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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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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lnius 21_없는 것 없는 중고 옷 가게 빌니우스 거리를 걷다보면 흔히 발견 할 수 있는 중고 옷 상점들. Humana, 50c 같은 간판을 달고 있는 체인점들도 구시가지내에 서너군데 있을뿐만 아니라 개인이 운영하는 작고 야무진 가게들도 많이 있다. 나는 옷을 즐겨 입는 옷쟁이가 아니라 보통은 옷이 필요하다 싶을때에야 큰 결단을 하고선 옷을 사러 가는 편인데 물론 그렇게 필요에 의해 옷 가게에 가면 적당한 옷을 찾기가 힘들다. 꾸미기 좋아하는 내 친구중 몇몇은 주기적으로 재미삼아 이런 상점들을 방문하는데 그들 대부분 깔끔하니 옷을 잘 입는다. 비싼옷도 새옷도 아니지만 상황과 날씨에 맞게 이렇게 저렇게 잘 갖춰 입는 모습이 보기 좋다. 뭔가에 애정을 가진다는 것은 옷입기에도 예외는 아닌것 같다. 단순히 누군가에게 예뻐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
병뚜껑 쉽게 따는 법 이라는 글의 제목을 정말 자주 본다. 근데 너무 어렵게 딴 다는 생각이 든다. 아님 내가 적으려는 이 방법은 이미 다들 알고 있는 방법일 수도. 내가 살고있는 리투아니아는 겨울이 길기 때문에 여름철에 나오는 각종 베리나 과일들을 잼이나 쥬스로 만들어서 보관하고 숲속에서 채취한 버섯 같은것들을 비롯해서 각종 채소들도 피클로 만들거나 통조림화해서 겨울에 하나씩 꺼내 먹는 경우가 많다. 상점에서 파는 병에 담긴 식품 말고도 집에서 병조림을 만드는것이 일상이다. 그래서 소독한 병에 뜨겁게 조리되어 담겨 단단히 잠긴 병을 열어야 하는 것도 일상적인 일이다. 딴 거 없다. 뚜껑 아래에 군데 군데 패여진 홈에 작은 숟가락을 넣어서 숟가락을 병쪽으로 누르며 뚜껑을 들듯 힘을 주면 뿅 소리가 나며 바람이 빠진다. 손으로..
Vilnius 20_거리의 미니 도서관 주말에는 첫눈이 내렸다. 물론 내리면서 녹아 버리는 눈이었지만 이제 정말 겨울이구나 하는 생각에 한 겨울에 펑펑 내리는 눈보다 오히려 더 춥게 느껴졌다. 토요일 오전이면 집 근처의 상점들도 둘러 볼겸 혼자 나선다. 거리를 걷다가 빌니우스 중앙역에서 갈라져서 나와 구시가지로 연결되는 가장 큰 대로인 V. Šopeno 거리에서 재밌는 상자를 발견했다. 이 거리는 일전에 소개한 스트리트 아트가 그려진 건물이 있는 거리이고 그 스트리트 아트의 건너편에 이 상자가 붙어 있었다. 스트리트 아트 관련 글 보러가기 멀리서 봤을땐 건물의 전기 단자 같은것을 감추기 위해 만들어진 상자에 임대 광고나 구인 광고 따위가 붙여져 있는 걸로 생각했었는데 가까이서 보니 그럴싸하게 색칠도 되어있었다. 알고보니 누구나 열어서 책을 빌..
핀란드 1유로 동전 얼마전 남편이 동네 카페에서 에클레르 하나를 사가지고 왔다. 맛있으면 맛있는만큼 먹고나면 허무한 에클레르. 속이 꽉 찬 느낌이 들어 콱 깨물면 순식간에 입속에서 사라져버리는 크림의 매력이 있지만 그만큼 잘 만드는 빵집도 드물고 모든 빵집에서 파는것도 아니고. 이 동네 어귀의 카페는, 직접 구운 빵을 파니 베이커리라고 하는 편이 나을 수도 있겠다.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들르고 지나갈때 창너머로 눈 인사 할 수 있는 상냥한 직원이 일하는 곳이다. 에클레르를 한개만 사가지고 왔길래, 왜 두개사지 않았냐고 물어보니 두개를 사려고 2유로를 꺼내서 동전을 보니 내가 한번도 본 적 없을 1유로짜리 동전이었고 게다가 디자인과 주조연도를 보고는 쓸 수 없었다고 했다. 동전을 보면 항상 뒷면부터 확인하는 나를 자주 보아온..
