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휴가 (912) 썸네일형 리스트형 어떤 영화들 1 (하루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하루를 끝냈다고 생각하며 차 한 잔과 함께 보는 소중한 영화 한 편. 보는 중엔 영원히 기억할 것 같은데 제목도 까먹고 내용도 까먹고 결정적으로 재밌게 본 기억을 잊는 것이 서운해서 우선 짧게라도 기록하고 꼬리를 물고 떠오르는 일련의 영화들도 묶어서 기록해두기로 했다. 그러다 보면 결국은 내가 본 영화들을 다 기록해놓을 수 있지 않으려나?) 코로나로 집안에 격리된 이탈리아 사람들이 발코니에 나와서 저마다의 아리아를 열창하는 영상을 보고 오래 전의 이 영화가 떠올랐다. 평범하고 심심해보이기에는 이미 너무 유명해지고 바빠진 로마라는 도시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 어떤 이의 삶도 그렇겠지. 너무나 평범했는데 소위 그렇게 재능을 썩히고 살기에는 너무나 비범하다는 논리로 결국 아주 바.. 리투아니아어 71_자신 Save 세이브아니라 '싸베' 라고 읽어야한다. 문이란 '당기세요' 라고 써있어도 무심코 밀기 시작하는 것. 열려 있는 줄도 모르고 열쇠를 넣어 돌려 다시 잠그고 마는 것. 세번을 돌리고 돌려야 열릴 때도 있는 것. 리투아니아어에서 Į 는 4격이 붙는 방향의 전치사로 뒤따라오는 단어를 향한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저 문은 '자신을 향해' 당겨서 열면 된다. 암스테르담의 어떤 부엌 암스테르담에서 뜻하지 않게 많은 이들의 부엌을 훔쳐 보았다. 자전거가 빼곡하게 들어찬 거리에 어둠이 깔리면 많은 집들이 부엌에 은은한 조명을 켜둔 채 지나는 이들의 관음욕을 충족시키려 애썼다. 보통은 반지하거나 1층집이었다. 내가 빌니우스에서 도착해서 살기 시작한 집의 부엌은 오랜동안 누군가의 암실로 쓰여졌던지라 화학용품과 사진 자료들로 가득차 있어서 도착해서 거의 1년이 넘도록 복도에 놓인 작은 인덕션에서 음식을 해먹었다. 그런데 오븐도 부엌도 없던 시절에 이 가게에서 빨간색 르쿠르제 코코떼와 모카포트와 미니 거품기를 사가지고 돌아왔다. 코코떼는 처음부터 변함없이 그저 소금 그릇으로 사용하고 있고 이제는 아담한 부엌의 가스불 위에서 모카포트로 커피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인덕션 위에서 .. Russia 09_3시 25분 어떤 여행은 누군가를 추억하게 하고 누군가는 또 어떤 여행을 추억하게 한다. 아직은 그래도 많은 것이 여전하여 그 추억이 덜 먹먹하고 더 수월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시간이 지나면 변하고 잊혀지고 사라질 모든 타자와 함께 나 조차도 포함해서 미리 아낌없이 추억하는 것이다. Russia 08_회색 광장 나는 가장 이상적인 회색을 붉은 광장에서 뒷걸음질치며 모스크바의 한 귀퉁이에서 만났다. 3월의 모스크바는 세상의 모든 회색이 숨어든 공간이었다. 아니 그들은 너무나 당당히 점거했다. 오색의 바실리 성당도 크렘린도 민낯이 되었다. 뭘 봐야 좋을지 몰랐던 나에게 회색의 모스크바는 한없는 소속감을 주었다. 저 구름은 내 마음 속에서 여전히 움직이고 있다. 아주 잠시 태양이 모습을 드러냈을때조차 회색은 그를 품어주지 않았다. 리투아니아어 70_누구 그리고 무엇 Kas Kas 는 누구 그리고 무엇을 의미하는 의문대명사이다. 리투아니아어와 문법적으로 유사한 러시아어에선 이 두 단어가 개별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재밌는일이다. 전깃줄에 걸린 신발을 보자마자 튀어나오는 많은 질문들의 시작이 그랬다. 저게 뭐야. 누가 던졌을까. 누가 저기 올라갈 수 있을까까까. Kas, Kas, Kas, 줄 위를 걷다가 벗어놓고 온 신발이면 좋겠다라는 바램으로 대화는 끝이 났다. 리투아니아어 69_빛 Šviesa 오래되고 새로운 것, 초라하고 멋진 것을 상관하지 않으며 힘들이지 않고 뚫고 들어오는 것. 빛은 단 한순간도 낡은 적이 없다. Midsommar (2019) 첫 해 리투아니아를 여행했을 때 얼떨결에 경험했던 하지 축제의 강렬함을 기억한다. 북구의 백야까지는 아니었지만 10시가 넘어도 대낮 같은 세상은 생경했고 아름다웠다. 들판의 야생꽃들을 꺾어서 화관을 만들고 하루 온종일 그것을 쓰고 다니다 해가 질 때까지 기다렸다 어스름해지면 작은 초를 켜서 화관 한가운데에 놓고 강에서 흘려보낸다. 어느 해의 하지 축제때는 장작을 높게 쌓아서 태우며 돌림노래 같은 전통 민요를 부르며 강강술래를 하듯 불 주위를 도는 행렬 속에 있었다. 불은 점점 거세지고 아래에 놓인 장작들은 점점 힘을 잃고 스러진다. 그것은 일 년 중 가장 긴 시간을 지상에 남아준 태양과의 작별인사와도 같았다. 강을 따라 밤새도록 노래를 부르며 걸었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의 의미를 알 순 없었지만 가슴이 .. 이전 1 ··· 36 37 38 39 40 41 42 ··· 11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