다, 겨울이 긴 나라에 살고 싶어.' 라는 어릴적 나의 막연한 생각들은 어느 겨울의 끝자락, 러시아로 나를 끌어 당겼다. 그리고 어쩌다보니 그 러시아를 추억하는것이 물리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낯설지 않은 이곳에서 살게 되었다. 러시아 여행에 다녀..
Russia 04_지금은 근무중 2 (Moscow_2006) 여행 수첩 사이사이에 모습을 감추고 있는 오래된 영수증과 입장권들처럼 이들은 내 기억 꾸러미속에 조용히 잠들어 있다가 비슷한 친구들을 만났을때, 유사한 온도속 도시의 향기가 나의 콧날을 스칠때, 그런 작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지금이다 하고 모습을 드러낸다. 나의 오감이 지배당했던 과거의 어느 한순간. 바닥에 닿자마자 자취를 감추던 하얀 눈들 위로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지나가던 여인들. 높은 굽의 겨울 부츠를 신고도 쌓인 눈 위를 거침없이 지나던 사람들 사이에서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발가락 끝까지 힘을 주어 걷던 나. 쌓인 눈을 쓸고 퍼내고 밀어내느라 분주했던 일꾼들. 3월이 왔어도 모스크바의 겨울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었다.
Vilnius 27_지금은 근무중 (Vilnius_2016) 영원한 휴가를 꿈꾸는데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매력을 느끼다니 아이러니하다. 힘들수도 있는데. 아 하늘은 이렇게나 파랗고 바람이 이렇게나 싱그러운데 일을 해야하다니 불만 한가득일 수 있는데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셔터를 누른다. 무거운 호스를 내려 놓고 잠시만이라도 고개를 들어 머리위의 하늘을 보세요. 한껏 물 마시고 촉촉해진 화단 가장자리에 앉아서 담배라도 한대 태우세요. 그러면 내 마음이 조금이라도 가벼워질텐데. 그렇게 한참을 쳐다봤는데 기사석에 앉아있던 고참으로 보이는 사람이 나와 이러쿵저러쿵 물주는 방법에 대해 훈수를 두었다. 그래도 나쁘지만은 않은 하루였기를. 돌아가면 그를 맞이하는 포근한 미소와 폭신한 한구석을 가진 삶이기를.
리투아니아어 1_고마워 - Ačiū (Vilnius_2016) 거리. 벽과 바닥과 하늘로 이루어진 그 끝없이 연결된 통로속에 금새 나타난듯 혹은 곧 사라질듯 이쪽과 저쪽의 끝에 가까스로 자리 잡은 사람들의 모습이 좋다. 마음에 드는 배경을 발견했는데 저 멀리 누군가가 걸어오고 있다면 내 사각의 프레임속으로 그들이 들어오길 잠자코 기다릴때가 있다. 간혹 일부러 지나가지 않고 사진 찍기를 마치기를 기다려주는 사람들도 있다. 그럴때엔 웃으며 지나가라고 손짓하곤 딴짓을 하기 시작한다. Ačiū 는 리투아니아어로 '고맙습니다' 라는 뜻이다.A 글자 밑에 적힌 Prašom 은 '천만에요,뭘요' 정도가 되겠다. 아츄, 프라숌 정도로 발음하면 된다.
Vilnius 26_인생의 분위기 메이커 (Vilnius_2016) 늦잠을 자고 일어나거나 한 여름 밤 뒤에 바짝 달라붙어 몰려오는 이른 아침의 얇은 빛줄기 혹은 부지런한 새소리에 자연스럽게 깨어나서는 대충 눈꼽을 떼고 커다란 남방 따위를 걸치고 신발을 구겨신고 아래층으로 내려가면 방금 막 문을 연 카페가 있는 건물에 사는것도 나쁘지 않겠다 가끔 생각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게 햇살이 스며드는 발코니에 저런 의자가 놓여져있다면 오히려 왠지 아래층 카페에는 가게 되지 않을거라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저런 의자를 놓아둘 발코니가 없더라도 아슬아슬하게라도 잠시 햇살이 머물다가는 그런 부엌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할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그런 부엌이 없어서 커피가 맛이 없다고 생각된다면 카페에 가면 되는것이다.
Russia 03_모스크바의 회색 (Moscow_2006) 모스크바에 머물던 일주일은 주로 회색이었고 거의 항상 눈이 내렸다. 봄이 오면 버리려고 신고 간 낡은 신발에 간간이 물이 스며들었다. 내리는 눈은 불구덩이에서 뛰쳐나와 부유하는 재처럼 느껴졌다. 넓은 대로를 빈틈없이 휘감고 있던 시멘트빛 관공서와 거대한 은행 건물들 사이로 떨어지던 투명한 눈들이 건물의 잿빛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것처럼 보였다. 혹자는 삭막하고 위압적이라고 말할지 모르는 그런 모스크바의 건물들이 나는 좋았다.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버린 이데올로기를 투영하고 있는 듯한 그런 건축물들은 나로 하여금 일련의 디스토피아 만화들을 떠올리게 했다. 그것은 오히려 미래적이었다.
로테르담에서 만난 사람 (Rotterdam_2008)  암스테르담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온 로테르담. 원래는 브뤼셀까지 가보기로 했지만 비를 품은 듯한 우중충한 날씨가 왠지 로테르담이 더 어울리것 같아 중간에 내리고 말았다. 강풍과 폭우에 휘청이는 고공 크레인과 우산이 뒤집어져서 날아가는 상상을 하며 내렸지만 나를 맞이한것은 약간의 바람과 약간의 비.  그리고 이 사람.  '나를 내려줘' 혹은 '너도 올라올래?' 라고 말하는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