Rocky (1976) 실베스타 스탤론의 록키를 복습하다.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다시 찾아서 보면 완전 처음 본 듯 생소한 영화들이 있다. 제이크 질렌할이 복서로 분한 를 보고 예전에 본 복서들의 영화들을 하나씩 찾아보기로 했다. 우선 록키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누구라도 느꼈겠지만 사우스포의 플롯 자체가 록키를 향한 오마쥬였기때문이기도 하고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엔) 최근에 실베스타 스탤론이 록키 1,2편의 상대 복서였던 아폴로 크리드의 아들의 트레이너로 나오는 영화를 찍었다기에 더더욱 록키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우스 포는 선배 복싱 영화들과 비교하면 뭐랄까 맷집이 부족한 영화였다. 동네 복서들의 시큼한 땀냄새로 뒤범벅된 촌스러운 동네 도장의 절박함 대신 많은 이들의 이해관계가 얽히고 섥힌 돈 냄새로 퀴퀴한 라스베가스의 현란한 자선 경기장..
Vilnius Sculpture 01_로맹 개리 조각상 이제 겨울 코트를 꺼내 입어도 부담스럽지 않은 날씨가 되었다. 사람들의 발걸음은 더욱 둔탁해지고 밤은 조금 더 깊어지겠지. 이제 곧 썸머타임도 해제되니 한 시간을 앞당겨야 한다. 물론 모두가 만능 전화기를 들고 다니는 요즘 같은 세상에는 시간도 알아서 자동으로 바뀐다. '시계바늘 돌리는것을 깜빡해서 지각했어요' 같은 소리는 창피해서라도 할 수 없는 세상이 된것이다. 이런식으로 많은 아날로그적 실수들은 조금씩 설 자리를 잃고 행복은 점점 디지털화 되어간다. 지난 토요일 아침, 텅빈 거리를 걸으며 느꼈던 감정은 최근 경험한 감정 중 가장 시적이고 정적이었다. 아무도 없는 거리의 정적만큼 아날로그적인것이 또 있을까. 잠든 가족을 남겨두고 정해진 시간에 빠뜨리지 않고 수행해야 할 미션들을 두번이고 세번이고 되내..
[Southpaw] Antoine Fuqua (2015) 제이크 질렌할은 잠깐 안 본 사이에 또 이렇게나 다작을 해주셨다. 차례대로 챙겨 봐야함. 요새 재미있게 보고 있는 미드 시즌 2의 레이첼 맥아담스. 요즘의 그녀를 보며 의 엘리자베스 슈 역을 연기했더라면 잘 어울리지 않았을까 자주 생각한다. 예전에 주로 로맨틱 영화 속의 전형적인 예쁜 여인들을 연기하곤 했다면 최근에 와서 강하고 개성있는 독립적인 여성 캐릭터들을 연기하려 부단히 애쓰고 있는듯. 영화 포스터에서도 느껴지지만 지금까지 함께 했던 그 어떤 상대배우들보다 두 배우가 잘 어울리는것 같기도하다. 복싱을 소재로 하는 많은 영화들은 로버트 드 니로의 와 실베스타 스탤론의 와 같은 고전들에 어느 정도의 빚을 지고 있다. 후광이라고 해도 좋을 그 것. 스크린 속에서 반짝이는 링은 이미 관객을 상대로한 게임..
Selfless -Tarsem Singh (2015) 이름이 생각나지 않을때 우리 둘이 곧 잘 '아 왜 그 땅 속에 묻혀있던 배우 있잖아' 라고 하면 단번에 기억하곤 하는 라이언 레이놀즈. 그러니깐 산 채로 관에 들어가 땅에 묻혀진 채 깨어나는 그 영화 얘기를 하는것인데. 얼마전까지 채닝 테이텀과 항상 혼동하다가 둘의 영화를 하나 둘 더 챙겨보면서 확실히 구별하게 되었다. 아니면 얼마전에 본 속의 채닝 테이텀이 너무 인상 깊어 둘을 구별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된것일지도. 아무튼 이 영화 에서의 라이언 레이놀즈를 보고있자니 에서 자아분열을 겪던 직원과 에서 사라진 딸을 찾느라 고군분투하는 아빠의 모습이 드문드문 보였다. 젊고 건강한 남자의 몸을 통해 생명을 연장한 빌딩 부자 벤 킹슬리가 라이언 레이놀즈의 몸속에서 그의 생전 기억을 접하면서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