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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생크 탈출 The Shawshank Redemption> 앤디의 편지 우리가 사랑하고 감탄하며 마치 하나의 명화처럼 화석처럼 평생을 가슴속에 담아두고 싶은 어떤 풍경들이 있다.보슬비에 젖어가는 촉촉한 땅위에 서서 시야에 잡히는 모든 피사체를 기억하겠다고 장담하지만조금만 각도를 비틀어 뒤를 돌아보거나 서너발짝 물러서서 다른 방향을 바라보며 과연 정말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이 장소를 기억할 수 있을까 반문했다.사진이라는 평면의 예술이 담기에 우리의 기억은 그만큼 입체적이다.하지만 그 기억을 나 자신만 아는 가슴속에 담아두기에 우리는 겁이 많다.사진을 보며 늘상 회상에 젖지만 진실로 아득한 그리움에 빠져들게 하는 어떤 풍경들은 어떤 사진에서도 찾을 수 없다.사소한 기록에 초연해질때 오히려 기억은 견고해지는것이 아닐까.기록은 나의 기억을 보장할 수 있을까. '빌니우스에서 버스로 ..
파리의 레코드샵 욕조를 과감히 뜯어내면서 시작된 4평 남짓한 욕실 수리. 한달전에 주문한 타일이 도착했지만 아직 가지러 가지 못했다. 오래된 타일을 벗겨내자 깊은 구덩이가 드러났고 시멘트를 붓기 시작하면서 세탁기도 옮겨 버렸다. 이제 세탁기도 돌릴 수 없고 곧 화장실도 쓸 수 없을테니 더 이상 질질끌지 말고 빨리 끝내버려야 할 때가 된것이다. 마음 먹고 한다면 업자를 불러서 일주일만에라도 끝낼 수 있겠지만 그러기엔 우리가 가진 시간이 너무 많았다는것. 일주일에 하루 날 잡아 세시간 정도 일하고 먼지 닦는데 한 시간을 쓴다. 남은 6일동안 수리에 대한 강박은 지워버려야 하니깐. 조그만 집인데 너무 빨리 고쳐 버리면 나중에 아쉬울거라며. 욕실에서 물을 사용할 수 있을때 쯤 가을쯤 어디 잠깐이라도 여행 다녀올 수 있을까. ..
베르겐의 스테레오랩 어디로든 여행을 갈때마다 나와 함께 여행했던 밴드 스테레오랩. 이집트 여행때쯤이었나? 멤버 한명이 교통사고로 죽는 일이 있어서 조금 더 멜랑꼴리해졌던 기억이.  추억에 빠져들고 그것에서 헤어나오는데 걸리는 속도를 안다면 그들의 음악을 들을때에는 약간의 위험을 감수해야한다.하나의 음반이 마치 하나의 긴 노래와 같으며 여간해서는 곡명을 기억하기 힘들다. 기승전결이 불분명하지만 축축 늘어지지 않고 지나치게 음울하지 않으며 밝고 경쾌하고 귀엽기까지한 나만의 슈게이징. 계산 불가능한 사운드는 퀼트처럼 얽히고 섥혀 이들의 음악을 들으면서 하나의 선명한 감정에 사로잡히기는 힘들다. 군데군데가 면도칼로 밀린 내 머리에 수많은 플러그가 반창고로 붙여져 있고  그 선이 연결된 기계의 스크린속으로 내 기억들이 줄줄이 입력된..
베르겐의 뭉크 떠나기 두 달 전부터 설정해 놓은 베르겐의 일기예보를 여행에서 돌아 온 지금도 여전히 확인하게 된다. 새로운 목적지가 생기면 그때 삭제할 수 있을것 같다. 한번은 일주일 내내 해가 쨍쨍 맑음이 표시되길래  베르겐에서 신세졌던 친구에게 '일주일 내내 날씨가 이렇게 좋다는데 그게 진짜야?' 라는 문자를 보냈다. 마치 토네이도 주의보라도 내려진 베르겐의 친구들이 염려스럽다는 듯, 믿기 힘든 날씨라는 듯 말이다. 친구도 금방 답문을 보내왔다. 정말 흔하지 않은 날씨라며 산행을 계획하고 있다고. 4일간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베르겐의 일반적인 기후를 간파하는데는 충분했다. 지속적인 강우로 항상 축축한 땅, 건너편 산 정상을 뿌옇게 감싼 안개, 수평선 위에 간신히 걸쳐진 구름.  숲은 각양각색의 초록으로 우거져 어두컴..
