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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아니아어 133_파인애플 Ananasas 얼마 전에 빌니우스의 외국인 커뮤니티에 재밌는 글이 올라왔다. 유럽의 그토록 많은 언어에서 파인애플을 Ananas라고 하는데 이미 -as로 끝나는 이 친절한 외래어에 리투아니아어는 굳이 왜 또 남성어미인 -as를 붙이냐는 뉘앙스의 글이었다. 그의 고충을 이해한다. 그는 아마도 자신의 이름이 가령 제임사스 스카르스가르다스 - 구텐베르가스처럼 불리는 것에 큰 염증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아나나스'라고 해도 다 알아들을 파인애플이 '아나나사스'가 되는것은 격변화를 위해선 사실 불가피한 일이다. 파인애플 쥬스 Ananasų sultys 라는 단어를 예로 들면, 남성 어미 -as를 붙이지 않고 외래어인 ananas에서 변형을 하면 s가 무참히 떨어져나가면서 Ananų sultys가 된다. 아나나수 대신 아나누가..
나이트비치 (Nightbitch) 2024 - 어떤 엄마 이야기 https://ashland.tistory.com/m/870 와 https://ashland.tistory.com/882 를 만든 마리엘 헬러의 신작 를 보았다. 전작의 캐릭터들이 좋았기 때문에 은근한 맑눈광 에이미 아담스에게도 감독이 드디어 인생 캐릭터를 만들어주려나 조금 기대하며 보았다. 에이미 아담스는 엄마로 나온다. 극 중 이름은 따로 없다. 에이미아담스의 아이는 너무 어리고 귀엽지만 엄마는 잠도 직업도 자기 시간도 남편도 몽땅 빼앗긴다. 엄마는 매일 아침 냉동 해시 포테이토를 튀기며 내일이면 또 오고 마는 어제와 똑같은 오늘의 아침을 시작한다. 동네 문화센터에도 열심히 가고 공원에서도 잘 놀아주고 온 사방에 물감을 묻히는 물감 놀이도 열심히 해주고 아이가 잠을 죽어라 자지 않아도 절대 버럭..
안도라 20센트 동전 - 유럽의 또 다른 소국 안도라(Andorra), 유럽 소국 경기 대회, 안도라의 로마네스크 성당들. 산마리노에 대해 알아가던 5월, 몇 문장 속에 등장했던 안도라(Andorra)라는 곳에 잠시 한눈을 팔았을 때 공교롭게도 그 시기에 안도라에서는 재밌는 스포츠 행사가 진행 중이었다. 바로 유럽에서 2년마다 열리는 유럽 소국 경기 대회 (Games of the Small states of Europe)가 지난 5월 26일부터 5월 31일까지 안도라에서 열린 것인데 이 유럽의 미니 올림픽은 1984년에 유럽의 대표적인 소국들인 안도라, 키프로스, 아이슬란드, 리히텐슈타인, 룩셈부르크, 몰타, 모나코, 산마리노의 올림픽 위원회가 대회 창설에 합의하면서 시작됐다. 2025년 유럽 소국 경기 대회에서는 9개국의 800명 남짓한 선수들이 총 12개의 종목 160개의 경기에 참가해서 승부를 겨뤘다. 육상,농구,사..
핑크수프의 계절, 리투아니아의 여름. 세탁한 겨울 코트를 다시 꺼내 입어야 하나 고민했던 추운 5월이 지나갔다. 바깥 기온이 낮으면 옷을 두껍게 입으면 그만이지만 난방이 끝난 상태에서 실내온도가 계속 떨어지면 별 방법이 없다. 그런 시기엔 집을 나서기 전 옷을 다 챙겨 입고 잠시 집안에 있을 때 그렇게 아늑할 수가 없다. 어쩌면 리투아니아에서 봄코트는 봄에 '집에서' 입는 코트라는 의미였는지도. 그래도 4월의 어느 일주일은 제법 봄 같았다. 갑자기 따뜻해진 날씨에 벚꽃과 자두꽃, 개나리가 아주 짧은 시간동안 피고 졌다. 뒤이어 라일락이 폈고 조팝나무, 밤나무가 차례로 꽃을 피운다. 그리고 밤나무는 이제 초록이 되었다. 리투아니아의 봄과 가을은 아주 짧다. 봄이 과연 오긴 하는걸까 생각하다 보면 보통 6월이 된다. 하지만 리투아니아에서는 또..
