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907) 썸네일형 리스트형 Beyond the hills (2012) 제목이 비슷해서 더 그랬겠지만 빛이 바랜 사진 느낌의 포스터에서 오래전 영화 비포 더 레인을 회상하며 보기 시작했다. 멀리 펼쳐진 언덕을 뒤로하고 또 다른 언덕 어딘가로 급히 오르고 있는 짐가방을 든 두 여자의 느낌도 좋았다. 언덕 너머에 뭐가 있을까. 뭐가 있을 거라고 기대에 부풀어서 오르는 언덕은 아니길 바랬다. 저런 목가적인 풍경은 역설적으로 누군가의 불행을 도드라지게 했고 세상은 또 나 몰라라 하고 그들에게 등을 돌리곤 했다. 부디 이들에게는 너무 가혹하지 않기를. 비포 더 레인에 마케도니아의 어느 높은 절벽에 홀연히 위치한 정교회가 등장했다면 이 영화는 루마니아의 궁벽한 정교 수도원이 배경이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이들 나라들은 이어지고 또 이어져서 어디가 시작인지도 모를 그런 산과 평원, 가까운.. 커피와 메도브닉 얼마 간 집 밖을 나가지 않았다. 케익을 배달해 주는 곳에 있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냥 케익 한 조각을 예쁘게 잘 포장해서 배달해주는 곳이 있다면. 당연히 그런 곳은 없다. 생수와 양파 감자등 무거운 것을 집으로 주문하는김에 찾아봤더니 몇 종류의 매우 짐작가능한 맛의 저렴한 케익과 파이들이 보였다. 이 메도브닉도 그 중 하나였다. Can you ever forgive me (2018) 많은 좋은 영화들을 보지만 저 영화 속 주인공 같은 친구가 나에게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영화들은 그리 많지 않다. 이 영화를 보고 스쿨 오브 락의 잭 블랙이나 천국보다 낯선의 에바, 칼리토 같은 내가 두고두고 애정을 쏟을 수 있는 영화 캐릭터가 하나 더 생긴 것 같아 너무나 행복했다. 누군가가 생각나면 그의 사진을 꺼내보는 것처럼 어떤 영화를 두 번 세 번 보게 된다면 그것은 결국 내 마음을 뺏어간 인물의 습관, 그의 유머, 말투, 그의 생활공간들에 대한 추억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허구의 인물에 어떤 추억을 가질 수 있다는 것, 나에겐 그것이 영화를 보는 가장 큰 매력이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매일의 일상으로 채워진 우리의 삶 자체가 내일이라는 명백한 허구를 향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 워킹데드 시즌 10을 보다가 잡담 특정 드라마들을 수년에 걸쳐서 보긴 하지만 드라마 공식 페이지를 들락거리며 제작과정의 일거수일투족을 알고 살피고 그러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몇 시즌을 이끌어가던 주연급 배우들이 뚱딴지 같이 갑자기 사라져서 나오지 않고 그래도 왜 그런지 알 수가 없다. 검색 한 번 이면 알게 될 이야기들이겠지만 육아휴직 갔나?라는 식으로 웃고 넘어갈 뿐 사실 그다지 궁금하지가 않다. '뭐지? 왜 이러는 거야 이 드라마' 하는 물음표를 안고 영향력 있는 주연들의 공백을 메우려 급히 수혈된 또 다른 주연급 배우들의 역할에 그저 이끌려 가며 어떤 식으로든 기사회생하려고 애쓰는 드라마의 생존 방식을 지켜보는 것이 스토리 자체에서 얻는 즐거움보다 더 큰 것인지도 모르겠다. 근데 이 드라마는 무슨 나루토나 원피스 같은 일본 만화영.. 바르보라의 디저트 리투아니아의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불리우는 역사 속 인물이 있다. 