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휴가 (931) 썸네일형 리스트형 Russia 09_3시 25분 어떤 여행은 누군가를 추억하게 하고 누군가는 또 어떤 여행을 추억하게 한다. 아직은 그래도 많은 것이 여전하여 그 추억이 덜 먹먹하고 더 수월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시간이 지나면 변하고 잊혀지고 사라질 모든 타자와 함께 나 조차도 포함해서 미리 아낌없이 추억하는 것이다. Russia 08_회색 광장 나는 가장 이상적인 회색을 붉은 광장에서 뒷걸음질치며 모스크바의 한 귀퉁이에서 만났다. 3월의 모스크바는 세상의 모든 회색이 숨어든 공간이었다. 아니 그들은 너무나 당당히 점거했다. 오색의 바실리 성당도 크렘린도 민낯이 되었다. 뭘 봐야 좋을지 몰랐던 나에게 회색의 모스크바는 한없는 소속감을 주었다. 저 구름은 내 마음 속에서 여전히 움직이고 있다. 아주 잠시 태양이 모습을 드러냈을때조차 회색은 그를 품어주지 않았다. 리투아니아어 70_누구 그리고 무엇 Kas Kas 는 누구 그리고 무엇을 의미하는 의문대명사이다. 리투아니아어와 문법적으로 유사한 러시아어에선 이 두 단어가 개별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재밌는일이다. 전깃줄에 걸린 신발을 보자마자 튀어나오는 많은 질문들의 시작이 그랬다. 저게 뭐야. 누가 던졌을까. 누가 저기 올라갈 수 있을까까까. Kas, Kas, Kas, 줄 위를 걷다가 벗어놓고 온 신발이면 좋겠다라는 바램으로 대화는 끝이 났다. 리투아니아어 69_빛 Šviesa 오래되고 새로운 것, 초라하고 멋진 것을 상관하지 않으며 힘들이지 않고 뚫고 들어오는 것. 빛은 단 한순간도 낡은 적이 없다. Midsommar (2019) 첫 해 리투아니아를 여행했을 때 얼떨결에 경험했던 하지 축제의 강렬함을 기억한다. 북구의 백야까지는 아니었지만 10시가 넘어도 대낮 같은 세상은 생경했고 아름다웠다. 들판의 야생꽃들을 꺾어서 화관을 만들고 하루 온종일 그것을 쓰고 다니다 해가 질 때까지 기다렸다 어스름해지면 작은 초를 켜서 화관 한가운데에 놓고 강에서 흘려보낸다. 어느 해의 하지 축제때는 장작을 높게 쌓아서 태우며 돌림노래 같은 전통 민요를 부르며 강강술래를 하듯 불 주위를 도는 행렬 속에 있었다. 불은 점점 거세지고 아래에 놓인 장작들은 점점 힘을 잃고 스러진다. 그것은 일 년 중 가장 긴 시간을 지상에 남아준 태양과의 작별인사와도 같았다. 강을 따라 밤새도록 노래를 부르며 걸었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의 의미를 알 순 없었지만 가슴이 .. 독일 유로 기념주화 - 드레스덴 츠빙거 궁전 3년간 세상을 떠돌다 작년에 나에게로 굴러들어 온 독일의 2유로 동전. 빌니우스에서 독일 동전을 의외로 자주 보는데 그들과 사뭇 다른 이것은 드레스덴의 츠빙거 궁전이 새겨진 독일의 기념주화이다. 그러니 이것이 나에게 온 것은 아주 흔치 않은 여정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지난여름 현금만 받는 딸기 천막에서 몇 번을 쓸뻔하다가 딸기를 포기하며 간신히 간직했다. 이 동전이 속세에서의 여행을 마치려면 계속 쓰지 않고 나와 함께 재가 되는 것이 맞지만 난 언젠가 다시 드레스덴에 가서 이 동전을 쓸 즐거운 계획을 세웠다. 아니면 엘베강에 방생을 하고 와야 할까? 드레스덴은 도스토예프스키가 부인 안나와 함께 수년간 머물면서 아이를 낳고 소설 악령을 탄생시킨 도시이다. 드레스덴으로 가는 도중 빌니우스에도 머물렀으니 15.. 리투아니아어 68_고슴도치 Ežiukai 같은 밀가루 덩어리에서 나왔는데 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니 진시황의 병마용을 떠올리게 하는 자태인가? 하긴 눈을 감고도 매번 1 그램의 오차도 없는 쌀밥을 집어 오물조물하는 스시 장인의 초밥도 어디 모두 같은 모습이겠냐마는. 그리고는 이들 밀가루 음식의 이름대로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쁘다는 말을 최종적으로 되새겼다. 가장 평범한 밀가루 반죽을 가장 평범하게 떼어내어 치즈 강판의 뒷면에 쑥 밀면 탄생하는 리투아니아의 가장 평범한 밀가루 음식. 그리고 이렇게 평범한 음식인데 각 가정마다 다른 레시피가 존재 한다는 것이 이들 평범함들이 지닌 비범함일 것이다. 한국 24_어떤 물건 서울에서 내가 살 던 동네는 재개발을 앞두고 있어서 많은 주민들이 이미 이사를 가고 난 후였다. 그들이 버리고 간 물건들은 대부분 가져가기에는 너무 무겁고 오래 된 가구였고 그리고 의외로 밥상이 많았다. 밥상은 내가 몹시 가져오고 싶은 물건인데. 들어서 옮길 수 있는 식탁이라니. 밥상은 별로 무겁지도 않은데 왜 버리고 가는 것일까. 이전 1 ··· 36 37 38 39 40 41 42 ··· 11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