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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lnius Chron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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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lnius 160_조심히 걷기 10미터 정도 앞에 먼저 가고 있던 남자가 꽈당 넘어지길래 반대편 길로 가서 걸음을 이어갔다. 언젠가 나의 미끄러짐도 누군가에게 귀감이 되었겠구나 싶어 마냥 창피한 행위는 아니란 생각이 들며 괜시리 마음이 편해지면서 앞서 넘어진 남자의 겸연쩍은 뒷모습을 진심으로 위로해주었다. 지붕으로부터 물이 떨어져 거리에 쌓인 눈에 꽂히는 소리가 발자국 소리와 비슷하다. 계속 뒤에 누가 오는 느낌이 들었지만 거리엔 혼자였다. 제법 밝아졌고 어느새 2월이 되었다. 이 길에서 나는 보통 왼쪽 길로 꺾는다.
Vilnius 159_오후의 성당 그제부터 오늘까지 매일 아침과 저녁 눈 위에 모래를 뿌리는 성당지기를 스쳤다.
Vilnius 158_안뜰 이 풍경에서 많은 이들이 떠오른다. 바르바라와 제부쉬낀이 그 중 일등으로 떠오른다.
Vilnius 157 요즘 날씨는 뭐랄까. 사람들이 줄을 잔뜩 서있는데 점심시간이 되었다고 점심시간 팻말을 걸고 눈도 안 마주치고 동료와 수다떨며 쌀쌀맞게 돌아서는 가게 직원을 보는 느낌. 사실 이런 날씨는 상식적으로는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라 딴지 걸 이유가 전혀 없음에도 혹여나 그래도 좀 다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시즌 4 기다리고 있는 중의 '킬링이브'에 따지고보면 굉장히 평범한 대사였는데 스토리 진행상 그리고 배우들의 호연에 아주 기억에 남은 대사가 있다. '내가 널 좋아하지만 그 정도까진 아니야'. 뻘쭘한 산드라 오의 표정. 듣는 사람 입장에선 특히 그 사람의 자존감이 최정점에 도달한 상태라면 완전 주눅드는 대사이다. 추운거 좋고 흐린 날씨 너무 좋아하지만 요즘 날씨는 뭐랄까 일부러 뻐팅기는 자뻑..
Vilnius 156_마당 속 언덕 자주 지나는 거리의 어떤 건물 안마당으로 발을 옮긴다. 햇살이 넉넉히 고이는 좁은 공간에 오랜 공사 중 쌓여 방치된듯 보이는 흙더미를 무성한 잡초들이 기어이 뚫고 올라오는데 그 전체가 흡사 설치미술같다. 흙더미를 둘러싸고 있는 사방의 건물 내부는 예상대로 지지부진한 건축 현장에 기가질려 두 손 두 발 다 들고 눈조차 질끈 감고 있는 모습이었지만 곧 꽃마저 피울 듯이 고개를 빳빳이 든 초록 덕택에 나뒹구는 술병과 비니루조차 낭만적으로 다가온다. 오며 가며 스치는 낯선 사람을 향한 시선이 아주 빨리 신발까지 미치는 순간이 있다. 그렇다고 그것을 위아래로 훑어본다고 표현하기엔 그 짧은 순간 사로잡힌 감정은 생각보다 깊은 울림을 가진 복합적이고 진지한 형태이다. 거리를 지나다 고개를 틀어 마주친 남의 집 마당에..
Vilnius 155_4월의 아틀라스 6개월 간 배달만 허용되던 식당과 카페들이 야외 테이블에 한하여 손님을 받을 수 있게 된 어제. 그리고 오늘은 눈돌멩이 같은 우박이 세차게 내렸다. 공들여 꺼내놓은 테이블엔 눈이 내려 앉았고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은 두손을 모아 해맑게 눈을 받아낸다. 여전히 라디에이터는 따뜻하다. 젖은 신발은 고스란히 그 위로 올라간다.
Vilnius 154_좋아하는 오르막길 대성당과 종탑이 있는 곳은 구시가에서도 저지대에 속해서 그쪽 방향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에는 어떤 거리가 됐든 경사진 길을 통해야 한다. 오른쪽은 리투아니아 국방부의 옆모습이고 정면으로는 새까맣게 타들어간 눈을 가진 버려진 수도원과 그 지붕 너머로는 성당 종탑이 보인다. 왠지 모를 음습함과 삼엄함의 앙상블인 이 짧은 오르막길을 좋아한다. 이 수도원 건물은 빌니우스에 손님이 오면 데려가지 말아야 할 곳이 있다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장소이다. 복원과 재정비가 필요한 대상으로 늘 분류되지만 시 재산이 아니라 특정 종파의 소유물인 경우가 많아서 투자자가 없으면 기약 없이 버려지는 구시가의 많은 장소들에 연민을 느끼면서도 오히려 그런 이유로 그나마 계속 회자되고 부담 없이 눈길을 줄 수 있음에 안도하기도 한다. ..
Vilnius 153_3월의 마지막 눈 구청사의 뒷모습과 컨템포러리 아트 센터 옆모습. 걸어도 걸어도 계속 걸어질 것 같은 거리들. 지나치고 지나쳐도 계속 부대끼고 아른거리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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