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휴가 (907) 썸네일형 리스트형 리투아니아어 59_무지개 Vaivorykštė 어제 트롤리버스에서 내리니 정거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무지개. 이번 주에 갑자기 기온이 크게 떨어졌고 봄가을 코트를 다시 꺼내 입었다. 비도 자주 온다. 보통은 지나가는 비라 우산을 챙길 필요는 없다. 비가 오고 해가 나고 해가 난 상태에서 비가 오는 경우도 많으니 무지개도 자주 보인다. 리투아니아어로 무지개를 Vaivorykštė 바이보릭싀테 라고 한다. Vaivas 는 현지인들에게 물어봐도 잘 모르는 단어이고 그만큼 거의 사용하지 않는 단어인데 우선 빛이라는 뜻이 있단다. Rykštė 는 채찍까지는 아니지만 무지개와 같은 구부러짐을 보이며 찰싹찰싹 거리면서 때릴 수 있는 회초리를 칭할때 쓰인다. 그런데 빛의 채찍이라니. 채찍이라는 단어도 빛이라는 단어와 합성하니 퍽이나 시적이다. 들판에서 들꽃을 꺽어서.. Vilnius 97_어떤 성당 빌니우스 구시가에 성당이 정말 많다. 빌니우스 대학 근처의 종탑에 올라 재미삼아 그 성당들을 세어보는 중이라면 성당들이 워낙에 옹기종기 붙어 있는 탓에 이미 센 성당을 또 세게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성당이라면 좀 예외이다. 이는 그들 성당의 무리에서 외톨이처럼 뚝 떨어져서 고고하게 언덕 위를 지키고 있다. 리투아니아는 유럽의 카톨릭 국가 중 가장 꼴찌로 카톨릭을 받아들였음에도 불구하고 또 그 와중에 정교를 비롯한 다양한 종파가 혼재했고 종교 자체가 금기시되었던 소련의 지배를 반세기 이상 거치고도 연합국이었던 폴란드의 영향 때문인지 구교도들이 절대우위를 차지하는 독실한 카톨릭 국가로 남았다. 리투아니아의 유일한 왕으로 기록된 민다우가스가 13세기 초반에 왕의 칭호를 얻기 위해 로마 교황으로 부터 개.. Vilnius 96_6월 6월의 오늘은 하지. 1년 중 가장 짧은 밤, 가장 늦은 저녁의 석양과 이별하기 위해 지금 어딘가에선 높게 쌓아 올린 커다란 장작이 불타오르고 곱게 만든 화관들 가운데에 놓인 양초에서 피어난 불빛이 고요한 강 위를 수놓고 있을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오늘부터 긴 겨울로 접어드는 이른 여정이 시작된다. 7월은 여전하고 8월이 멀쩡히 남아 있으나 여름은 항상 6월까지라고 생각하게 된다. 6월의 오늘을 기점으로 여름은 이제 막 봄을 떠나왔다기보다는 좀 더 겨울을 향하고 있는 것이 맞다. 6월이 되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어떤 소설들이 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야와 까뮈의 이방인이다. 6월만큼 짧은 이 소설들을 왠지 가장 긴 여름밤을 지새우며 읽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6이라는 숫자. 1년의 반, 마치.. Ben is back (2018) 오랜만에 줄리아 로버츠가 보고 싶어서 비교적 최근 작이 있어서 보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 예전에 살던 동네 서점 주인아저씨 이야기를 하다가 노팅힐의 휴 그랜트가 떠올랐더랬다. 그렇다면 어찌 그가 서점에 들어서던 줄리아 로버츠를 보던 그 장면이 떠오르지 않을 수 있을까. 여전히 영화 귀여운 여인의 발랄한 티브이 광고가 기억난다. 리처드 기어와 줄리아 로버츠 역은 알 파치노와 멕 라이언이 거절한 역이라고 하지. 