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휴가 (907) 썸네일형 리스트형 Vilnius 103 7월 날씨가 좋지 않아 실제 열기구가 거의 안 떴어서 여름 하늘이 평온했는데 곱고 가벼운 한지 빛깔에 뭔가 양초를 피워서 날려 보내고픈 느낌을 주며 좁은 거리에 사뿐히 내려 앉은 열기구들. 근데 자세히 들여다보다가 바구니에 타고 있는 인형들과 눈이 마주치자 좀 오싹했다. 정말 착지 중인 것도 같다. 광고 문구로 가득한 열기구들만 보다가 알롤달록한 색상의 이들을 보고 있자니 구시가에서도 단연 오밀조밀한 이 거리가 상대적으로 더 아늑해 보인다. 가끔 들어서곤 했던 카페는 이름을 바꿨고 작은 동상들을 숨기고 있던 마당들은 더이상 비밀 장소이길 거부하고 문 앞에 동상 팻말을 걸어놓았다. Vilnius 102_구청사로부터 투어리스트 인포가 위치한 빌니우스 타운홀은 무료 개방이다. 연중 전시회가 열리고 이층에 올라가면 오케스트라의 공연 연습 소리를 종종 들을 수 있다. 빌니우스 프리 투어가 시작되는 지점이기도해서 계단 근처에는 항상 뭔가 서먹한 분위기의 젊은 광광객들이 모여있다.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내가 가장 좋았던 것은 팔라쪼 앞이든 성당 앞이든 크게 경사진 너른 광장이 많아서 거의 눕다시피한 자세로 앉아서 사람을 구경하는 것이었다. 빌니우스에 그런 식으로 널찍하고 개방적인 장소는 없지만 구청사의 계단에 앉아 그 비슷한 기분을 느끼곤 했다. 몇 해 사이에 구청사의 풍경에 추가된 것이 있다면 여러 지점에서 타고 내릴 수 있는 붉은색 이층관광버스이다. 차라리 좀 작은 버스로 만들었으면 나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거의 비어.. Vilnius 101 아주 어렴풋하지만 자주 보는 장면이니 사실 정말 거의 안 보여도 나로서는 그냥 다 보인다고 생각되어지는. 이 정도 위치가 빌니우스로 여행을 오는 사람이라면 보통 들르는 세 장소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맨 앞의 대성당 종탑과 대성당. 대성당 지붕 위로 굴뚝처럼 솟아 있는 벽돌색 게디미나스 성과 그로부터 오른쪽으로 펼쳐진 숲 속 가운데에 하얀 세 개의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 여기저기 전부 관광객이라 걷다보면 그냥 나도 관광객모드가 된다. 음악 소리는 기본이지만 그 음악 소리를 뚫고 나오는 것이 노천 식당의 칼질하는 소리. 냉장고에 맥주병 채워 넣는 소리이다. 그리고 뭔가 냉동 감자, 야채, 생선볼 같은 것 튀긴 냄새도 자주나는 것 같다. Vilnius 100 모든 대상들이 전부 따로 노는 느낌의 풍경이다. 오랜만에 은사님은 만나러 빌니우스 대학을 향했다. 빌니우스 대학의 어학당에서 외국인들에게 리투아니아어를 가르치는 그녀에게서 이곳에 처음 여행을 왔던 그 시기에 18시간 정도의 개인 교습을 받았다. 정확히 딱 18번, 이 정원을 지나 저 높다란 아치를 통과해서 멋들어진 천장 벽화를 지닌 어문학부 사무실에서 이른 아침 꿈 같은 시간을 가졌었다. 수업이 끝나고 나오면 빵집에 들러 그날 배운 과일 이름이 들어간 빵과 마트의 홍차 티백을 골라 사들고 어딘가로 향했다. 그때가 이른 5월이었다. 분수와 광합성용 의자(?)가 무색하게 요즘의 날씨는 오히려 여름에 들어서기 직전의 쌀쌀한 그 해 5월을 연상케 한다. 다리를 뻗고 앉을 수 있는 저 색색의 의자들은 얹가도 항상.. HBO 미니시리즈 체르노빌을 보고 잡담 왕좌의 게임 마지막 시즌이 황망하게 끝났다. 