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간 극장. 이 빌니우스의 토종 극장에선 거의 7년전에 레오 까락스의 소년, 소녀를 만나다를 봤었다. 이날은 이타미 주조의 회고전에서 탐포포를 보았다. 일정 기간마다 기억해서 꺼내보는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본다는 것, 극장에선 볼 기회가 전혀 없었던 좋아하는 옛날 영화를 다시 극장에서 접한다는 것은 독특한 즐거움이다. 모든것이 지나가고 또 지나가는 가운데 아직 남았다면 그것이 모든 영역의 클래식이다.
탐포포가 라멘 육수를 끓이다 좌절하며 거대한 육수냄비를 뒤엎는 장면의 그 열기는 끈적했던 8월의 어느날 관객으로 꽉 찬 냉방이 되지 않는 극장 속으로 여과없이 뿜어져나오며 예상치 못한 고통을 유발했다. 늘 따끈한 라멘을 먹고 싶다는 욕구를 부추겼던 이 귀여운 영화가 빌니우스에서도 찜통 열기를 떠올릴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준것이다. 지난 여름, 그 후로도 몇번 탐포포는 후덥지근하고 환기가 되지 않는 순간들을 일컫는 우리들의 공통의 언어가 되었다.
영화 시작전 스크린에 극장의 상영작들이 한컷씩 전부 지나갔다. 극장에서 보기엔 아까워서 집에서 청개구리처럼 본 대형 신작들 포스터가 지나가고 이렌느 야곱이 풍선껌을 부는 레드의 한 장면이 화면에 잡혔다. 나중에 이것도 보러 와야되나 했는데 상영작은 아니었고 극장측의 공손한 부탁의 말씀이 적힌 화면이었다. 돌아와서 나는 레드를 다시 찾아 보았다. 청초한 이렌느 야곱의 얼굴엔 오드리 토투와 클레어 데인스의 얼굴이 혼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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