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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아니아의 늪(Pelkė)과 미국의 장갑차(Šarvuotis) 빌니우스에서 47.5km 정도 떨어진 곳에 파브라데(Pabradė)라는 도시가 있다. 벨라루스 국경까지 10km 떨어진 이 도시에는 리투아니아의 군사 훈련장이 있다. 칼리닌그라드의 국경도시 키바르타이(Kyvartai)와 함께 군사적으로 중요한 도시이다. 지난 수요일 이 파브라데의 늪지대에 70톤 규모의 미국 장갑차가 빠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미군 4명도 함께 실종됐다. 리투아니아에는 1000명 가량의 미군 병력이 순환 주둔한다. 이런 장갑차는 전투에 나가는 기갑장비들이 어딘가에 빠지거나 파괴됐을 때 끌어내거나 작동에 문제가 생겨 고쳐야 할 때 투입되는 장비이고 사라진 M88 Hercules는 미군이 보유하고 있는 가장 큰 장갑차 회수 차량이라는데 이런 장갑차 자체가 늪에 빠져버렸다는 것이 한편으론 아이러..
라 코치나 (La Cocina, 2024) 노천 테이블들이 놓이는 여름 시즌, 빌니우스 구시가를 걷다 보면 식당에서 흘러나오는 특유의 기름 냄새가 있다. 튀김기에서 갓 건져진 냉동 너겟, 오징어링, 버펄로 윙, 감자튀김 같은 것들이 기름을 떨쳐내며 퍼뜨리는 냄새, 햄버거에도 스테이크에도 아동 메뉴에도 립에도 어디에도 곁들이는 것들, 어떤 인종도 어떤 성격의 손님도 전부 만족시킬 수 있을 것 같은 평균적이고 광범위한 메뉴, 고급 레스토랑과 비교하면 더없이 저렴하지만 패스트푸드나 일반 식당보다 월등이 맛있지도 않으면서 결코 싸지 않은 가격의 음식들, 분주하게 걸어 다니는 능숙한 서빙 스탭들로 가득한 그런 식당들이 있다. 영화는 뉴욕 타임 스퀘어 근처에 위치한 딱 그런 분위기의 거대한 레스토랑이 배경이다. 주고객은 뉴욕을 방문하는 관광객들,..
회색, 스톤헨지,거인들의 어깨 'Sunday morning call'이라고 일요일이면 간혹 생각나는 오아시스의 노래가 있다. 이 노래가 속해있는 앨범 제목이 'Standing on the shoulder of Giants'인데 예전에 시디에 들어있던 부클릿에는 그 거인이 선배 영국 뮤지션들을 뜻한다고 쓰여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그렇게 앨범 제목이 떠오르면서 비가 내리던 추운 여름날, 회색 하늘 아래 서있던 스톤헨지가 생각난다. 몰타 거석신전들에 대해 알아보다가 이런 거석 기념물들을 보통 Free-standing structures라고 부른다는 걸 알게 됐다. 너무 멋있는 조합의 단어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우리 역시 그런 구조물 중의 하나라서 스톤헨지와도 몰타의 신전들과도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The Price of milk (2000) 나의 완소( 牛 )영화들의 시조새라고 할 수 있는 The Price of milk... 백 마리가 넘는 소를 키우는 뉴질랜드 커플 이야기이다. 등장하는 소의 규모만 놓고 보면 독보적이지만 모든 소영화에서 그렇듯 그들은 조연일 뿐. 반지의 제왕에서 엘프 스미스 요원의 말을 안 듣고 반지를 버리지 않아서 모두를 곤경에 빠뜨리고 사라지는 이실두르가 만든 영화이다. 우리나라에선 이란 제목으로 나왔는데.. 퀼트 이불을 도난당하는게 중요한 사건인 건 맞지만.. 차라리 그냥 투박하게 이나 라고 했으면 뭔가 이나 같은 느낌이 들어서 더 좋았지 않았으려나. 장면 몇 개가 필요해서 원제로 검색을 했더니 쓸만한 영화 스틸 컷은 없고 정말 너무 우유 가격에 관한 보도자료들만 난무해서 결국 오래전 중국에서 사 온 ..
