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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휴가

(910)
Vilnius 91_오늘 아침 노란 창문이 박힌 벽에 뚫린 그 '어떤 대문'을 지나면 이런 풍경이 나온다. 오늘 아침에 이 곳을 지나왔다. 이제는 새벽 6시 정도만 되면 자명종처럼 새가 지저귄다. 어쩌면 그보다 이른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다시 잘까 깨어있을까를 생각하다 보면 30분 정도가 흐른다. 그러다 잠시 잠이 들면 건너편 건물에 반사되어 들어오는 햇살이 7시 정도를 알린다. 저 나무 뒤로는 정오가 지나면 아주 강한 햇살이 고인다. 하지만 12도 남짓으로 조금은 쌀쌀해서 아직은 옷을 여미고 스카프를 둘러야 하는 이런 아침이 결국 가장 좋다.
리투아니아어 57_ 백야 Baltosios naktys 지난번 빌니우스 도서 박람회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백야가 묶인 도스토예프스키 책 한 권을 샀다. 현금도 없었고 현금 지급기도 없는데 카드를 받지 않는 부스가 많아서 그나마 한 권 유일하게 사 온 책이었는데. 얼마 전에 책장 아래칸에 잡다한 책들과 섞여있는 것을 보고 도스토예프스키의 다른 책들 근처로 옮기려고 보니 위칸에 터줏대감처럼 꽂혀있는 책. 책을 잘 사지도 않는데 같은 책을 두 번 사다니 황당했다. 내가 이들을 몹시 좋아하던가 아니면 기억력이 이제 다 했던가 공부하라는 계시라고 생각했다. 어릴 때 50권 남짓되는 주니어용 세계문학전집이 있었는데 신동우 화백이었나 그가 그린 삽화 속의 인물들 얼굴이 꽤나 특색 있었다. 1번은 부활, 2번은 로미오와 줄리엣 3번은 좁은 문 4번이 가난한 사람들 그런 식으..
Night on earth (1991) 지상의 밤... 영어 제목보다 한국어 제목이 조금 더 가슴에 와 닿는다. 지상... 어떻게 들어도 참 멜랑꼴리 하고 센티멘탈하다. 2년이 지나면 이 영화도 30년 전 영화가 되니 지금 이런 영화들을 고전처럼 찾아보고 있을지 모를 나보다 어린 세대들에겐 어쩌면 90년대 후반의 내가 70년대의 스콜세지 영화를 보았을 때와 같은 그런 기분일까. 그런데 80년도에 영원한 휴가를 만든 짐 자무쉬를 스콜세지와 거의 동시대의 감독이라고 해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닐 텐데 이 두 감독을 보고 있으면 마치 임권택과 홍상수 사이에서 감지되는 세대차이가 느껴진다. 짐 자무쉬가 도시 뒷 구석에서 아무도 모르게 파편처럼 부유하는 인물들을 최대한 날 것으로 표현해낸다면 스콜세지는 그런 인물들에 묵직한 표정과 목소리를 부여하며 아주 ..
Vilnius 90 내가 아는 가장 정다운 노란 창문이다라고 말하고 싶다가도 빌니우스 어딘가에 또 내가 모르는 노란 창문이 있을 수도 있을까? 생각한다. 이제는 도서관이 수리를 해서 더이상 삐그덕거리는 마룻바닥을 걸을 일이 없지만 예전에는 그 마루 위를 조심조심 걷다가 창 밖으로 눈을 돌리면 항상 저 창문을 마주치곤 했다. 최고 기온이 18도까지 올라갔지만 나는 여전히 춥다. 개나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에도 가장 부지런한 꽃덤불은 노랑이다. 가로수 아래로 파릇파릇 새싹이 돋는 것도 보인다. 곧 민들레도 나타나겠지. 밤나무에도 꽃봉우리가 올라왔다. 그러고나면 라일락이다.
