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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huanian Langu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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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아니아어 87_어둠 Tamsa 세상의 여러 전쟁들 중엔 알려지면 알려질수록 길면 길어질수록 누군가에게는 이로운 전쟁, 그러니 구조적으로 알려지지 않으면 안 되는 전쟁과 알려져 봤자 별로 좋을 것도 없고 관심도 못 받을 테니 알려지더라도 묻히고 근본적으로 알려지지 조차 않는 그런 전쟁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전쟁들이 대외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와 상관없이 그의 영향 아래 놓여 있는 힘없는 사람들의 고통은 매한가지로 참혹한 것이다. 그러니 새삼 전쟁이 나면 알려질 가능성이 높은 위치에 살고 있다는 게 최소한 다행이라는 우습고도 자조적인 생각이 들었다. 전쟁은 그렇게 쉽게 일어나지 않겠지만 지금 피난길에 오른 사람들의 얼마 전 일상도 아마 쉽게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믿고 싶었던 전쟁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했겠지. 삶의 터전을 등지고..
리투아니아어 86_오리 Antis 지난주에 별생각 없이 집어 온 동화책. 오리는 또 왜들 그렇게 귀여운지.현실에서 이 오리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대포 속의 오리.전쟁 시작 전. 병사가 다급하게 장군에게 달려온다.-장군님. 대포를 쏠 수가 없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냐 대포를 쏠 수 없다니!-대포 속에 오리가 둥지를 틀었습니다.-뭐라고? 공격하려던 도시의 수장에게 대포를 빌리러 백기를 들고 들어가는 장군-대포 하나 빌려주세요. 전쟁을 하는데 우리만 대포가 없으면 공평하지 않습니다.-대포가 우리도 하나밖에 없는데 어떻게 빌려준단 말이오.-그러니깐 그쪽에서 우리쪽으로 대포를 쏘면 우리가 대포를 가져와서 또 그쪽으로 쏘면 되지 않습니까.-아니 절대 그렇게는 안되오. 게다가 우리 대포는 너무 무거워서 꿈쩍도 안 할 거요. 당신들은 오리들이..
리투아니아어 85_백과사전 Enciklopedija '나의 첫 백과사전'이라는 책. 어린이 도서관에 있는 이런 책을 가끔 빌려온다. 한 번도 접할 기회도 말할 기회도 없어서 어떤 때는 알면서도 말할 수 없어 돌려돌려 설명해야 하는 단어들이 예상보다 참 많은데 예를 들면 양서류, 자전축, 홍채 뭐 그런 것들. 이런 책에는 초중고등학교에서 배우는 그런 기본적인 단어들이 삽화와 함께 총망라되어 있으니 지루하지 않게 기억을 환기시킬 수 있어 좋다. 약국이나 서점의 세일 상품 전단지와 더불어 비일상적인 단어들의 보고라고 할 수 있겠다. 백과사전을 뜻하는 단어를 리투아니아어로는 '엔찌클로페디야'라고 읽는다. 그리고 이 단어를 볼 때마다 나문희와 이제훈이 나왔던 '아이 캔 스피크'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나문희가 동사무소 직원인 이제훈에게 영어 과외를 해달라고 조르는..
리투아니아어 84_장작 Malkos 불을 피우다 말고 어디로들 갔을까.
리투아니아어 83_기적 Stebuklas 거리거리에 남겨진 재밌는 물건들. 누군지 거의 알 것 같았지만 그래도 누구지 하고 쓰윽 눈을 밀어내본다. '요한 바오로 2세의 기도서에는 결코 눈이 쌓이지 않더랍니다.' 17세기였더라면 기적이 되었을 텐데. 곧 부활절이다.
리투아니아어 82_장갑 Pirštinės 겨울이면 주인을 잃은 장갑이 지천인데 사실 주인을 잃어서라기보단 제 짝을 잃은 것 같아 처량하다고 하는 편이 옳다. 보통 한 짝만 덩그러니 남아있기 때문이다. 장갑이야 한 짝을 잃으면 운 좋게 남은 한 짝도 거의 쓸모가 없어지니 하나를 잃든 둘을 잃든 크게 달라질 것은 없지만 남은 장갑 한 짝 탓에 잃어버린 장갑이 잊히지 않고 계속 생각나니 차라리 두 짝을 한꺼번에 잃어버리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런데 아예 양 손바닥이 줄로 이어져 절대 서로 이별할 수 없었던 아동용 장갑은 그야말로 주인을 잃었다. 날이 따뜻해져서 장갑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게 되었고 저렇게 작은 손바닥을 지닌 아이라면 분명 다음 겨울엔 저 장갑이 맞지 않을거다. 그나마 장갑은 지난겨울 한 철 제 할 일을 다했으니 주인도..
리투아니아어 81_돌 Akmuo 내일 ''그 돌 앞에서 만나자.' 라고 말하면 만날 수 있다. 돌 하나도 이정표가 되는 빌니우스 구시가.
리투아니아어 80_사과 Obuolys 한겨울 이 거리에는 빌니우스의 여느 많은 거리에서 그러하듯 주인을 잃은 장갑 한 짝이 놓여져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이렇게 사과를 잃어버릴 수 있는 시기가 되었다. 왠지 더 이상 장갑을 끼지 않은채로 사과를 깨물어 먹고 다닐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명백한 시기가 된 것이다. 사과 나무 한 그루 정도는 심어져 있는 섬머 하우스를 가진 사람들이 많고 또 그런게 없어도 누군가는 항상 사과를 나눠준다. 여름이 되면 버스를 기다리는 학생들이 색이 옅고 농약을 치지 않아 상처도 많고 울퉁불퉁한 사과를 먹고 있는 모습이 흔하다. 누군가가 준 사과를 또 누군가에게 전달하고 그렇게 리투아니아의 사과들은 사방으로 굴러다닌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사과는 사과나무 멀리까지 굴러가진 않는다' 라는 리투아니아 속담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