산마리노 50센트 동전 - 이탈리아 속의 작은 나라, 산마리노(San marino), 티타노 산과 세개의 탑 그리고 성 마리누스. 가진 게 너무 많은 이탈리아에게 유로 동전이 8개뿐이라는 건 너무나 잔혹하다. 그래서 2년 전 이 동전을 거슬러 받았을 때엔 당연히 이탈리아가 발행한 기념주화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은 이탈리아 속에 자리 잡은 내륙국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공화국, 산마리노(San marino)의 동전이다. 유로존 20개국을 제외하고도 유로를 쓰는 곳이 몇 군데 더 있으니 바로 모나코, 바티칸, 안도라, 몬테네그로, 코소보, 산마리노이다. 모나코, 바티칸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낯설고 산레모(San remo), 산지미냐노(San gimignano)와 같은 비슷한 명칭의 이탈리아 도시들과 유사한 인상을 풍기지만 산마리노는 도시가 아닌 엄연한 주권 국가이다. 그렇다면 산마리노는 어떤 풍경의 나라일까. 잘 익은 산마르자노..
스페인 5센트 동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 성 야고보와 산티아고. 나에게는 건축이란 단어를 읊조리는 순간 함께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있다. 수십 년 전의 폭우에 속수무책으로 씻겨 내려가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이집트 사막 도시의 진흙집들, 시작조차 하지 않은 듯 보이지만 '완성되지 않은'이라는 그럴듯한 명칭을 달고 관광객을 끌어모으던 룩소르 오벨리스크의 영악한 주초이다. 없어질 수도 있었지만 기어코 살아남은 존재들, 무언가가 여전히 남아있다면 그것은 그 자체의 운이자 타자가 부여한 숙명이 뒤섞인 결과이다. 무너진 뒤에도, 다시 세워진 뒤에도, 완전히 사라진 뒤에도 건축물들은 어떻게 기능할 것인지에 대한 판단을 늘 후세의 몫으로 남겨둔다. 그래서 건축은 영리한 예술품이다. 건축물이 새겨진 동전들은 늘 내 시선을 가장 확실하게 끌어당긴다. 단지 유명해서 성스러워서 아름다..
오스트리아 1센트 동전-알프스의 야생화, 보라빛 겐티아나, 용담으로 빚은 약주들 5월 1일부터 리투아니아에서는 1센트와 2센트 동전을 더 이상 거슬러주지 않는다. 지불 총액이 0이나 5로 끝나도록 반올림하는 방식으로 점차적으로 1센트 2센트 동전 사용을 줄이는 것이다. 내야 할 돈이 1.12유로라면 버림해서 1.1유로가 되고, 2.78유로가 나오면 올림 해서 2.8유로를 내게 된다. 카드 결제를 하는 경우에는 별도의 조정 없이 결제한다. 때에 따라서 현금 결제로 일말의 센트를 절약할 수 있는 듯 보이지만 기본적으로 저런 금액이 나오지 않도록 물건 가격들이 조정이 되고 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생활 물가는 오른다. 그렇다고 소액 동전을 아예 사용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집에 1센트가 신라 고분처럼 쌓여있어서 어찌할 방법을 모르겠다면 1센트를 왕창 들고 다니면서 100개를 모아 1유로를..
Sons (2024) 영화 포스터에 혹해서 보게 된 덴마크 영화 . 이 영화의 포스터 구성이 묘하게 영국 드라마 과 비슷하다. 그리고 13살 소년 제이미의 미래를 그려보는 순간 속 미켈의 모습이 겹쳐지며 조금 암담했다. 포스터만 봐도 두 작품 속의 긴장감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포커싱 된 표정과 흐릿한 표정을 보며 가해자와 피해자의 가족들이 직면하는 각기 다른 고통에 대해 생각해 본다. 영화는 교도관으로 일하고 있는 덴마크 여성 에바(Sidse Badett Knudsen)의 이야기이다. 에바의 직장에는 둔중한 감방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 식판이 놓이고 수거되는 소리, 수갑이 채워지고 풀리는 강제적이고 일방적인 소리만이 가득하다. 모든 것이 매뉴얼대로 오고 간다. 따스한 대화도 가벼운 농담도 존재하지 않는다. 설사 있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