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휴가 (886) 썸네일형 리스트형 리투아니아어 116_목록 Sąrašas 마트에 가서 바구니를 집으려고 보니 옆바구니에 남겨진 쪽지 한 장이 보인다. 그래서 그 바구니를 집었다. 이 쇼핑 리스트의 주인은 이 식품들을 전부 샀을까. 필기체를 썼고 복수를 잘 썼고 찍어야 할 곳에 점을 잘 찍었다. 긴 단어는 적당히 줄였고 파프리카에서는 망설였다. 대체로 자주 반복되는 기본 식품들을 사러 아주 일상적으로 마트에 왔다. 냉장고에 항시 있어야되는 것들이기 때문에 빠뜨리고 싶지 않아서 목록을 작성했을거다. 가령 이것은 어른 아이 다같이 오랜만에 둘러앉아 아침을 먹는 토요일 오전을 위한 리스트 같다. Pirkinių sąrašas - 쇼핑 리스트 Pienas 2 vnt - 우유 두개 Graik.jogurtas - 그릭 요거트 Užtepėlė - 스프레드 Duona Batonas - 빵. .. 2023년 12월의 반려차들 반갑고 고맙게도 친구가 보내준 차력 (어드벤트 티 캘린더를 이렇게 부르기로 했다.. ) 매일매일 짧게나마 기록한 12월의 반려차들. 12월이 되었다. 본격적인 겨울의 시작. 생각보다 일찍 갑자기 큰 눈이 와서 급하게 아이들 방수되는 겨울부츠와 옷을 장만하느라 허둥댔다. 해가 더할수록 뭔가를 미리 준비하기보단 코 앞에 닥쳤을 때 해치우는 것에 크나큰 쾌감을 느끼게 되었다. 12월 1일 오늘은 유치원에 초대되어 나뭇가지와 상록수들의 잎사귀를 엮어 어드벤트 리스를 만들었다. 오래전에 리가를 처음 여행할 때 중앙역 근처 대형 마트에서 이 회사의 50그램짜리 딸기향 홍차를 샀었다. 커다란 딸기 두 개가 그려진 귀여운 빨간 틴케이스였는데 그것이 아마 내 돈 주고 산 첫 차가 아니었는지. 부엌에 놔두고 양념통으로 쓰.. 리투아니아어 115_고고학자 Archeologas 내가 처음 도착했던 2006년의 모습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파네베지 버스 터미널. 17년 동안 나도 바뀌고 기후도 바뀌고 대통령도 바뀌고 화폐단위도 바뀌었지만 역내의 긴 나무 의자나 간판이라도 부분적으로 바뀔만한데 모든것이 소름 끼칠 만큼 그대로이다. 이 버스역에 들어서면 같은 해 겨울 들렀던 러시아의 이르쿠츠크 버스터미널이 늘 떠오른다. 짐을 맡겨놓는 Bagažinė는 역내의 꿈꿈한 흐라녜니에, 체부렉이나 감자전 같은 주로 튀긴 음식들을 파는 Valgykla는 스탈로바야와 그저 똑같다. 다를 이유가 없는것이 맞다. 러시아 대도시의 역 규모는 리투아니아와 비교할 수도 없지만 이르쿠츠크는 상대적으로 소도시인지 그 오밀조밀 아는 사람끼리 부대끼는듯했던 인상을 종종 파네베지에서 느낀다. 파네베지는 얼마 전까.. 리투아니아어 113_공증인 Notaras 동네 곳곳에 공증 사무실이 정말 많다. 간판에 보통 'Vilniaus m.10-asis notaro biuras 빌니우스시 10번째 공증 사무실' 이런 식으로 적혀있다. 오래전에 종로 구청 근처 공증 사무실에서 몇 가지 증명서를 영문 번역하여 공증을 받았었다. 그 서류들을 리투아니아어로 번역해서 다시 공증받은 후에야 효력이 생긴다. 지금은 인터넷에서 내려 받을 수 있는 서류도 많고 아포스티유도 발급이 되니 전에 비하면 모든 것이 엄청 간단해진 듯 보이지만 해외에 거주하면서 신분증이나 거주 관련 문서들을 준비하고 갱신하는 것은 어쨌거나 참 손이 많이 가는 일이다. 그래도 지금까지 늘 별문제 없이 잘 진행되었으니 한편으론 고맙다. 간혹 일간지를 사서 읽는다. 주어와 목적어가 바뀌고 날짜와 장소가 바뀌고 모든.. 