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휴가 (898) 썸네일형 리스트형 지난 여름 커피 세 잔. 작년에 벨라루스 대사관 앞에 생긴 카페. 십이 년간 지나다녔지만 이 자리에서 잘 되는 가게가 단 한 곳도 없었고 카페만 생기기에도 어색한 공간이었는데 발리에서 공수해온 가구며 소품을 파는 가게와 예쁜 화분 가게가 카페와 복층 매장을 공유하며 나름 선방하고 있다. 오전부터 걷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중의 매우 무덥고 목말랐던 어느 여름 저녁. 혹시나 해서 연락이 닿아 만난 동네 친구와 잠시 앉았다. 차가운 음료를 만드는데 서툰 이 곳 사람들은 얼음을 채운 잔에 커피를 붓기보다는 커피가 담긴 잔에 얼음 하나를 동동 띄울 뿐이다. 가만히 앉아 미지근한 커피를 마시다 보면 결국 땀을 식히는 바람은 알아서 불어온다. 베르겐의 라이더 며칠 전 꿈에 베르겐에 여행 갔을 때 신세 졌던 친구네 집이 나왔다. 지금 그 친구 부부는 오슬로로 옮겨서 살고 있는데 꿈에서 내가 그 집 우편함을 서성거리며 그들의 이름을 찾고 있었다. 도대체 왜 갑자기 그런 꿈을 꿨나 생각해보니 아마 며칠 전에 베르겐에서 사 온 접시를 깨버려서 인 것 같다. 그래서 이런저런 베르겐 생각에 사진을 뒤지고 있으니 심지어 친구 집 근처에서 찍은 우편함 사진이 보인다. 짧게라도 글을 올리겠다고 이 사진 저 사진을 고르고 나니 이미 오래전에 다 올렸던 사진들. 항상 똑같은 생각을 하고 사는 건지 한 번 기억에 새겨진 것은 비록 그것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을 잊는 순간에도 결코 잊을 수 없도록 남게 되는 건지. 그 찰나에 사로잡힌 어떤 생각들이 결국 그들을 사진 속에 남기도록 .. Vilnius 130_ 사람 두 명 지난해인가 빌니우스 아트 페어에 등장했었던 설인. 얼마 전 집 근처로 이사 왔는데 영구 거주할 것인지는 모르겠다. 요즘은 오전 늦게까지 안개가 짙게 끼는 날이 많아서 안갯속에 휩싸여있는 모습이 사뭇 궁금한데 매번 게으름을 피우다 오후 늦게나 나가서 이렇게 어둑어둑해질 때에야 돌아오게 된다. 설인이 사는 곳은 집 근처에 조성된 작은 공터인데 그늘이 없고 키 작은 묘목들로 가득했던 작년 여름에 비하면 이제 나무도 제법 키가 커지고 아늑해졌다. 소탈한 놀이터 기구 두세 개와 나무벤치가 있다. 뒷모습만 보면 약간 프레데터와 콘의 조나단 데이비스가 생각난다. 다들 별로 신경 안 쓰는 분위기라고 생각했는데 2차 락다운이 시작되었다고 의외로 거리가 한산하다. 때맞춰 나타난 이들이라 왠지 좀 더 반갑다. Vilnius 129_언제나처럼 10월 이 동네의 발코니는 보통 끽연을 위해 잠시 얼굴을 내밀거나 날이 좋으면 앉아서 볕을 쏘이는 용도로 쓰이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수년간 이 건물을 지나다니며 하는 생각이란 것이 술을 잔뜩 마신 사람들이 발코니가 없다는 것을 잠시 망각하고 저 문을 무심코 열고 해장용으로 끓인 뜨거운 홍차와 함께 떨어지면 어쩌지 뭐 그런 종류이다. 평균 연식이 50년은 족히 되는 구시가의 집들 중에는 사실 저렇게 발코니를 뜯어낸 집이 많다. 보통 그런 경우 문을 열지 못하게 안쪽에서 못을 박아놓거나 문 앞에 작은 화분들을 여러 개 세워 놓거나 하는 식이지만 언젠가 한 여름 저 노란 문 한쪽이 활짝 열려있는 것을 본 기억이 있어서 왠지 누가 문을 열고 떨어질 것 같은 상상에 혼자 덜컹한다. 언제나처럼 10월이 되었다. 예상.. 오늘은 쉬는 날 오래 전 인도의 뉴델리 코넛 플레이스를 걸을때이다. 맥도날드 앞에 경비원이 보초를 서던 꽤나 번화가였는데 저울을 앞에두고 우두커니 앉아있는 깡마른 할아버지가 있었다. 집에 체중계가 없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렇게 길거리에서 체중을 잰단다. 얼마전에 '당신의 세상은 지금 몇 시'라는 이란 영화를 보았다. 그 영화 속에도 그런 할아버지가 있었다. 뉴델리에는 없었던 활활타는 장작이 그 옆에 함께였다. 지나가는 여주인공을 붙잡고 체중을 재보라고 하는데 55킬로가 나간다는 여자에게 78킬로그람이라고 우긴다. 체중계를 고치셔야겠다는 여자의 말에 할아버지가 그런다. '저울일은 이틀에 한 번 만이야. 내일은 구두를 닦을거야.' 가위와 칼을 갈던 이는 그날 무슨 다른 일을 하러 갔을까. 이곁을 지나면 만두 찜통에서 뿜어져나.. 서울의 피아노 학원 나는 서울에서는 가희 피아노 학원을 10개월, 천안에서는 리듬 피아노 학원을 2년을 다녔다. 쇼팽 피아노 학원이나 모차르트 피아노 학원이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많은 것들이 자취를 감춘 와중에 유난히 남아있는 피아노 학원들이 많아서 신기했다. 어릴때 놀았던 마당 초등학교 입학하고 4년 동안 살았던 이 집 마당을 서울에 갈 때마다 찾아가서 들여다보곤 했다. 3층에 살던 주인집 할머니는 꽃을 정말 좋아했다. 마당은 거의 항상 젖은채였다. 마당엔 장미 나무가 있어서 가시를 떼어 내어 코에 붙이고 코뿔소 놀이를 했고 물방울이 떨어져도 묻어나지 않고 서로 모이고 모여 큰 물줄기가 되어 떨어지던 잎이 넓적했던 화초를 비롯해서 마당에는 화분이 가득했다. 화초를 돌보는 할머니와는 이야기를 해본 기억이 별로 없다. 그의 며느리는 어머니가 또 화분에 물을 주시는 모양이구나 하는 시크한 표정으로 항상 말없이 계단을 올라갔다. 집으로 들어가는 어두운 복도에는 어김없이 귀뚜라미들이 뛰어다녔다. 뒤쪽으로 향하는 저 큼지막한 계단에 서있던 동생의 사진을 쥐고 창원 친척집에 놀러 가서 눈물.. Vilnius 128_동네 한 바퀴 헤집고 또 헤집고 들어가도 끝이 없는 곳. 전부 다 똑같아 보이는 와중에 항상 다른 뭔가를 숨기고 있는 곳. 그곳에 꼭 뭔가가 있지 않아도 되는 곳. 깊숙이 들어가서 몸을 비틀어 되돌아봤을 때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곳. 너와 함께 헤매는 모든 곳. 이전 1 ··· 33 34 35 36 37 38 39 ··· 11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