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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ic route> Kevin Goetz, Michael Goetz (2013) 기가막힌 풍경을 보여주는 영화라면 당연히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가서 돌비 사운드 마크가 보일때까지 참고 기다려야 한다.그러다보면 보통 크레딧 마지막에 '감사합니다. 모모 지방자치단체' 같은 메세지 한 줄 정도는 남기는 법이니깐.물론 아름다운 풍광 자체로 이미 화제가 되는 영화라면 촬영지 정도는 얼마든지 검색을 통해서 알 수 있게 되겠지만, 인내심을 갖고 기다린 크레딧에서 발견하는 특정 지명이나 인상 깊었던 단역 배우들의 이름, 사운드 트랙 등등은 값지다. 손에 꼽기 힘들 정도로 여러 영화의 배경이 되었겠지만 한편으론 꼭 그렇다고도 말하기 힘든 숱하게 '지나가는 장소'가 되었던,그다지 큰 특징도 없는 미국의 많고 많은 황무지 중 하나로 보이는 이 장소가 어딘지 몹시 궁금해하며 영화를 보았다.그래서 크레딧이..
봉준호와 크라이테리온 콜렉션 빅 레보우스키 팬 사이트와 함께 지속적으로 방문하는 크라이테리온 페이스 북 계정. 오늘 첫 페이지에 크라이테리온 오피스에 놀러 간 봉준호 감독이 올라왔다.그의 영화가 크라이테리온에서 발매되나? 가끔 이렇게 유명 감독이나 영화 배우들에게 디브이디를 선물하고 그들의 크라이테리온 베스트나 콜렉션에 관한 글이 뜬다.마트에서 10분안에 카트 가득 물건 담기 이벤트에 참여하는 파마머리 아줌마처럼 식료품 점에서 신세계를 만난듯 두리번 거리던 의 꼬마아이처럼상기 된 표정으로 타이틀을 고르며 '살다보니 이런 날이 다 오네' 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완전 부럽고 귀여웠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나한텐 저런 날은 절대 안 올테니 나도 적절한 선에서 수집을 해 볼까.영어 자막 'Can't believe i'm actually he..
<천국보다 낯선> 헝가리안 굴라쉬 내가 정말 잘하고 싶은 요리가 있다면 헝가리안 굴라쉬.단순한 요리 그 이상의 실험 대상이고 남의 나라 음식인데 나의 소울 푸드였으면 좋겠다.인터넷에서 못보던 레시피를 발견할때마다 거의 적용해보는 편인데헝가리에서 일주일을 싸돌아 다녔음에도 굴라쉬를 먹어보지 않은것은 아쉽다.언젠가 헝가리에 다시 가서 굴라쉬를 맛보게 됐을때에 예상되는 결과는 두가지이다.내가 만들어 먹은 수십그릇의 굴라쉬와는 너무나 다른 오리지널 굴라쉬의 신세계에 뒤통수를 맞거나 그냥 마트의 굴라쉬 페이스트를 짜 넣어 만든것 같은 스탠다드한 관광객용 굴라쉬에 실망을 하거나이다.굴라쉬가 왠지 헝가리의 지독히도 평범한 가정식 같아서 식당에선 오히려 제대로 된 굴라쉬는 먹을 수 없을것 같은 노파심.하지만 오리지널이든 스탠다드든 그 기준은 내가 만들..
<Enemy> Denis Villeneuve (2013) 이 장면을 흑백처리하면 정말 딱 70년대 B급 호러의 한 장면같다. 물론 다소 시대를 앞서간. 왜 디브이디에 수록된 메이킹 필름을 보면 빌딩 미니어쳐 위에서 실 달린 거미를 인형극처럼 조종하는 감독이 나올법한. 필요 이상의 급격한 성장을 이룬 70년대 코스모폴리탄의 처참한 말로를 그린 영웅도 기적도 드라마도 존재하지 않는 그런 깔끔한 클래식 호러 말이다. 재난 영화든 호러 영화든 그 사건의 발단은 보통 인간 스스로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지만 그 결말의 중심에서 어김없이 부각되는것은 서로를 보듬고 감싸안는 인간과 인류애이고 필요에 따라 흩어졌다 모이길 반복하는 모래알 같은 그런 인류애가 가장 필요로 하는것은 괴물, 몬스터, 악의 무리 같은것이다. 내 생각에 재난 영화가 던지는 메세지는 단 하나이다. 인간은..
