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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rgen 5_베르겐의 스테레오랩 어디로든 여행을 갈때마다 나와 함께 여행했던 밴드 스테레오랩.이집트 여행때쯤이었나? 멤버 한명이 교통사고로 죽는 일이 있어서 조금 더 멜랑꼴리해졌던 기억이. 추억에 빠져들고 그것에서 헤어나오는데 걸리는 속도를 안다면 그들의 음악을 들을때에는 약간의 위험을 감수해야한다.하나의 음반이 마치 하나의 긴 노래와 같으며 여간해서는 곡명을 기억하기 힘들다. 기승전결이 불분명하지만 축축 늘어지지 않고 지나치게 음울하지 않으며 밝고 경쾌하고 귀엽기까지한 나만의 슈게이징.계산 불가능한 사운드는 퀼트처럼 얽히고 섥혀 이들의 음악을 들으면서 하나의 선명한 감정에 사로잡히기는 힘들다.군데군데가 면도칼로 밀린 내 머리에 수많은 플러그가 반창고로 붙여져 있고 그 선이 연결된 기계의 스크린속으로 내 기억들이 줄줄이 입력된다고 생각..
Bergen 4_베르겐의 뭉크 떠나기 두 달 전부터 설정해 놓은 베르겐의 일기예보를 여행에서 돌아 온 지금도 여전히 확인하게 된다.새로운 목적지가 생기면 그때 삭제할 수 있을것 같다. 한번은 일주일 내내 해가 쨍쨍 맑음이 표시되길래 베르겐에서 신세졌던 친구에게 '일주일 내내 날씨가 이렇게 좋다는데 그게 진짜야?' 라는 문자를 보냈다.마치 토네이도 주의보라도 내려진 베르겐의 친구들이 염려스럽다는 듯, 믿기 힘든 날씨라는 듯 말이다.친구도 금세 답문을 보내왔다. 정말 흔하지 않은 날씨라며 산행을 계획하고 있다고.4일간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베르겐의 일반적인 기후를 간파하는데는 충분했다.지속적인 강우로 항상 축축한 땅, 건너편 산 정상을 뿌옇게 감싼 안개, 수평선 위에 간신히 걸쳐진 구름. 숲은 각양각색의 초록으로 우거져 어두컴컴했다. 하루..
<And while we were here> Kat coiro (2012) 둘의 모니터 사이에 놓인 가운데 모니터에서 영화는 항상 재생된다.봐야지 하고 마음 먹고 보는 영화도 있지만 별 생각없이 다운받은 영화를 보는 경우가 훨씬 많다. 영화의 배경이나 분위기가 마음에 들면 자세를 고쳐잡고 보게된다.그러다보니 이제는 이런 색감의 이런 시작이면 나름 마음에 드는 영화이겠거니 하는 확신 같은게 생긴다.달리는 기차속에 나란히 앉아 각자의 책에 몰두중인 두 남녀. 지루함을 감추는데 완전 실패중인 이들, 어색한 침묵을 무시하느라 안간힘을 쓰는중이다.기차 역을 빠져나와 택시를 타고 숙소로 이동하는 순간에도 둘 사이에는 별 다른 대화가 없다출장 차 나폴리에 온 레오나르도(이도 골드버그)의 머릿속은 일에 관한 생각으로 가득하고그를 따라 온 제인(케이트 보스워스)은 이번 여행이 부부 관계의 전화..
Bergen 3_베르겐의 접시 많은 물건을 가지지 않는 대신 자신의 이야기를 지닌 내 마음에 드는 그런 물건들만 가지고 싶다.어릴적에 엄마한테 나중에 크면 숟가락 젓가락에 그릇 몇개만 가지고 단촐하게 살겠다고 말하곤 했는데줄곧 돌아오던 대답은 살다보면 그게 그렇게 안된다는 것. 나도 살림을 하다보니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물건의 갯수가 늘어나지 않도록 나름 통제중이다.과 속의 작고도 적막한 부엌에서 혼자 밥을 먹는 주인공들을 동경하곤 했는데요새도 조그마한 접시에 식판처럼 음식을 담아 먹으며 티비디너를 먹던 윌리를 떠올리곤 한다. 이들은 베르겐의 골동품 가게에서 발견한 커피 잔 세트인데자물쇠로 잠겨 있던 가게 앞에서 좀 서성거리자 어디서 불쑥 나타났는지 주인인듯 보이는 남자가 문을 열어줬다.한바퀴 휙 둘러보고 나가려는데 한 눈에 ..