개인적으로는 일곱 시즌을 한 달 동안 몰아서 봤기 때문에 몇 년 동안 논쟁과 예측을 거듭하며 매 시즌을 기다리던 골수팬들이 느꼈을 실망감에서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웠지만 만든 이들의 피로감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마지막 시즌은 나로서도 충분히 당혹스러웠다. 억지로 질질 끌고 온 드라마가 아니었기에 아마 더 그랬던 것 같다. 그러고나서 디저트를 먹듯 본 5부작짜리 HBO 미니시리즈 '체르노빌'. 물론 디저트라고 하기에는 음울했다. 아주 탁월한 드라마였나 하면 사실 그렇지는 않았고 확실히 같은 방송국의 화제 드라마의 황당한 결말로 상대적 수혜를 받은 느낌이 있지만 어쨌든 최대한 객관적으로 묘사된 비극적 역사가 길고 굵은 여운을 남긴 것은 사실이다. 사실 이 드라마에 관해.. Vilnius 99 7월들어 내내 평균 15도 정도의 기온, 여름 날씨라고 하기에는 다소 춥지만 걷기에는 최적이다. 간혹 짧은 비가 내리기도 하고 잠시 피해가기에는 부담스러운 긴 비가 내리기도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모르는 이와 함께 비를 맞는 것만큼의 절대적인 공유가 또 있을까. 각자 길을 걷다가 마당 입구의 아치 아래에 약속이나 한 듯 모이는 이들, 주섬주섬 우비를 꺼내는 중년의 관광객들,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서 하던 이야기를 천천히 이어가는 어떤 여행 가이드, 일행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좀 더 깊숙히 파고들어 남의 집 마당의 사소함을 살펴보는 이들은 담쟁이 넝쿨이 휘감은 건물이 뿜어내는 이끼 냄새에 사로잡히고 방금 막 들어갔다 나온 화려한 성당의 아주 조촐한 뒷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비는 그렇게 지나간다. 리투아니아어 60_형제들 Broliai 도서관 입구에 책 교환 수레가 있다. 매 번 갈때마다 빈 손이어서 쉽게 다른 책을 들고 올 엄두를 내지 못하다가 어떤 날에 수레에 놔두고 올 책 한 권을 챙겨서 도서관에 갔는데 이 책이 보였다. 카라마조프 형제들의 리투아니아어 번역본을 가지고 있지만 이제는 굵직한 장편들은 한국어든 리투아니아어든 여러 다른 번역으로 읽고 싶다. 더 이상 새로운 작품을 쓸 수 없는 작가를 지속적으로 기억하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고 복잡한 번역이 있고 또 좀 수월한 번역이 있기도 하니깐. 살짝 집어 든 책은 몹시 가벼웠고 정갈했고 게다가 한 권짜리. 하지만 첫 잔상이 사라지고 몇 초후에 선명하게 포착한 O 자 위의 사선. 내가 읽을 수 없는 노르웨이어였다. 하지만 어쨌든 들고 왔다. 집에 돌아와서 러시아 찻 잔에 차를 담고 .. Vilnius 98_탁자 고요한 7월의 아침. 이곳은 이차선 도로이지만 차선 하나는 온전히 트롤리버스를 위한 것으로 일방통행 도로이다. 그래서인지 신호라도 걸리면 더없이 한가롭다. 벽에 고정된 테이블 하나가 쏟아지는 햇살을 전부 차지하고 있었다. 아침을 먹고 나서지 않으면 방금 막 문을 연 빵집과 카페로부터 흘러나오는 빵 냄새와 음악소리에 계속 흘끔거리게 되는 아침. 이전 1 ··· 44 45 46 47 48 49 50 ··· 11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