독일 5센트 동전 - 독일 동전 속 참나무 가지, 히틀러의 참나무 유로 동전을 볼 때마다 세상에 과연 영원한 것이 있을까 생각한다. 체제, 민족. 국경. 나라처럼 일견 굳건해 보이는 것들도 언제든 완전히 흔적없이 사라질 수 있을 것 같고 그것에 얽힌 개인의 삶이 공중에 붕 뜨는 것에 대해선 말할 것도 없다. 세계 지도는 지금도 계속 변화중이고 어떤 나라의 유로 동전은 구경도 해보기 전에 사라질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평균 직경 20밀리의 쇳조각 안에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뭔가를 고심 끝에 새겨 넣는다. 그래서 흘끔 거리게 된다. 어떤것이 세상의 중심에서 강렬하게 존재할때 보다는 그 중심에서 벗어나서도 두고두고 기억되는 동안의 생명력을 좀 더 지지하게된다. 핀란드 2유로 동전을 포함해서 식물 도안의 유로 동전들이 몇 종류있다. 특히 이 여섯 종류의 오스트리아동전과 독..
Rams (2015) - 아이슬란드의 양(羊)영화 1960대 이란의 소(牛)영화(https://ashland.tistory.com/559010)를 보다가 생각난 것은 21세기 아이슬란드의 양(羊) 영화... 영화 에는 자신이 소가 되었다고 믿는 남자를 이웃남자들이 소몰이하듯 끌어내서 진흙탕이 된 언덕을 오르게 하는 장면이 있다. 그리고 아이슬란드인 형제가 한밤중에 양들을 끌고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언덕을 오르는 장면은 분명 이란 영화에 대한 아이슬란드 감독의 오마쥬라는 망상을 가지고 오래전에 재밌게 봤던 아이슬란드 양(羊) 영화를 복기해 보았다. 건조하고 황폐한 중동의 이란과 척박하고 매몰찬 아이슬란드 사이엔 아무런 공통점이 없는 듯 보인다. 하지만 이란인과 아이슬란드인이 중간지점인 헝가리즈음에서 만나 너른 목초지에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소와 양을 풀어놓..
Egypt 14_룩소르행 펠루카는 만선 얼마 전에 생각지 못한 기회로 이라는 한국 연극을 온라인으로 보았다. 극장에서 마지막으로 본 한국 연극이 아마 박광정과 권해효 배우가 나왔던 였으니 거의 20년 만에 본 한국 연극이다. 노트북 화면에 대사를 하는 배우들이 클로즈업되는 게 가장 신기했다. 실제 극장에서 연극을 보게 되면 누가 대사를 하는지와는 상관없이 내가 보기를 원하는 '연기중'이지만 대사 없는 배우들을 훔쳐보며 그들의 시점에서 다른 배우들의 대사들을 느끼는 묘미가 있는데 갑자기 화면 속에서 사라지는 배우들이 있어서 좀 당혹스럽긴 했다. 화면을 최대한 클로즈업해서 그냥 무대를 풀샷으로 보여주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은 아들 셋을 바다에서 잃고 딸도 밀린 배삯대신 팔려갈 위기에 처했지만 대담하게 다시 배를 빌려 바다로 나아가는 어부 ..
Egypt 13_생각나지 않는 대답 '오늘 소 물을 먹이는데 글쎄 저기 언덕 위에서 도적놈 3명이 내 소를 한참을 훔쳐보더라구''말도 마, 그 놈들이 얼마전에 내 양 세 마리를 훔쳐갔다고'얼마 전에 본 이란 영화 속에서 마을 사람들이 찻집에 모여 저마다의 걱정거리를 얘기할때. 내 시선은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의 대화들로 가득했던 과거의 어떤 장소들로 고스란히 옮겨갔다. 올드 카이로 시장통의 찻집, 지중해를 품은 알렉산드리아의 노천카페, 물담배 뽀글거리는 소리가 연기와 함께 피어오르던 사막 도시 시와의 찻집으로. 시와의 찻집에는 피타빵을 손으로 주무르는 사람, 사막 투어에 합류하겠냐고 말을 거는 사람, 어느 나른한 오후 두 사람 사이에 오가던 피 튀기는 설전, 손안에 든 패에 집중하면서도 중간중간 추임새를 넣으며 말싸움에 참견하던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