Vilnius 89_어떤 대문 빌니우스 구시가에도 곳곳에 지름길이 있다. 모르는 건물의 중정을 용감이 들어섰을때, 질퍽한 진흙길에 신발을 망가뜨릴 것을 감수하고 변변한 조명 하나 없는 컴컴한 남의 마당에 들어갔다 되돌아 나오는 수고를 귀찮아 하지 않을때 비로소 찾아지는 것들. 그들만의 통로. 구시가의 아도마스 미츠케비치우스 도서관과 리투아니아 영화 박물관 마당을 구분하고 있는 이 문은 사실 숨어있다고 하기에도 너무나 장엄하지만 멀리 저만치 떨어져있는 두 성당을 게임 속 포털처럼 연결해주는 문이다. 조금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때 항상 저 성당을 등지고 이 문이 열렸나 확인한다.
Vilnius 88_오렌지 씽씽 요즘 빌니우스에 새롭게 나타난 녀석들. 너무 엉뚱한 곳에 서있는 경우가 많아 깜짝깜짝 놀란다. 종종 걷기 귀찮다는 생각이 들 때 정말 거짓말처럼 눈 앞에 서있는 이들을 보면 잡아타고 싶다 생각하지만 어플 설치하는것이 귀찮아서 계속 미루고 있다. 기본 요금 0.5유로. 1분마다 0.1유로씩 추가되는 공유 씽씽이다. Citybee 는 리투아니아의 공유 경제 기업이다. 몇년 전 부터 자동차를 가동시키더니 나름 정상 사업 궤도에 안착했다보다. 어플을 켜면 아마 서 있는 곳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씽씽을 보여줄거고 이제 그만 타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비교적 정상적이고 정직한 느낌이 드는 장소에 착하게 세워놓으면 될 것 같다. 아마 그럴거다.
왕좌의 게임 시즌 8을 기다리며 잡담 마지막 시즌을 남겨두고 있는 왕좌의 게임. 8년간 방영되었던 일곱 시즌을 한 달 동안 몰아서 보았다. 상을 주는 것도 아닌데 새 시즌 시작하기 전에 다 보려고 마치 1분 남은 투명의자를 하는 심정으로 팔다리를 빌빌 꼬며 보았다. 반칙왕에서 송강호가 벌 서면서 난닝구를 물고 버티는 것 같은 느낌이라면 딱이다. 잘 이해도 안되고 별로 재밌다는 생각도 들지 않아 몇 년 전에 시즌 1을 중반까지 두 번 보다가 말았다. 다행히 8년 동안의 내용 전개를 모르는 상태에서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마지막 시즌이 영영 시작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이 기분은 뭘까. 나는 왜 뭔가가 결론이 나는 것이 이토록 싫은걸까. 마지막 시즌이 다 끝나면 그때가서 다 몰아볼걸 그랬다는 생각도 문득 든다. 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 이..
Big night (1996) 학창 시절의 기억들은 아직 생생해서 20년이라고 해봐야 그다지 오래 전 일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데 이런 영화가 무려 23년 전 영화란 것을 인지하고 나면 시간이 도대체 어떻게 흘러가는건지 멈칫하게 된다. 어떤 영화를 보고 가슴 속에 남는 감정들이 살아있는 사람과의 교감만큼 진하고 지속적이라는것에 항상 놀란다. 이 영화는 97년도에 영화 잡지의 시사회에서 보았다. 마치 레스토랑 메뉴판처럼 생긴 멋진 시사회 입장권을 나눠줬었는데 그런 것들을 좀 놔둘걸 하다가도 지금도 여전히 뭔가 지속적으로 버리며 조금 더 남겨둬야 할 것과 이제는 가슴에 새겨져서 버릴 수 있는것들을 구분하는 스스로를 보면 남겨둘걸 하는 생각을 하며 기억하게 되는 그 순간의 아쉬움이 추억의 가치라는 생각도 든다. 이 영화를 아주 여러 번 보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