카페에서 5분. 이 카페는 정말 날씨가 지나치리만치 좋을 때 킥보드를 타고서 1년에 한 번 정도 간다. 자주 가지 않는 카페는 결코 아니다. 날씨가 그냥 자주 안 좋을 뿐. 대성당부터 베드로 성당 뒤쪽으로 이어지는 안타칼니스( antakalnis) 동네까지 네리스 강변을 따라 별다른 장애물 없이 쭉 타고 올라갈 때의 뻥 뚫리는 기분. 출퇴근 차량과 트롤리버스는 한결같은 매연을 내뿜고 있겠지만 곳곳의 과묵한 녹음들이 피톤치드를 분사하고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이동한다기보다는 놀이기구를 타는 마음으로 혼자 몰래 불량식품 먹으러 간다는 생각으로 간다. 인터넷에서 중고책을 샀는데 만나서 전해주겠다는 장소가 바로 이 근처여서 오랜만에 이 카페에 들를 생각에 그러자고 했다. 11월인데 벌써 너무 춥다. 4시에 만나기로 했는.. 리투아니아어 112_Tūris 함량 세상에 여러 종류의 즐거움이 있다. 꼭 해야 하는 일을 굳이 안 하는 것. 굳이 안 해도 되는 것을 열심히 하는 것. 그리고 1) 평일 2) 대낮에 3) 마트의 독주코너를 4) 말끔한 정신으로 5) 어슬렁거리다 6) 구매의 목적을 창조하고 7) 세상과 나를 설득하는 것. 이들 중 제일 까다로운 즐거움은 단연 가장 후자가 아닐까 싶은데 그것이 즐거운 행위가 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조건이 성립되어야 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어쩌면 이 복잡 미묘한 즐거움을 만끽하기 시작하면 대체로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질척이다 결국 모두를 힘들게 하는 존재가 되어버리는지도 모른다. 마치 정도를 넘겨 근본 없이 희석된 독주처럼. 꽁꽁 언 바닥에 엉겨 붙은 지난밤으로부터의 토사물처럼. 술을 선물하는것을 좋아하는데 술이든 뭐.. Vilnius 175_모든 성인들의 날 주중의 이틀이 공휴일이어서 여유롭고 차분했던 지난 한 주. 간혹 비가 내리긴 했지만 11월 들어 기온이 많이 올랐다. 하지만 어둡고 휑한 거리를 걷는 옷속의 나와 주머니 속의 손이 유난히 포근했던건 기온 그 자체의 영향때문이라기보다는 아마 갑자기 추워진 10월에 꺼내 입은 따뜻한 옷들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입고 다녔기 때문이다. '입은 옷이 문제지 나쁜 날씨는 없다'는 말은 천번만번 맞는 말씀이지만 '너 자신이 옷을 알맞게 잘 입으면 된다'라는 개인책임론은 결국 좋은 날씨는 없다는 것의 반증이려나. 리투아니아어 111_숫자 Skaičius 이제는 이 동네식으로 숫자 쓰기에 익숙해져서 우체국에서 한국 주소나 전화번호를 적어야 할 때라든가 가장 최근만 해도 대사관에서 주민번호 하나를 적는 데에도 약간의 내적갈등이 일어난다. 오래전에 한국에서 내가 쓰던 식으로 적자니 이제는 내 손에 익지 않아 어색할 뿐만 아니라 잘못된 숫자를 적는 것만 같고 여기서 쓰던 대로 적자니 왠지 어떤 숫자는 오해의 여지를 남긴 채 잘못 읽힐 것만 같다. 하지만 막상 모든 숫자가 골고루 전부 포함되어 있는 페이지를 보니 숫자 하나하나가 또렷하여 크게 헷갈리거나 딱히 애매해 보이는 숫자는 없다. 주로 문제가 되던 숫자 세 개를 조합하고 보니 반갑게도 외대 앞 정류장에서 수없이 지나쳐 보낸 147번 파란색 버스가 생각난다. 이전 1 ··· 13 14 15 16 17 18 19 ··· 11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