Vilnius 12_ 빌니우스의 열기구 바람이 불지 않는 날. 빌니우스 하늘에서 알록달록한 열기구를 종종 발견할 수 있다. 높은 산도 건물도 없는 환경에 도심에서 고작 이십분 거리에 공항이 있음에도 항공기의 비행이 잦지 않다는 유리한 조건. 올드타운의 심장부에서 이렇게 열기구가 뜨고 내린다는것은 사실 신기한 일이다. 타려는 사람들과 태우려는 사람들의 왁자지껄함 속에서 열기구를 실은 트레일러가 하나둘 모여들고적당한 간격을 유지한 채 상기된 표정으로 때를 기다린다. 마치 웨딩 드레스를 정리하는 예식장 직원들처럼 기구를 꺼내 잔디 위에 조심스럽게 늘어 놓는다. 그리고 동시에 공기를 주입하기 시작했다. 데워진 공기에 오똑이처럼 일어난 바스켓에 상기된 표정의 탑승자들이 하나둘 오른다. 이 거대한 풍선은 내가 생각했던것보다 훨씬 치열한 모습으로 이륙했다..
<Joe> David Gordon Green (2013) '이 영화 왠지 너가 좋아할만한 영화같아'라는 멘트와 함께 보기 시작하는 어떤 영화들.항상 적중하는것은 아니지만 적중하면 완벽하게 적중하며 '내가 좋아할만한 영화'가 되기위한 조건을 더욱 세분화시키며 그 카테고리를 더욱 배타적으로 만드는.내가 좋아하는 분위기와 색감과 표정들을 기본적으로 바탕에 깔고선 내가 한번도 본 적 없는 움직임을 보여주는 그런 영화들.마음껏 빠져들어야 한다. 어차피 내가 좋아하는것들만 두고두고 곱씹으며 살아가야 할 인생이니깐.니콜라스 케이지는 좋은 배우이다. 그가 가족과 시민을 구하는 정의로운 영웅으로 나타나는 횟수가 늘어가는것과 상관없이 그의 심각한 표정에서 난 여전히 방 천장에 긁히는 손가락에 고통스러워하는 의 하이를 떠올린다.이나 처럼 별로 기억에 남지 않는 비슷한 역들을 연기..
<쇼생크 탈출 The Shawshank Redemption> 앤디의 편지 우리가 사랑하고 감탄하며 마치 하나의 명화처럼 화석처럼 평생을 가슴속에 담아두고 싶은 어떤 풍경들이 있다.보슬비에 젖어가는 촉촉한 땅위에 서서 시야에 잡히는 모든 피사체를 기억하겠다고 장담하지만조금만 각도를 비틀어 뒤를 돌아보거나 서너발짝 물러서서 다른 방향을 바라보며 과연 정말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이 장소를 기억할 수 있을까 반문했다.사진이라는 평면의 예술이 담기에 우리의 기억은 그만큼 입체적이다.하지만 그 기억을 나 자신만 아는 가슴속에 담아두기에 우리는 겁이 많다.사진을 보며 늘상 회상에 젖지만 진실로 아득한 그리움에 빠져들게 하는 어떤 풍경들은 어떤 사진에서도 찾을 수 없다.사소한 기록에 초연해질때 오히려 기억은 견고해지는것이 아닐까.기록은 나의 기억을 보장할 수 있을까. '빌니우스에서 버스로 ..
Paris 09_파리의 마블발 욕조를 과감히 뜯어내면서 시작된 4평 남짓한 욕실 수리. 한달전에 주문한 타일이 도착했지만 아직 가지러 가지 못했다. 오래된 타일을 벗겨내자 깊은 구덩이가 드러났고 시멘트를 붓기 시작하면서 세탁기도 옮겨 버렸다. 이제 세탁기도 돌릴 수 없고 곧 화장실도 쓸 수 없을테니 더 이상 질질끌지 말고 빨리 끝내버려야 할 때가 된것이다. 마음 먹고 한다면 업자를 불러서 일주일만에라도 끝낼 수 있겠지만 그러기엔 우리가 가진 시간이 너무 많았다는것. 일주일에 하루 날 잡아 세시간 정도 일하고 먼지 닦는데 한 시간을 쓴다. 남은 6일동안 수리에 대한 강박은 지워버려야 하니깐. 조그만 집인데 너무 빨리 고쳐 버리면 나중에 아쉬울거라며. 욕실에서 물을 사용할 수 있을때 쯤 가을쯤 어디 잠깐이라도 여행 다녀올 수 있을까.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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