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휴가 (931) 썸네일형 리스트형 오스트리아 1유로 동전 - 모짜르트 손바닥 위에 나타난 모차르트를 보고 이 동전이 그저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 적도 없고 있다고 들어본 적도 없는 동전인데 마치 기다려낸 듯한 느낌이 들었으니 아마 동전을 본 그 짧은 순간에 모차르트의 탄생이든 죽음이든 그것을 기리는 기념주화는 충분히 주조할만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것은 기념주화는 아니었다. 오스트리아인들은 그들의 신동을 진작에 1유로에 새겼다. 유럽연합 가입때와는 달리 유로화 도입을 1년 남겨둔 시점에서도 오스트리아인들은 유로화에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았다고 한다. 동전 디자인에도 여론 조사가 동원되었다. 동전 속의 모짜르트가 딱히 어색하진 않지만 모차르트 그 자신의 음악가적 카리스마보다는 마치 넬슨 제독 같은 인상을 풍긴다. 1유로 표시 아래에 피아노 건반 같아 보이.. 핀란드 유로 기념주화 - 세계 인권 선언 60주년 기념주화 이 동전은 11월에 연극 보기 전에 극장 앞 카페에 잠깐 들어갔다가 거슬러 받았다. 커피가 요란하게 갈렸고 막간을 이용하여 바리스타는 뒤돌아서서 또 다른 주문을 받기 시작했다. 나는 내 커피가 나올 반대편 지점에 서서 계속 동전을 쳐다봤다. 처음 봤을 때는 인권 수호에 진심인 누군가가 작정하고 미친 듯이 긁어서 아주 훌륭한 장난을 쳐놓은 건 줄 알고 감탄했는데 알고 보니 세계 인권 선언 60주년을 기념해서 2008년에 핀란드에서 발행된 기념주화였다. 이 동전은 총 백오십만 개가 발행되었다. 백사십구만구천구백 개 정도는 여전히 어딘가를 헤매고 있을 거고 구십구 개는 어디 트레비 분수나 벨베데레 궁전의 분수대에 던져졌을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온 하나는 잠시 선반 위에 놔뒀다. Tapio Kettunen이라는.. 파슬리 버터 파슬리는 리투아니아어로 페트라죨레 Petražolė 라고 한다. 마트에 파는 허브들은 아예 조그만 화분에 심어져 있거나 25그램 정도로 포장이 돼있어서 이렇게 많이 살 이유도 살 수도 없는데 갑자기 집에 파슬리가 다발채로 생긴 것은 식당의 주방 직원이 고수와 파슬리를 혼동했는지 고수 대신 별안간 파슬리 2킬로그램이 배달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요한 사람끼리 나눠가졌다. 여러 허브들 사이에서 그나마 고수와 파슬리가 닮은 구석이 있긴 하지만 파슬리 잎사귀가 좀 더 조화처럼 빤짝거리고 굵고 억세다. 우리는 멋쩍어하는 동료를 한껏 위로했다. 고수 대신 파슬리를 뿌렸어도 심지어 맛을 보고도 모를 손님도 분명 많았을 거라고. 그래서 우선 파슬리 버터를 만들기로 했다. 리투아니아에서는 파슬리를 차로도 곧 잘 끓여 .. India 11_구름 아직 걷지 않은 길도 지나쳐 온 길도 대부분은 구름으로 자욱했던 곳. 길 위의 내 발 정도는 선명하게 보였다. 스탠리 투치의 책 동네 마트 2층의 서점에 잠시 갔는데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맨 앞장 두 페이지 정도만 읽고 나왔는데 재밌다. 배우 스탠리 투치가 쓴 음식 에세이였는데 중간중간 이탈리아 집밥 레시피도 보였다. 다음날 도서관에 간 김에 대출하려 했지만 대출 예약만 하고 왔다. 5번째 대출 예약자라고 했다. 