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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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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아니아어 63_버터 Sviestas 타향살이, 외국생활, 이민 등등 고향을 떠나 온 사람들의 생을 표현하는 단어들을 내뱉는 순간에는 왠지 회한, 설움, 고생, 외로움 같은 안타까운 뉘앙스의 이미지들이 뒤따른다. 실상은 별거 없다. 쟁여놓아야 하는 식품들과 사용하는 속담들이 달라지는 것,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맞닥뜨린다면 버터위에 버터를 바른 격이라는 속담이 먼저 떠오르고 일이 순조롭다고 생각할 땐 순풍에 돛을 다는 대신 버터 위에서 미끄러지는 것을 택하는 것, 그뿐이다. 쟁여놓는 식품 1순위는 아무래도 버터이다. 간장이 먹고 싶다고 해서 집에 있는 간장을 순식간에 마셔버릴 수 없듯이 버터가 아무리 많아도 다 먹어치워 낭비할 일은 없다. 그러니 세일을 하면 좋은 버터를 미리 사놓게 된다. 마트에 파는 버터의 성분은 천차만별이다. 무염..
인생의 Top five 겨울에 받은 소포 상자 속에 들어있던 국물 떡볶이 한 봉지. 이런 것들은 여행에서 가져온 한 움큼의 초콜릿이나 선물로 받은 가본 적 없는 미지의 카페의 커피콩처럼 희소가치가 있으므로 최대한 예를 갖춰서 대해야한다. 푸힛.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그 음식을 먹는 순간을 섭취한다는 생각이 들만큼. 그래서 유통기한을 숙지한 상태에서 냉장고의 가장 깊숙한 곳에 놔둔 채로 끊임없이 기회를 보며 언제 먹을 것인가. 어떻게 먹을 것인가로부터 시작해서 무엇을 보면서 먹을 것인가의 질문에 대한 답이 생긴 후에야 포장을 뜯는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세 번째, 무엇을 보면서 먹을 것인가이다. 대부분은 책장에 꽂혀있는 영화 중 하나를 본다. 음식을 먹느라 열심히 보지 않아도 놓칠 것이 없을 만큼 잘 아는 영화. 그럼에..
Born to Be Blue (2015) 5분가량으로 짧게 편집된 오스카 시상식 하이라이트를 보았다. 예전만큼 패기 있게 내려가진 않았지만 여전히 반쯤 내려간 바지를 입은 에미넴이 거짓말처럼 스쳐 지나간다. 눈 앞의 오스카는 페이드 아웃되고 공연 전체 영상을 보며 이제는 세상에 없는 브리트니 머피와 함께 한 그의 영화 8마일을 추억하기 시작했다. 나름 베스트 음악상 수상자인 에미넴이다. 턱시도와 드레스를 차려입은 사람들 앞에 선 그의 공손한 공연을 그마저도 거의 졸면서 보고 있는 마틴 스콜세지와 열심히 그루브를 타는 갤 가돗 사이의 세대적 괴리만큼이나 18년 전의 그와 지금의 그 사이의 거리는 8000마일쯤은 되어 보였다. 힙합팬이 아니어도 가슴이 뜨거워졌던 영화, 흑인의 전유물이라고 여겨지는 힙합씬에 혜성처럼 나타난 말끔한 백인 아이. 오스카..
리투아니아어 62_감자 Bulvytė 러시아의 까르또슈카에 해당하는 '감자' 라는 이름의 디저트가 리투아니아에도 있으니 일명 '불비떼'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 감자는 불베 Bulvė 라고 하고 불비떼 Bulvytė 는 지소체. 뭔가 트러플 초콜릿과 비슷한 맛일까라는 생각을 가지고 먹기 시작 할 수 있지만 절대 그렇진 않다. 그렇다고 감자맛도 당연히 아니다. 단면을 자르면 다 식은 찐 감자처럼 묵직할뿐이다. 여러형태가 있겠지만 가장 일반적인 형태는 그냥 저렇게 둥근 것.촌스럽지만 정겹고 향토적이며 그 첫만남이 언제였고 몇 번 만났느냐와 상관없이 한 입 먹는 순간 개인의 추억이 밀려오는 디저트. 그런데 이 디저트를 아무곳에서나 쉽게 먹을 수 있는게 아니다. 빌니우스 구시가에서 이 감자를 파는 곳은 많지 않다. 그런 빵집에는 항상 아이들이 있거나..