<And while we were here> Kat coiro (2012) 둘의 모니터 사이에 놓인 가운데 모니터에서 영화는 항상 재생된다.봐야지 하고 마음 먹고 보는 영화도 있지만 별 생각없이 다운받은 영화를 보는 경우가 훨씬 많다. 영화의 배경이나 분위기가 마음에 들면 자세를 고쳐잡고 보게된다.그러다보니 이제는 이런 색감의 이런 시작이면 나름 마음에 드는 영화이겠거니 하는 확신 같은게 생긴다.달리는 기차속에 나란히 앉아 각자의 책에 몰두중인 두 남녀. 지루함을 감추는데 완전 실패중인 이들, 어색한 침묵을 무시하느라 안간힘을 쓰는중이다.기차 역을 빠져나와 택시를 타고 숙소로 이동하는 순간에도 둘 사이에는 별 다른 대화가 없다출장 차 나폴리에 온 레오나르도(이도 골드버그)의 머릿속은 일에 관한 생각으로 가득하고그를 따라 온 제인(케이트 보스워스)은 이번 여행이 부부 관계의 전화..
<코드 46> 마리아의 모카포트와 웍 속의 한 장면.윌리엄과 마리아는 함께 밤을 새우고 비내리는 상하이의 아침을 맞이한다.생일인 오늘 꿈을 꾸고 싶지 않은 마리아는 잠을 자지 않겠다고 말하지만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침대에 눕는다.그런 마리아에게 윌리엄이 커피를 끓여준다. 마리아의 생김새와 목소리만큼 그녀의 아파트도 뭔가 비현실적이다.발갛게 달궈진 전기 렌지는 흡사 휴대용 앤틱 턴테이블 같다. 그 위에 놓여진 웍과 모카포트도 소꿉놀이 같다.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감정이입 바이러스의 주입이 가능한 시대이지만 실생활은 지금과 거의 다르지 않다.저 웍은 한번도 사용한적없는지 시즈닝도 안된 상태인듯 너무 깨끗하다. 노천 식당에 앉아 어설픈 젓가락질로 중국 음식을 먹으며 맛있어 하는 마리아의 표정이 생각난다.나는 웍이 기울어 지지 않게 받쳐주는 ..
<Code 46> Micheal Winterbottom (2003) "Can you miss someone you don't remember?Can one moment or experience ever disappear completelyor does it always exist somewhere, waiting to be discovered?" 우리의 경험의 근간이 되는것은 과거의 기억이다.우리는 경험에 의거해서 또 다른 내일을 계획하고 먼 미래를 상상하고 꿈꾼다.경험해본 적 없는 사실에 대한 막연한 기대도 알고보면 누군가의 기억에 의해 서술된 사실에 의한것이다.토요일 아침의 늦잠이 얼마나 달콤한지를 알기에 우리는 쉬는 날을 기다리고여행이 즐거웠던것을 기억하기에 또 다른 여행을 계획한다.어릴 적 통조림 굴의 물컹함에 놀랐던 기억은 굴을 볼때마다 그 비누같은 미끈거림을 ..
히트 Heat_Micheal Mann (1995) 실베스타 스탤론과 복싱을 하는 의 로버트 드 니로를 보니 시간이 더 흘러 알 파치노와 로버트 드 니로 둘 중의 누군가를 회상해야 하는 순간이 닥치기 전에 이 둘의 옛 영화들을 경건한 마음으로 복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젊어서 일찌감치 마틴 스콜세지를 만나 연기 인생 절반의 커리어를 구축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로버트 드 니로와 와 같은 영화가 있지만 오히려 90년대 이후 오십의 나이에 들어서야 진면목을 드러낸 알 파치노. 라는 거대한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는 두 배우는 어떤 영화에서 어떤 배역을 맡더라도 압도당 할 준비가 되어있는 영원한 관객을 가졌다.알 파치노와 로버트 드 니로의 숱한 명작이 있고 그 작품들 중 최고의 영화를 꼽는 것이 여간 어렵지 않지만 그럼에도 를 떠올릴 수 있다면 그것은 아마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