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원한 휴가

(912)
독일 유로 기념주화 - 드레스덴 츠빙거 궁전 3년간 세상을 떠돌다 작년에 나에게로 굴러들어 온 독일의 2유로 동전. 빌니우스에서 독일 동전을 의외로 자주 보는데 그들과 사뭇 다른 이것은 드레스덴의 츠빙거 궁전이 새겨진 독일의 기념주화이다. 그러니 이것이 나에게 온 것은 아주 흔치 않은 여정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지난여름 현금만 받는 딸기 천막에서 몇 번을 쓸뻔하다가 딸기를 포기하며 간신히 간직했다. 이 동전이 속세에서의 여행을 마치려면 계속 쓰지 않고 나와 함께 재가 되는 것이 맞지만 난 언젠가 다시 드레스덴에 가서 이 동전을 쓸 즐거운 계획을 세웠다. 아니면 엘베강에 방생을 하고 와야 할까? 드레스덴은 도스토예프스키가 부인 안나와 함께 수년간 머물면서 아이를 낳고 소설 악령을 탄생시킨 도시이다. 드레스덴으로 가는 도중 빌니우스에도 머물렀으니 15..
리투아니아어 68_고슴도치 Ežiukai 같은 밀가루 덩어리에서 나왔는데 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니 진시황의 병마용을 떠올리게 하는 자태인가? 하긴 눈을 감고도 매번 1 그램의 오차도 없는 쌀밥을 집어 오물조물하는 스시 장인의 초밥도 어디 모두 같은 모습이겠냐마는. 그리고는 이들 밀가루 음식의 이름대로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쁘다는 말을 최종적으로 되새겼다. 가장 평범한 밀가루 반죽을 가장 평범하게 떼어내어 치즈 강판의 뒷면에 쑥 밀면 탄생하는 리투아니아의 가장 평범한 밀가루 음식. 그리고 이렇게 평범한 음식인데 각 가정마다 다른 레시피가 존재 한다는 것이 이들 평범함들이 지닌 비범함일 것이다.
서울사람들이 버리는 물건 서울에서 내가 살 던 동네는 재개발을 앞두고 있어서 많은 주민들이 이미 이사를 가고 난 후였다. 그들이 버리고 간 물건들은 대부분 가져가기에는 너무 무겁고 오래 된 가구였고 그리고 의외로 밥상이 많았다. 밥상은 내가 몹시 가져오고 싶은 물건인데. 들어서 옮길 수 있는 식탁이라니. 밥상은 별로 무겁지도 않은데 왜 버리고 가는 것일까.
리투아니아어 67_정거장 Stotelė 바르보라는 식품을 배송하는 리투아니아의 최대 인터넷 마트이다. 사실 최대라고 할 수도 없다. 유일했기 때문이다. 나라가 사실상 격리조치를 취하면서 바르보라는 요 근래 가장 바쁜 회사가 되었다. 스토텔레는 역, 정거장이라는 뜻이다. 이곳은 물건 정거장이다. 바르보라는 아주 예쁜 빨간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데 그 빨간 자동차가 배달해주는 물건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은 물건을 장바구니에 담고 빨간 정거장에 가서 자기 물건을 찾으면 된다.
리투아니아어 66_달걀 Kiaušinis 민족 대이동이 금지되어 빌니우스에서 조용하게 보내는 부활절이었기에 달걀 염색도 생략하려던 참이었는데. 전 날 우연히 모노노케 히메를 다 같이 감상한 이유로 얼떨결에 부활절 달걀 색칠이 만화 컨셉이 되었다. 막 새싹이 돋아나는 나뭇가지 사이에 아주 오래 전에 종이로 만들었던 숲의 정령을 놓아주었다. 건강한 숲에서 산다는 고다마의 머리 위에는 그렇게도 많은 먼지가 쌓여있었지만 우리 집 구석 어딘가에서 항상 우리를 지켜주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투아니아어 65_나무 Medis 집근처의 나무 한 그루. 아마도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처음으로 봄을 알려오는 신호이다. 설악산 대청봉에 내려 앉은 눈이 겨울을 알리고 내장산 정상에 올라간 어머니 아버지들이 헬리콥터를 향해 손을 흔들며 만추를 배웅하는 것처럼. 비록 다음날에는 전 날의 햇살이 무색한 비바람이 불어 황급히 코트 단추를 채우며 후드를 뒤집어 써야 했지만 발길에 저 꽃잎이 채이지 않는 것은 봄이 아직은 깊지 않았다는 소리겠지.
어른의 기준 어릴때 큰 고모댁에 가면 안방에 고모부 곁에 항상 있던 목침. 저렇게 딱딱한 것을 베고 테레비를 봐도 아프지 않으면 어른인가보다 생각했던 어린 시절. 오래 사용했는지 적절하게 패여진 목침이 언제나 그렇듯 버려진 밥상과 함께였다.
리투아니아어 64_샌드위치 Sumuštinis 수무쉬티니스. 이것은 아마 명실공히 리투아니아인들이 머릿속에 떠올릴 가장 흔한 샌드위치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다. 버터 위에 오이. 오이 위에 햄이다. 오이를 빼면 이것의 좀 더 투박한 버전이 될 것이고 이도 저도 다 사양하고 돼지비계만 얹는 빡쎈 버전도 있다. 물론 이런 식으로 만들어먹는 샌드위치의 종류야 무궁무진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