<코드 46> 마리아의 모카포트와 웍 속의 한 장면.윌리엄과 마리아는 함께 밤을 새우고 비내리는 상하이의 아침을 맞이한다.생일인 오늘 꿈을 꾸고 싶지 않은 마리아는 잠을 자지 않겠다고 말하지만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침대에 눕는다.그런 마리아에게 윌리엄이 커피를 끓여준다. 마리아의 생김새와 목소리만큼 그녀의 아파트도 뭔가 비현실적이다.발갛게 달궈진 전기 렌지는 흡사 휴대용 앤틱 턴테이블 같다. 그 위에 놓여진 웍과 모카포트도 소꿉놀이 같다.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감정이입 바이러스의 주입이 가능한 시대이지만 실생활은 지금과 거의 다르지 않다.저 웍은 한번도 사용한적없는지 시즈닝도 안된 상태인듯 너무 깨끗하다. 노천 식당에 앉아 어설픈 젓가락질로 중국 음식을 먹으며 맛있어 하는 마리아의 표정이 생각난다.나는 웍이 기울어 지지 않게 받쳐주는 ..
<Code 46> Micheal Winterbottom (2003) "Can you miss someone you don't remember?Can one moment or experience ever disappear completelyor does it always exist somewhere, waiting to be discovered?" 우리의 경험의 근간이 되는것은 과거의 기억이다.우리는 경험에 의거해서 또 다른 내일을 계획하고 먼 미래를 상상하고 꿈꾼다.경험해본 적 없는 사실에 대한 막연한 기대도 알고보면 누군가의 기억에 의해 서술된 사실에 의한것이다.토요일 아침의 늦잠이 얼마나 달콤한지를 알기에 우리는 쉬는 날을 기다리고여행이 즐거웠던것을 기억하기에 또 다른 여행을 계획한다.어릴 적 통조림 굴의 물컹함에 놀랐던 기억은 굴을 볼때마다 그 비누같은 미끈거림을 ..
<히트 Heat> Micheal Mann (1995) 실베스타 스탤론과 복싱을 하는 의 로버트 드 니로를 보면서시간이 더 흘러 알 파치노와 로버트 드 니로 둘 중의 누군가를 회상해야 하는 순간이 닥치기 전에 이 둘의 옛 영화들을 경건한 마음으로 복습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젊어서 일찌감치 마틴 스콜세지를 만나 연기 인생 절반의 커리어를 구축했다고 해도 무리가 아닌 로버트 드 니로와와 같은 영화가 있지만 오히려 90년대 이후 오십의 나이에 들어서야 진면목을 드러낸 알 파치노.라는 거대한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는 두 배우는 어떤 영화에서 어떤 배역을 맡더라도 압도당 할 준비가 되어있는 영원한 관객을 가졌다. 알 파치노와 로버트 드 니로의 숱한 명작이 있고 그 작품들 중 최고의 영화를 꼽는것이 여간 어렵지 않지만그럼에도 를 떠올릴 수 있다면 그것은 아마 그 둘이..
<다운로딩 낸시 Downloading Nancy> Johan Renck (2008) 기계적으로 루퍼스 스웰의 영화를 찾아보는 중. 시작부터 영화의 색감과 배경음악에 끌렸고화면 아래로 크리스토퍼 도일과 제이슨 패트릭의 이름이 지나가자마자 깜짝 놀라 더욱 집중해서 보기 시작했다.초반의 버스씬과 색감에서 의 느낌이 물씬 풍겨 여주인공인 낸시에 대한 궁금증이 급상승했고배경음악은 가레스 에드워즈의 와 너무 흡사했다.속 두 주인공의 여행이 비극적으로 끝나서였는지 낸시와 루이스의 대화와 움직임 하나하나에 몹시 불안했다. 애써 부릅뜨지 않아도 충분히 크고 검은 루퍼스 스웰의 눈은 웃고 있으면 오히려 섬뜩하고 화를 내고 있으면 측은하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기 힘든 눈이기에 무표정할때 가장 흡입력있는 연기를 보여준다. 흡사 작업복스러운 평상복을 걸치고 펩시 콜라를 입에 달고 스크린 골프에 푹 빠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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