제목은 '맛, 내 인생의 음식 Skonis, Maistas mano gyvenime. 정도가 되겠다. 스탠리 투치는 좋아하는 배우는 아니지만 내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인 빅나이트의 배우이자 감독이기 때문에 책 표지를 보는 순간 책의 제목이 완전히 수긍이 갔고 책에 대한 기사를 찾아 읽은 후에야 스탠리 투치가 레시피 북도 출간했고 음식에 진심인 사람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병을 앓고 음식 섭취가 얼마간 불가능했던 .. India 10_인도와 네팔사이 1월이 되면 어김없이 생각하게 되는 인도. 자동 필름 카메라를 썼기 때문에 현상한 필름을 스캔한 사진이 80장 정도가 남아있는데 일 년에 한두 장씩 올린다고 치면 30년간은 거뜬히 회상할 수 있겠구나.ㅋ 그나저나 30년이 지난다고 치면 반세기 전 여행을 떠올려야 하는 건데 과연 나는 기억이나 할 수 있을까. 아니 당장 내일 일도 알 수 없는데 사실 30년 지나서 꼭 살아있으리란 법도 없다. 분명한 건 21년 전에 내가 어디 있었다는 것 정도는 변함없다는 것. 다르질링에서 하는 트레킹은 칸첸중가가 보다 잘 보이는 지점까지 가는 루트 몇 개가 있는데 제일 짧은 3일을 했다. 짐은 그냥 다르질링 호스텔에 놔두고 왔고 드문드문 밥을 제공하는 숙소들이 있다. 그러니 어두워진다 싶으면 기운이 팔팔 하고 저녁내내 여.. 토요일 오전 11시 알렉산드라의 커피 지난 토요일에 '주문하지 않은 블랙커피를 덤으로 가져다줬으니 식은 커피 잘 마시는 네가 와서 마시라'는 친구의 메시지를 받았다. 밖에 나갈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이미 식어버린 커피를 상상하며 느릿느릿 주섬주섬 겉옷만 걸치고 나간다. 크리스마스 지나고 몇 번 눈이 녹고 내리기를 반복하더니 제설용 모래를 비롯하여 더러운 먼지들이 제법 씻겨나가서 거리들이 오래된 전화의 보호 필름을 벗겨낸 것처럼 좀 미심쩍게 깔끔하다. 지난주만 해도 거리가 미끄러워서 진짜 긴장하고 걸었어야 했는데 카페까지 금방 걸어갔다. 배가 고파서 샌드위치 하나를 시켜서 반 갈라 먹는다. 이 카페는 사람이 늘 많고 테이블 마다 번호도 적혀있어서 실제로 예약도 가능한데 이렇게 이름이 적혀 있는 경우는 처음 본다. 창문 근처에 놓여 있던 이 명.. 어느 12월의 극장 만약 이곳이 뉴욕 브로드웨이의 어느 극장이거나 파리의 바스티유 극장이거나 하면 이 장면은 뉴요커나 파리지앵을 이야기하는 데 있어서 그런대로 설득력 있는 풍경일까. 왠지 그건 아닌 것 같다. 내가 그곳이 아닌 이곳에 살고 있어서 이렇게 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이들 앞에 굳이 지정학적 수사를 붙인 후 마치 내가 아는 사람인 것처럼 감정이입 하는 것이 의외로 나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것에 놀라곤 한다. 나에게 이런 장면은 명백히 올가 혹은 옐레나, 아그네, 그레타 같은 이름을 떠올리게 한다. 바르샤바의 쇼팽 연주회에서 마주르카를 연주하던 피아니스트도 그렇다. 이들 모두를 가둬 버리는 아주 깊고 넓고 차가운 호수가 있다. 파리에서의 1년에 대한 향수를 호소하며 꿈에 젖던 하얼빈의 러시아어 시간 .. 이전 1 ··· 8 9 10 11 12 13 14 ··· 11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