리투아니아어 61_사랑 Meilė 밸런타인데이를 기념하는 어린이 도서관 창가 풍경. Meilė iš pirmo sakinio '첫 문장에 반하다. 첫 문장에 반한 사랑'이라는 뜻의 문장이다. 정성스럽게 포장된 책 위에 책의 일부 문장이 적혀있었다. 이것을 집어서 직원에게 가져가면 포장이 안된 상태의 책을 따로 꺼내어주는 줄 알았는데 그냥 포장된 채로 대출을 해서 가져가는 거였다. 아직 글을 읽지 못하는 누군가는 가장 짧은 문장이 적힌 책을 골랐다.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뭔가를 고심 끝에 고르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겠지.
커피들 빌니우스에서 13번의 겨울을 나는 동안 가장 따뜻한 겨울이다. 모든 생명체가 예고를 하고 나타나듯 카페도 예외는 아니다. 카페의 삶도 '이곳에 곧 카페가 생깁니다' 라는 문구로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생긴다고 하는 카페가 생기지 않은 적도 있으니 첫 잔을 마주하기전까지는 경건한 마음으로 잠자코 기다리는 것이다. 이제는 열었을까 하고 찾아 갔던 어떤 카페. 사실 구시가의 척추라고 해도 좋을 거리이지만 차량통행이 일방통행이고 반대 차선으로는 트롤리버스만 주행이 가능해서 유동인구가 적고 저 멀리에서 신호라도 걸리면 온 거리가 적막에 휩싸여버리는 거리이다. 건물 1층의 점포들은 대체로 뿌연 회색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 누구에게 임대를 해서 뭘 해도 잘 안되니 왠지 건물 주인이 뭐라도 해보겠다고 궁여지책으로 시작..
India 06_Darjeeling 2 춥지 않은 대신 축축한 겨울의 연속이다. 쌓이기보다는 물이 되어 사라지고 싶은 눈들이 내린다. 2월이 되면 더 자주 떠올리게 되는 오래된 첫 여행. 쌀쌀함 속에서 부서지던 다르질링의 저 햇살이 떠오른다. 심지어 고스란히 느껴진다. 내 얼굴을 채우고 있는 주근깨의 대부분은 그해 저 인도의 햇살이 성실하게 심어놓은것이니 지금까지 흘러온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도 추운 겨울이면 여전히 그 햇살이 나를 따라다닌다 느낄 것이다. 엄밀히 말해서 이곳은 다르질링에서 몇 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가서야 시작하는 트렉킹 코스의 어디쯤이었을 거다. 드문드문 몇 시간 간격으로 저런 롯지들이 나타났다. 비수기였기에 손님 치를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던 어떤 롯지의 주인과 그의 아이들이 생각난다. 명절이라서 마시는 ..
A Beautiful Day in the Neighborhood (2019) 매년 오스카 시상식이 열리기 전의 12월과 1월은 그해에 개봉된 따끈따끈한 수작들을 의식적으로 챙겨볼 수 있는 신나고 즐거운 시기이다. 게다가 올해는 한국 영화가 본상에 노미네이트되는 일까지 벌어졌으니 같이 후보에 오른 다른 작품들을 감상하는것이 훨씬 더 재밌었다. 후보작들을 구경하다보니 딱 한군데 남우 조연상에 후보를 올린 이 영화가 눈에 띈다. 사실 그냥 '미국인 톰 행크스'가 나오는 휴먼 드라마이겠거니 두시간 멍때리고 보는데 문제 없겠지 싶어서 보기 시작했고 실제로 그랬다. 그리고 생각보다 훨씬 더 재밌고 감동적이었다. 물론 조연상은 브래드 피트가 10번을 타고도 11번을 탈 것이다. 오스카를 이미 두 번이나 거머쥔 톰 행크스이지만 이번엔 그래도 좀 아깝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멋진 연기였다. 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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