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

(907)
루카 Lucca 의 어떤 창문 Luca_2010  지점토 반죽에 조심스레 포크 자국을 내서 창이 날 자리에 정성스레 두르고 날카로운 칼로 가장자리를 잘라내어 뜨거운 태양으로 구워낸것 같다. 한 가득 쏟아지는 태양을 피해 레고 창문 안으로 숨어든 이의 안식이 느껴지는 풍경.
코르토나에서 만난 인생 오일 파스타 인생 부대찌개를 마주하고 있자니 인생 파스타가 떠올랐다. 코르토나는 다이앤 레인이 출연한 이라는 영화의 배경이 된 이탈리아의 도시이다. 피렌체를 떠나 의 배경이 되었던 아레쪼에 잠깐 내려 짧은 기차를 타고 도착했던 에트루리아인의 도시. 오랜 걸음으로 도보가 따로 마련되어있지 않은 산악도로를 위험스레 거꾸로 걸어서 닿았던 그곳. 역에서 내려 한참 걸어 올라간 코르토나는 '너는 여행객이다' 라는 명제를 여실히 증명해보이는 풍경들을 품고 있었다. 영화속에서 프랜시스가 잠깐 관광버스에서 내려 자유시간을 만끽하는 코르토나의 느낌 그대로였다. 그리고 그 자체로 좋았다. 9월의 코르토나에서 프랜시스의 눈을 가득 점령하고 지나치던 해바라기 들판은 볼 수 없었지만 골목 어귀의 기념품 가게 문에 붙어 있는 해바라기 ..
인생부대찌개 세번째 집이라는 이름의 남산의 한 대안공간. 난방도 안되고 수도꼭지도 없고 화장실도 없는 매우 사랑스러운 공간이다. 서울에서 가장 추웠던 날을 고르라면 아마 이곳을 처음 방문했던 그 날일거다. 실제 날씨는 그렇게 춥지 않았지만 나로써는 실내에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커다란 추위였다. (http://ashland11.com/501) 세채의 집이 멋들어지게 연결된 이 공간은 근사한 마당을 가지고 있는데 날씨가 좋아도 해가 마당의 가장자리에만 길게 걸리는 위치라서 가장 추웠던 날로부터 한달이 지나서 다시 갔어도 곳곳에 녹지 않은 눈이 남아있었다. 첫째날은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약수역으로 내려가 닭갈비를 먹었고 두번째 간날은 날이 많이 풀렸으니 실내에 머물 수 있는 여유가 생겨서 음식을 배달해서 먹었다. 배달앱..
Vilnius 50_남겨두기 Savičiaus 거리. 타운홀을 앞에두고 걷다보면 분수대 근처에서 왼편으로 이어지는 작은 길이 있다. 이 거리에는 빌니우스가 사랑하는 오래된 두 식당, 발자크와 블루시네가 있고 (http://ashland.tistory.com/222) 구시가지에서 가장 허름하고 음산한 버려진 느낌의 교회 하나가 거리의 끝무렵에 자리잡고 있다. 타운홀 광장을 중심으로 이 거리와 대칭을 이루는 지점에서 뻗어나가는 꼬불꼬불한 Stiklų 거리가 관광지 냄새를 물씬 풍기며 여행객들에게 사랑받는 빌니우스의 거리라면 이곳은 구시가지 곳곳을 익숙한 발걸음으로 걷던 현지인들에게도 일부러라도 한번 찾아가서 들여다보게 되는 그런 숨은 보석같은 거리이다. 특별히 아름다운 풍경이 있다거나 그런것은 아니지만 이 거리에 들어서면 왠지 조용히 ..
Vilnius 49_열기구들 오후 8시정도가 넘으면 부엌 창문 너머로 열기구가 보인다. 물론 비가 오지 않는 날에. 바람이 심하게 불지 않는다면 흐린 날도 열기구는 뜬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많게는 8개가 넘는 열기구가 동시에 뜬다. 오후 저녁에 빌니우스 하늘에서 열기구를 보았다면 오후 7시 정도에 열기구가 뜨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 빌니우스의 네리스 강을 옆에두고 대성당을 지나 우주피스 (Užupis) 지역을 휘감고 지나가는 도로 근처에서 올려다보이는 언덕, 얼마전 재건을 마친 바르바칸 성벽에서 내려다보이는 풀밭에서 열기구가 뜨는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이 근처를 찾았던 날에는 날씨가 별로 좋지 않은 상황에서 열기구 두대만 떠오를 채비를 하고 있었다. 특히나 이 열기구는 얼마전에 처음 등장한 형태의 열기구여서 가..
Berlin 18_베를린의 티벳 하우스 베를린 3일째. 도착했던 날 밤 케밥집에서 다 못먹고 통째로 남겨온 케밥을 메인으로 샐러드와 삶은 계란등으로 이틀 내내 든든한 아침을 먹었다. 지속적인 카페인 섭취때문에도 그랬겠지만 여행 모드에 취해 흥분상태였는지 사실 별달리 먹는게 없어도 종일 배가 고프지 않았다. 허기를 그냥 망각해버린다는것. 매순간 그렇게 살아야하는것 아닐까. 너무 흥분되고 행복해서 배고프다는것도 까먹는 그런 상태. 근데 3일째부터 결국은 늦잠을 자는 패턴으로 바뀌고 늦게 일어나니 아침도 잘 안먹고 나오게 되자 차츰 돌아다니다보면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결국 허기는 망각할 수 없는건가보다. 그냥 아침을 든든하게 먹어서 그랬던건가. 베를린에도 익숙해진건가. 뭐 그런 생각이 또 들기 시작했다. 우리가 그날 찾아간 티벳 음식점은 친구가 ..
리투아니아어 31_ 과자상점 Konditerija (Vilnius_2017) 정확히 어떻게 해석을 해야할지 모르겠는데 Konditerija (콘데테리야) 는 과자 상점...사탕의 집..케익 하우스..그런곳이다. Gaminiai 는 상품, 제품이란 뜻인데 이 명사를 꾸미고 있으니 -a 여성명사 어미는 -os 로 바뀌어서 Konditerijos 라고 표기된것. 이곳을 빵집이라고 할 수는 없다. 손가락으로 집어 먹을 수 있는 값비싸지 않은 단과자들을 파는곳. 비닐이 반쯤 벗겨진 조그만 상자속에 가지런히 놓여져 있는 그런 과자들을 원하는만큼 달아서 봉지에 담아준다. 어릴때보면 센베이 과자 같은것만 파는 가게들이 있었던것 같은데 약간 그런 느낌일까. 그런 과자들도 비닐이 덮힌 상자안에 놓여져있어서 사려고하면 비닐을 젖히고 으례 집게로 집어주셨고 특히 분홍색 하얀..
Vilnius 48_기다림의 대열 (Vilnius_2017) 빌니우스의 비는 늘상 지나간다. 지나가지 않는 비가 세상에 어디있겠냐마는 빌니우스의 비는 곧 지나갈것임을 약속하고 지나간다. 곧 지나간다고 하니깐 빨리 지나가라고 재촉하는 사람도 불평하는 사람도 없다. 그래서 너도 기다리고 나도 기다린다. 누군가는 버스를 놓칠거고 누군가는 좀 식은 피자를 배달할것이고 누군가는 직장에 지각하겠지만 모두가 함께 늦는것이다. 조용히 기다림의 대열속으로 합류하는것. 그것이 낯선 빌니우스 사람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순간이다. 지나가는 비를 함께 기다리는것 만큼의 거대한 공감대는 없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