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_2017)
을지로의 이 카페는 홍콩 가기 전 홍콩 카페를 검색하다가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친구랑 남산 한옥 마을을 구경하고 커피 마실 곳을 찾다가 생각보다 충무로에서 을지로가 멀지 않아서 친구 모바일에서 길찾기를 켜고 찾아갔다. 가는 길에 자주갔던 명보 극장이 나왔고 개관작인 트루 라이즈를 보려고 긴 줄을 섰었던 을지로 3가역으로 이어지는 그 길을 쭈욱 걸었다. 명동성당에서 백병원을 지나 명보 극장으로 이어지던 길, 종각의 씨네코아에서 명동 성당으로 이어지던 길은 영화를 볼 때 빼고는 걸어 본 적이 없는 길이다. 극장을 지나쳐 커피를 마시러 간다는 생각에 기분이 묘해졌다.
이곳이 홍콩의 어딘가를 연상시킨다고 했던 블로거는 아마도 이곳에서 화양연화나 2046 같은 영화를 떠올렸을지도 모르겠다. 카페가 위치한 좁은 골목과 을지로 특유의 공업적이고 사무적인 분위기도 그랬다. 콧수염을 기른 남자의 커피콩 볶는 소리에 대한 대답으로 반대편에는 담배를 물고 있는 남자의 타자 소리가 들릴것도 같았다. 그런데 예상보다 내부는 넓었고 테이블 배치가 개방적이었다. 홍콩의 어딘가라고 했을때 난 오히려 벽에 붙은 테이블에 앉아 서로를 바라보며 밥을 먹고 차를 마시는 양조위와 장만옥, 장학우와 유가령등의 밀착된 모습을 얼핏 떠올렸던것 같다. 계절메뉴에 팥빙수와 함께 뱅쇼와 상그리아가 보였다. 이 카페가 겨울에 더 잘 어울린다는 생각은 아마 지금이 겨울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글쓴이는 여름에 이 카페를 갔던것일지도 모르겠다.
주문을 하고 한참이 지나도 내 주문이 안나오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그래서 저 주문지가 혹시 날아가면 어쩌지 좀 지켜보고 있었다.
골목이 그렇게 좁았는데도 이곳엔 바깥에 앉아 있을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좋았다. 골목 끝에서 시작되는 길에는 백반집이 있었다. 커피를 마시고 밥을 먹으러 들어갔지만 점심시간이 지나서 마땅한 반찬이 없다고 다음에 오라며 미안해 하셨다. 식당 한 가운데에는 노가리 같은것을 놓고 술을 드시는 어른들이 계셨다.
커피 한약방이라는 이름때문인지 자연스레 구스반산트의 드럭스토어 카우보이가 생각났다. 헤더 그레이엄이 약물과용으로 죽자 맷딜런이 천장에 난 뚜껑을 열고 시체를 숨기는 장면이 나오는데 카페의 화장실 가는 계단을 오르며 삐걱 소리가 들리자 별로 단단해 보이지 않는 천장이 시체를 이겨낼 수 있을까 조마조마 하며 보던 기억이 났다. 실수로 죽인 남자를 엘레베이터까지 낑낑대며 옮기는 언페이스풀의 리차드 기어도 떠올랐다. 죽은 사람의 무게도 무게지만 시체를 옮긴다는것의 긴장감이 가중되면 그 심리적 부담감은 엄청 날거야. 이 카페는 건물 일층과 맞은 편 건물 이층에 위치해 있는데 아무튼 화장실이 있는 건물 이층 공간으로 올라가면서 쭉 그런 생각을 하고 문을 열었을때 확실히 현실감이 떨어지는 카페의 첫인상이 있었다. 좋게 말하면 영화적이고 아니면 많이 인위적인 느낌이었다.
친구가 마신 아메리카노는 마치 검은 융단이 깔린 소파 같았다. 커피의 맛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화장실에서 음악이 흐르고 있었는데 초콜릿색 휴지통 때문인지 비오는 날의 수채화 노래가 생각났다. 방금 전 떠나온 홍콩의 기억들과 여러가지 기억들이 뒤섞여 비현실적인 느낌에 사로잡혀있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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