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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rlin 05_붉은 파라솔 사이로 베를린에 있는 동안 날씨가 좋았다. 나는 내가 낯선 곳에 도착했을때 방금 막 비가 내린 상태의 축축함이나 공기중에 아지랑이처럼 묻어나는 흙냄새를 느낀다면 가장 이상적인 여행의 시작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아마 지나간 어떤 여행들이 그런 모습이었고 그 모든 여행들이 좋았기에 그런것같다. 하긴 여행이 싫었던적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베를린에서는 매우 짧고도 인상적인 비가 딱 한번 내렸다. 내가 비를 맞은 횡단보도를 영원히 기억할 수 있을 지경이다. 밤이되면 친구의 어플속에서 새어나오는 빗소리를 들으며 잠에 들었다. 그것이 베를린에서 나에게 할당된 빗방울의 전부였다. 그외의 순간들은 모두 해가 쨍쨍났다. 도착한 다음날부터는 32도에 육박하는 무더운 날씨가 지속되었다. 다소 덥다 싶은 옷을 입고 신발을 신고..
Berlin 04_베를린 쾌변의 뮤즈들 베를린 도착 다음날. 그날 두번째로 갔던 카페의 화장실 문에 저런것이 걸려있었다. 얼마전에 운명을 달리 하신 캐리 피셔 공주님. 베를린 화장실 문속에서 환하게 웃고 계셨다. 죽어도 죽지 않은 그녀. 묵념을 하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같은 날 자리를 옮겨 혼자 돌아다니다 들어간 카페. 이름하여 'Karl Marx says relax' 칼 마르크스 거리에 있는 카페였다. 그래 맛있는 커피나 마시며 칼 옹 말씀대로 릴랙스 하자였는데 화장실 문을 보는순간 카페 이름을 더 실감하게 했던. 100년도 훨씬 전에 돌아가신 이분도 베를린의 카페 화장실 문속에서 진한 핑크빛으로 살아계셨다. 사실 꼭 외국 여행을 하지 않더라도 어딜가든 항상 가게되는 장소들이나 반복적으로 보게 되는 물건들에는 눈이 가지 않을 수 없는데 어쨌..
Berlin 03_케밥집 앞 횡단보도 빌니우스에서 베를린까지 한시간 반. 가방을 올리고 앉자마자 거의 내리다시피 했다. 보딩패스도 미리 프린트를 해갔기에 짐가방의 무게를 체크하는 사람도 없었고 작은 테겔 공항을 아무런 입국 절차도 없이 엉겁결에 빠져나왔을때엔 마치 시골 시외버스터미널 화장실에서 먼저 나와 나를 기다리는듯한 느낌으로 친구가 서있었다. 두달만에 만난 친구. 서울도 빌니우스도 아닌 제 3의 장소에서. 베를린의 첫 느낌은 그랬다. 몹시 익숙하고도 낯설었다. 전신주에 붙어있는 횡단보도 스위치는 빌니우스의 그것과 같았지만 길거리를 가득 메운 케밥 가게와 경적을 울리며 승용차 차창밖으로 머리를 내밀어 지나가는 아랍 친구들을 불러 세우는 이민자들의 모습에서 이곳은 분명 내가 모르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도 이곳에서는 여행객이라기..
Berlin 02_마지막 한조각 프렌치 토스트 베를린은 일요일에 마트가 영업을 하지 않아서 한국의 동네 슈퍼나 편의점에 해당하는 슈파티 Spati 같은 곳을 제외하고는 일요일에는 물건이나 식품을 살 수 있는곳이 많지 않다고 한다. 꼭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일요일에 카페에서 아침겸 점심을 먹는 경향이 있다고 하는데 이번에 와서 느끼지만 내가 파리에 가기전에 어렴풋이 예상하고 기대했던 일상적인 느낌을 베를린에서 오히려 많이 받고 있다. 건조하고 무뚝뚝한것 같으면서도 나름 친화적인 사람들, 도시 곳곳의 크고 작은 공원들, 청결이라는 강박에서 해방된 도시, 유럽의 대도시 하면 바로 떠오르는 파리 로마 런던이라는 카테고리에도 쉽사리 집어 넣기 힘든 이곳이 그런 이유로 더 마음이 간다. 어쩌면 리투아니아 생활을 오래하면서 알게모르게 뼛속에 스며든..
토마토를 자르다가 토마토속의 수많은 방. 입구와 출구가 하나뿐인 들어가면 뒤엉켜서 사라지고 마는 방.
Berlin 01_두고 올 론리플래닛 언제나처럼 여행의 시작은 론리플래닛. 잘 읽지도 않을거면서 그냥 습관적으로 사게 된다. 이번엔 서점에서 만지작만지작 거리며 살까 말까 하다가 최신판이라 결국 계산해버리고 기한없는 베를린행을 택한 친구에게 남겨두고 오기로 했다. 난 이곳에 사는게 막연히 좋았지만 자부심 같은것은 느껴본적이 없는데 지척으로 온 친구를 별 부담없이 방문할 수 있는 가까운곳에 살아서 환희에 젖었다. 나중을 기약하면 왠지 기회가 오지 않을것 같아서 검색하자마자 티켓을 사버리고 말았다. 베를린에는 8년전에 프라하에 갔을때 계획에 없던 여행으로 일주일간 다녀온적이 있다. 호스텔에서 제공하는 무료 봉사 가이드를 따라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던 8월의 베를린. 혼자서 비행기에 몸을 맡겨본지 언제인지. 2주동안 기내반입수화물만 지니고 더할나위없..
1+1 올리브영에서 산 핸드버터인데. 왼쪽 초록계열의 튜브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무작정 집어서 계산대로 갔다. 무슨 냄새인지 성분이 뭔지 제대로 보지도 않고 끝까지 비교적 남김없이 잘 짜지는 질감의 용기와 색깔이 단지 마음에 들어서. 점원이 '이거 원 플러스 원 행사인데요. 똑같은 브랜드 제품 아무거나 하나 더 가져오세요.' 하는데 난 그 말을 잘 이해를 못하고 '아니요 그냥 이것만 살게요.' 를 세번정도 반복했다. 하나를 더 사면 두번째 제품이 반값이거나 하는 말로 알아들었던것 같다. '아니요. 그냥 같은 브랜드를 하나더 가져오시면 공짜라구요.' 라고 어리둥절해 하며 설명을 해서 결국 다른 색깔 버터를 가져오고 말았다. 저게 하나에 7000원 짜리였는데 난 사실 5000원에 팔아도 좋으니 한개만 사고 싶었다...
미성년의 책갈피 여행지에 가면 마그넷만큼 많이 파는게 책갈피이다. 서울은 이제 나에게 여행지 비슷한곳이 되어버렸기에 이번에 갔을때 도 의도한것이 아니었음에도 많은 책갈피를 손에 넣게 되었다. 인내심과 집중력 부족으로 책 한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내지 못하는 나에게는 사실 많은 책갈피가 필요하다. 이책에도 찔러 놓고 저책에도 찔러 놓고 기억이 안나서 또 처음부터 다시 읽고. 미성년속에서 직분을 다하고 있는 책갈피는 르코르뷔지에 전에서 사온 그의 모듈러 책갈피이다. 연필글씨를 쓸때 또독또독 소리를 내는 빳빳한 책받침같은 질감을 내서 좋다. 그나저나 미성년의 한 부분을 읽다가, 아르까지 돌고루끼가 경매장에 가서 빨간색 가죽 가족앨범을 2루블 5카페이카에 사서 10루블에 판 날인데 고등학교 친구를 만나러 가는 장면에 이런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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