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Lithuania

[리투아니아생활] 남편이 만든 피자 밥 반찬으로 먹다.






아마도 한국인들이 가장 보편적으로 먹는 배달음식은 중국음식과 치킨 그리고 피자일까? 리투아니아에도 몇해전부터 배달 대행 업체들이 생기고 많은 식당들이 배달에 가세했지만 역시 가장 인기있는 배달 음식은 피자이다. 대형 피자 체인도 게으름 피우지 않고 지점을 늘려가지만 우후죽순처럼 골목 골목 생겨난것이 피자집인데 그런 피자집들은 오히려 배달이나 테이크 아웃 위주로만 운영된다. 가장 큰 패밀리 사이즈 피자가 10유로 안팍이니 서민음식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들 배달 전문 피자집들의 피자맛에는 별로 차이가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자주 배달시켜 먹는다. 왜냐하면 배달 시켜 먹을 음식이 별로 없으니깐. 아니면 그 비슷한 맛 자체가 완전 정통한 장인의 맛으로 굳어져서 그 피자 이외의 다른 피자들은 맛이 없어진것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주말이 되면 우린 습관적으로 농담반 진담반 피자 시켜 먹을까? 라고 말하지만 대부분 그렇게 말하고는 끝난다. 게다가 몇주전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큰 피자 상자를 들고 행복한 표정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을 연속으로 맞닥뜨리고는 왠지 더 먹기 싫다는 생각을 했던 그날, 남편은 색다른 피자를 직접 만들어 보겠다고 갖은 재료를 잔뜩 사가지고 돌아왔다.








피자 도우 대신 사용하겠다고 사온 냉동 반죽. 열분산도 잘 안되는 오래된 가스 오븐인데 저렇게 얇고 예민한 페이스트리용 반죽이 과연 피자 토핑을 지탱해낼 수 있을까. 약간 걱정이 됐지만 항상 엉뚱하게 만들어서 의외로 맛있었던 경우가 많았기에 남편에게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요리 과정을 찍어 달라고 부탁했을뿐 어떻게 요리하는지는 보지 못했다. 바질 페스토를 아끼지 않고 발랐던 남편. 사실 바질 페스토 병 열고나서 바로 안먹으면 금세 상하기 때문에 저렇게라도 다 사용한다면 뭐 버리는것보단 나았을거다.








양송이 통조림과 절인 미니 양파도 깔고 올리브와 앤쵸비가 갈린 진한 토마토 소스도 조금 넣으셨다.








그리고 엄청 매운 훈제햄도 썰어 넣었다.








집에서 만들면 좋은 점은 재료를 아낌없이 쓸 수 있다는것.








오이 피클과 올리브도 깐다. 시큼하고 매운 맛에있어 둘째 가라면 서러운 온갖 재료들이 총출동했다.








비싼 파르메산 치즈 대용으로 내가 주로 쓰는 리투아니아 하드 치즈도 아낌없이 갈았다.








모짜렐라도 있고 체다 치즈도 있었는데 굳이 이 치즈를 이렇게 많이 갈아 넣었다.








와 정말 맛있게 생겼다..








아직 식지 않았을때 멋도 모르고 맛있다 맛있다 하면서 먹었던 이 피자는 정말 자극적이고 갈증을 유발하는 피자였다. 그도 그럴것이 바질 페스토에 오이 피클에 페페로니 훈제 햄에 토마토 소스에 게다가 절인 양파에 일반 치즈보다 맛이 진한 하드치즈까지. 개성이 확실한 식재료들을 아낌없이 넣었으니 말이다. 모두가 이 큰 자극적임속에서 내가 더 갑이야라 외치며 살아남으려 발버둥치는 와중에 열까지 가해져서 맛은 더 진해졌다...










그리고 역시나 냉동 반죽은 이 모든 재료들에 처절하게 항복했다. 마치 브래드 피트의 영화 <퓨리>에서 독일군에게 초토화되는 탱크 퓨리처럼. 제발 이 피자에서 애기 병사 노먼처럼 살아남을 뭔가가 있기를. 치즈가 녹을 정도로만 아주 짧게 가열했으면 최소한 이렇게 많이 타지 않았을지 모르겠다. 이 모든 망가진 피자 도우(?)를 긁어 내니 정말 거의 피자 토핑만이 남았다. 남편은 몹시 우울해했지만 어찌됐든 영원히 기억할 수 있는 맛이라고 위로해 주었다. 그리고 아마 다시 만들려고 해도 재현해 내기 쉽지 않은 맛일거다. '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보려 하는데도' 잊을 수 없는 맛이다. 와 정말 말그대로 델리 스파이 시 다. 그러고보니 델리 스파이스 1집 앨범 자켓도 스파게티였네. 스파게티와 피자는 사촌이니깐.








그래도 왠지 자꾸만 먹고 싶은 오묘한 음식이었기에 먹기 쉽게 잘랐다. 어떻게 한조각을 덥썩 다 먹었나 싶을 정도로 다시 먹으려고 하니 작은 조각도 너무나 강한 맛이다.










결국 그 다음날 아침 나는 피자를 밥과 함께 먹었다... 반찬으로 먹어도 손색이 없는 맛이었다. 삼각김밥 양념으로 들어갔으면 세븐일레븐 스테디셀러가 됐을지도 모른다. 매운햄에 양송이,올리브,양파가 다 들어 있었으니 마치 고추장을 찍어서 맨밥을 먹는 기분으로 함께 먹었는데 너무 맛있었다. 어쩌면 피자 도우가 두꺼운 시카고 피자에 어울리는 개성있는 피자 토핑일지도 모르겠다. 피자 도우용 밀가루도 샀으니 꼭 다시 한번 이 재료들을 사용해 만들어 봐야겠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