지그문트 아우구스트라는 대공주와 그의 두번째 부인 바르보라 라드빌라이테이다. 라드빌라이티스 가문은 우리나라로 치면 파평 윤씨나 풍산 홍씨처럼 그 여식을 왕궁에 들인 권세 가문이었다. 바르보라는 아우구스트와의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의 비밀 연애를 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두번째 부인이 되지만 병으로 서른을 갓 넘긴 나이에 죽는다. 그 죽음이 며느리를 싫어했던 이탈리아 혈통의 시어머니의 음모라는 설도 있지만 어쨌든 그 둘 사이에는 아이가 없었고 그로 인해 대가 끊긴 리투아니아에는 마치 상속자가 없는 거대한 기업에 외부 인사가 수장으로 임명되듯 다양한 유럽 출신의 귀족들을 데려와 왕으로 앉히는 연합국 시대가 열린다. 구시가의 가장 드라마틱한 거리 .. Marriage story (2019) 누구나 이 영화를 보면 이것이 노아 바움백의 자전적인 이야기일 것이라 생각할 거다. 공식적으로 감독 본인이 그렇게 이야기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국은 제니퍼 제이슨 리라는 걸출한 배우와의 결혼과 이혼이 극중 연극 연출가인 아담 드라이버와 배우인 스칼렛 요한슨의 결혼 생활과 이혼 공방에 투영 되었으리라 넘겨짚게 된다. 사진 상으로는 잘 보이지 않지만 저 장면에서 스칼렛 요한슨의 빰엔 아마 눈물이 흘러 내렸다. 왜 날 사랑하지 않느냐며 펑펑 우는 수동적인 눈물이 아니라 계속 작아지고 작아져서 이대로 매몰될 수는 없다는 독립된 자아의 능동적인 눈물이다. 그래서 그녀의 눈은 한편으로는 이글거린다. 짧게 자른 머리, 무채색의 얼굴, 손목에 찬 시계, 시종일관 남성적인 패턴의 셔츠와 바지를 입고 나오는 그녀는 남편을 .. 기생충 (2019) 이 영화도 거의 3시간 가까이나 돼서 더럭 겁이 났지만 너무나 재밌다는 가장 강력한 스포일러를 지닌 채 기대를 너무 많이 하면 실망할까 봐 최대한 자중했던 그 노력이 불필요했다 느낄 만큼 좋은 영화이기를 기대하면서 보았다. 이것은 확실히 너무나 잘 만든 영화임이 분명하지만 사실 영화를 보고 난 후에도 봉준호 최고 영화가 마더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아마 괴물을 기점으로 더없이 확장된 봉준호 영화의 스케일과 누구라도 공감할만한 사회 비판적 메시지, 냉소적 유머를 가미한 스토리텔링으로 무장한 그의 영화가 이제는 내 개인적 추억과 애정을 가지고 대하기엔 너무 거대하게 느껴져서이기도 하겠지만 인공적인 웃음을 뺀 마더 특유의 일관된 긴장감과 분위기가 결국 그의 연출에 있어서는 가장 오리지널 했다고 느끼기 때문.. 오래된 집 어떤 러시아 소설들 속의 집. 층계참에 난 현관문을 통한 복도들이 있고 그 복도를 지나면서 이웃들의 모습을 훔쳐볼 수 있고 필요하다면 문이 열린 그 복도로 들어서서 재빨리 몸을 숨길수도 있을것이다. 커피를 가져다주는 하녀가 딸린 임대료 몇 루블의 어떤 집들. 누군가는 새로 산 외투를 부여잡고 행복감에 젖기도 했고 몇 푼 안되는 집세를 못내서 경찰과 함께 주인이 들이닥치기도 했던 그런 집들. 그런 장면들을 떠올리게끔 하는 주택들이 빌니우스에도 많이 남아있다. 어두운 계단의 초입에 길쭉하고 투박한 철제 우편함이 쪼르륵 붙어있고 두가지 색으로 이등분해서 칠해진 건물 내부 바닥에는 군데 군데 벗겨진 페인트칠이 나뒹군다. 나무 바닥은 여지없이 삐걱거린다. 타다만 장작 냄새, 벽난로에 걸쳐져서 마르기를 기다리고 있.. 이전 1 ··· 40 41 42 43 44 45 46 ··· 11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