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휴가 (931) 썸네일형 리스트형 바쁜 카페 신경써서 잔을 치우러 온 사람이 멋쩍을까봐 다 마신 잔이며 케익 접시들을 주섬주섬 넘겨주지만 사실 내가 일어설때까지 모든 것이 고이 남아있을때가 가장 좋다. 그럼에도 물컵은 너무 많아서 다 챙겨가지 못했다. 전부 사용하기가 왠지 아까워서 컵 하나를 같이 썼지만 어쨌든 전부 싱크대로 직행하겠지. 붐비는 점심시간을 피해서 갔더니 가까스로 자리가 있어서 오랜만에 앉았다. Berlin 39_Berlin cafe 11_Bauhaus archiv 베를린엔 5월의 마지막날까지 딱 14일간 있었던지라 왠만해선 그 날짜를 잊기가 힘들다. 그래서 3년 전 오늘 베를린의 어떤 곳에서 커피를 마셨는지 찾아보았다. 그곳은 바우하우스 아카이브내에 있는 카페였다. 커피는 시내에 있는 카페에 비하면 맛이 옅은 대신 비쌌고 파이는 생각보다 덜 부드러웠다. 아카이브 속의 선물 가게에서 선물로 미니 블럭을 샀다. 입고 있던 옷과 머리 모양새를 보니 바람이 많이 불었던 날인가보다. 아마 이곳의 오늘도 그런 날씨일 거다. 독일 드라마 Dark 의 여운때문인지 같은 날짜의 오랜 전 여행을 추억하는 것이 마치 지나온 시간 만큼의 사이클로 내 인생을 조종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마치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있는 내가 잠시 3년 전으로 돌아가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를 생각.. Vilnius 113_5월의 라일락 하지를 한 달 남짓 남겨놓은 5월의 중순. 난방이 꺼지고도 한 달이 지났지만 요즘 날씨는 여름은 커녕 봄조차도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다. 사실 이토록 느리게 찾아오는 봄은 익숙하지만 밤기온이 0도에서 맴도는 5월은 조금 낯설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5월의 눈과 우박이 마치 겨울 난방 시작 직전의 10월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빌니우스의 4월이 잔인했다면 그 이유는 죽은 땅에서 조차 라일락을 피워내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마치 그 자신도 봉쇄의 대상일 뿐이었다는 듯이 5월이 되어서야 느릿느릿 피어나는 라일락. 피어나자마자 떠올려야 하는 것은 또 어쩌면 라일락 엔딩. (https://ashland11.com/380) Berlin 38_어떤 화장실 뭔가 비디오드롬, 트윈픽스스럽다는 생각에 멈칫하며 짧은 순간 쭈그러들었던 화장실. 변기에 앉는 순간 텔레비젼이 켜진다든지 블라인드를 올리면 침실이라든지 사다코가 기어 나오더라도 변기를 보고 다시 들어갈지도 모를 화장실. 어쩌면 설마 화장실이 아니었을수도 있다. 리투아니아어 72_책을 옮기는 사람 Knygnešys 리투아니아어 단어 중에 좋아하는 단어가 세 개 있는데 Kriaušė (https://ashland11.com/389), Batsiuvys 그리고 Knygnešys 이다. 이 단어들이 나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거나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은 아니고 사실은 어감 때문이다. Batsiuvys와 Knygnešys는 흔한 복합명사로 직역하면 신발을 만드는 사람(Batai+siuvėjas), 책을 옮기는 사람 (Knyga+nešėjas)이란 뜻인데 보통 많은 단어들이 자모의 규칙적인 배합으로 이루어지는데 반해서 이 단어는 두 단어의 자음과 자음이 만나는 흔치 않은 단어라서 그 어감이 독특하다. 두 개의 성깔 있는 자음이 만나서 입 속에서 울려 퍼지는 작지만 고집스러운 충돌이 이 단어 자체의 성격을 규정하는 느낌마저 .. 어떤 영화들 1 (하루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하루를 끝냈다고 생각하며 차 한 잔과 함께 보는 소중한 영화 한 편. 보는 중엔 영원히 기억할 것 같은데 제목도 까먹고 내용도 까먹고 결정적으로 재밌게 본 기억을 잊는 것이 서운해서 우선 짧게라도 기록하고 꼬리를 물고 떠오르는 일련의 영화들도 묶어서 기록해두기로 했다. 그러다 보면 결국은 내가 본 영화들을 다 기록해놓을 수 있지 않으려나?) 코로나로 집안에 격리된 이탈리아 사람들이 발코니에 나와서 저마다의 아리아를 열창하는 영상을 보고 오래 전의 이 영화가 떠올랐다. 평범하고 심심해보이기에는 이미 너무 유명해지고 바빠진 로마라는 도시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 어떤 이의 삶도 그렇겠지. 너무나 평범했는데 소위 그렇게 재능을 썩히고 살기에는 너무나 비범하다는 논리로 결국 아주 바.. 리투아니아어 71_자신 Save 문이란 당기세요 라고 써있어도 무심코 밀기 시작하는 것. 열려 있는 줄도 모르고 열쇠를 넣어 돌려 다시 잠그고 마는 것. 세번을 돌리고 돌려야 열릴 때도 있는 것. 리투아니아어에서 Į 는 4격이 붙는 방향의 전치사로 뒤따라오는 단어를 향한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저 문은 그렇게 열면 된다. Holland 05_어떤 부엌 암스테르담에서 뜻하지 않게 많은 이들의 부엌을 훔쳐 보았다. 자전거가 빼곡하게 들어찬 거리에 어둠이 깔리면 많은 집들이 부엌에 은은한 조명을 켜둔 채 지나는 이들의 관음을 즐기고 있었다. 내가 빌니우스에서 살기를 시작한 집의 부엌은 오랜동안 누군가의 암실로 쓰여졌던지라 물품과 사진 자료들로 가득차 있어서 복도에 놓인 작은 인덕션에서 음식을 해먹었는데 오븐도 부엌도 없던 시절에 이 가게에서 빨간색 코코떼와 모카포트와 미니 거품기를 사가지고 돌아왔다. 코코떼는 처음부터 변함없이 그저 소금 그릇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이제는 아담한 부엌의 가스불 위에서 모카포트로 커피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인덕션 위에서 대책없이 솟구치던 최초의 커피가 기억난다. 그리고 손잡이가 반쯤 녹아내린 12년 된 모카포트.. 이전 1 ··· 35 36 37 38 39 40 41 ··· 11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