지금의 멕 라이언은 너무나 변해버렸지만 너무 여위었다면 또 여윈 대로 여전히 싱그러운 줄리아 로버츠를 본다. 이제는 저렇게 큰 청년의 엄마 역할을 할 수 있는 줄리아 로버츠의 가슴 뭉클한 이야기려나 예상하고 보는데 의외로 굉장한 긴장감 속에서 보게 되었다. 전반적으로 매즈 미켈슨의 헌트가 뿜어내던 불.. 감자전과 끄바스 어제 날씨가 참 좋았다. 트라카이에 갔다. 빌니우스에서 트라카이까지는 30분 정도로 크게 멀지 않다. 트라카이에 도착하자마자 아침 겸 점심으로 먹은 감자전. 좀 더 널리 알려진 러시아식으로 말하면 끄바스, 리투아니아어로는 기라 Gira 라고 불리우는 음료도 함께 주문했다. 흑빵을 발효시켜 만든 무알콜 음료이지만 때에 따라서는 1.5프로 정도의 알콜을 포함하기도 하는데 식당에서 직접 제조했다는 이 기라는 날이 더워서 그랬는지 알콜이 조금 섞여 있었던 것인지 조금 빨갛게 올라오며 약간 취하는 느낌이 들었다. 도톰한 감자전 속에는 고기가 들어있고 기름에 볶은 돼지 비계와 딜을 흩뿌린 사우어크림이 양념으로 올라온다. 트라카이가 휴양지이긴 하지만 빌니우스도 사실 관광지이기때문에 식당에서 이런 음식을 먹으면 산이나.. Vilnius 95_모든 성자들의 성당 놀이터 벤치에 앉아서 고개를 돌려 위를 보았을때 마주치는 풍경. 이 나무들 밑으로 여러번 비를 피했었는데 우르르쾅쾅 비가 올 조짐을 보였지만 큰 바람이 불고도 어제는 비가 오지 않았다. 따뜻한 기온이 어느정도 자리를 잡았다. 올해의 첫 수박을 먹었다. 성당 안의 공기가 가장 차갑고 청명하게 느껴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놀이터 모래 상자 속에서 모래 바람이 불어 온다. 누군가에게는 맨발 시즌이다. Vilnius 94_골목길 지름길을 통해 빨리 가고 싶은 날이 있듯이 일부러 좀 돌아가더라도 꼭 좋아하는 골목을 통해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날이 있다. 때로는 굳이 담 한가운데 작게 난 저 문으로 들어가 성당 벽돌이라도 감상하고 다른 문을 통해 나오는 수고를 더하기도 한다. 그 순간은 마치 잠시 다른 세상 속에 속해 있다 빠져나오는 느낌이다. 과장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그 짧은 순간에만 체득할 수 있는 어떤 감동이 분명 있다. 이 성당이 주는 고요와 안식은 나에게는 고유하다. 타운홀에서 멀지 않은 구시가의 중심에 있지만 경쾌한 성당들의 대열에서 이탈해서 가정집이 즐비한 좁은 골목에 위치해 있는 탓에 조금은 폐쇄적인 자기만의 세상에 갇혀 뭔가 새침한 느낌을 주는 성당이기도 하다. 이곳은 리투아니아가 카톨릭을 받아들이기 이전에 공들여 .. 드레스덴의 숨겨진 돔 이렇게나 뻔하게 모습을 드러내 놓고 있는데 숨겨져 있다는 표현이 우습지만 어쨌든 이렇게 건물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돔을 보면 이미 어두워진 어떤 저녁 극적으로 내 눈 앞에 나타났던 피렌체의 두오모가 중첩된다. 피렌체에서는 냉정과 열정사이에서 준세이가 드나들던 화방을 찾겠다고 두오모에서 뻗어 나오는 숱한 거리들을 상점 하나하나를 확인하며 걷고 또 걸었다. 드레스덴이 한때 북방의 피렌체라고 불렸다고 하는데 세계대전의 피해가 컸었던 것인지 짧은 시간 머물렀었기 때문인지 고색창연한 바로크 도시의 느낌은 그다지 받지 못했다. 휴일의 드레스덴은 오히려 조금 요양 도시 같은 느낌이었다. 세상의 그 어떤 똑똑한 건축 자재도 도시의 영혼까지 복원시킬 수는 없는 법이다. 그래도 이 위치에 서서 피렌체를 떠올렸던 것만으로도.. 이전 1 ··· 45 46 47 48 49 50 51 ··· 11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