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물건을 가지지 않는 대신 자신의 이야기를 지닌 내 마음에 드는 그런 물건들만 가지고 싶다.
어릴적에 엄마한테 나중에 크면 숟가락 젓가락에 그릇 몇개만 가지고 단촐하게 살겠다고 말하곤 했는데
줄곧 돌아오던 대답은 살다보면 그게 그렇게 안된다는 것.
나도 살림을 하다보니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물건의 갯수가 늘어나지 않도록 나름 통제중이다.
<천국보다 낯선>과 <중경삼림>속의 작고도 적막한 부엌에서 혼자 밥을 먹는 주인공들을 동경하곤 했는데
요새도 조그마한 접시에 식판처럼 음식을 담아 먹으며 티비디너를 먹던 윌리를 떠올리곤 한다.
이들은 베르겐의 골동품 가게에서 발견한 커피 잔 세트인데
자물쇠로 잠겨 있던 가게 앞에서 좀 서성거리자 어디서 불쑥 나타났는지 주인인듯 보이는 남자가 문을 열어줬다.
한바퀴 휙 둘러보고 나가려는데 한 눈에 들어온 이 커피 잔 세트.
어딜가든 습관적으로 세상에 하나뿐인 듯 보이는 커피잔을 찾는 나는 하지만 6년 동안 하나도 발견하지 못한 나는
'분명 비쌀거야. 하지만 200크론이 넘지 않으면 사자' 하고 나름 가격의 마지노선을 정하고 물었다.
참고로 서브웨이 샌드위치가 60 크론이었고 60크론이면 한국돈으로 대략 만원.
왕복 공항버스가 일인당 160크론. 대략 28000원
미듐 사이즈의 동네 피자가 191크론이니 33000원 정도의 물가이다.
주인은 세트이지만 커피 잔 두개에 접시가 하나 모자르니 그냥 75크론씩해서 150크론을 불렀는데
수상쩍게도 시간이 없다며 안절부절못해하며 흥정을 하려 들지 않았다.
반대쪽 가게에 비싼 노트북을 켜놓고 문을 열어 놓고 와서 빨리 가봐야 한다며 살려면 사고 말려면 말란다.
200크론 정도면 사겠다고 생각했지만 주인이 150크론을 부르니 간사하게 100크론을 불러보고 결국은 120크론에 샀다.
급해서 영수증은 못준다고 서두르면서도 신문지에 돌돌 말아 싸주던 이 남자는 누구였을까.
그 남자는 아마 손님이 오면 봐달라고 주인이 열쇠를 맡긴 그냥 동네 총각이 아니었을까.
생각보다 가격이 싸서 쾌재를 불렀지만 골동품 가게 특성상 싸구려 쓰레기 같은 물건도 말도 안되는 가격을 부르기 마련인데
이 남자는 그냥 구경하고 나갈거라고 생각한 돈 없어 보이는 여행객이 갑자기 가격을 물어오니
당황해서 그냥 아무 가격이나 부른게 아닐까. 하고 또 시나리오를 써본다.
커피에 어울리는 케잌이나 크로와상 같은것을 얹어야 할지 모르는 이 접시에 나는 가능한한 모든 음식을 얹어 먹는다.
그리고 이것은 여행을 끝내고 돌아와서 아침에 만들어 마신 라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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