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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ule (2018) 미나리를 보고 할머니 할아버지와 손자 손녀에 관한 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이 영화가 떠올라서 웃겼다. 농장일을 시작하는 제이콥(스티븐 연)에게서 원예 일에 미쳐 한평생을 보낸 할아버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얼굴이 겹쳐졌다. 정작 할아버지의 젊은 시절도 제이콥의 노년도 본 적이 없지만 말이다. 그 둘의 삶은 전혀 달랐기를 바라지만. 아흔의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손녀딸에게는 한없이 친절하고 달콤한 할아버지이지만 딸과 아내와는 사이가 안 좋다. 원예 관련 시상식에 상을 타러 가느라 딸의 결혼식에도 가지 못했고 그렇게 결정적인 순간에 항상 일을 택하고 가족을 등한시한 결과 그에게 남은 것은 그나마 살가운 손녀딸과 한 줌의 잡초 덩어리. 그렇게 무료하고 외로운 노년을 보내던 그는 트럭으로 물건을 옮겨보지 않겠냐는 제안..
미나리 (2020) 콩나물이 나왔으니 미나리. 콩나물 다듬는 주인집 아줌마 (ashland.tistory.com/1015), 할아버지가 좋아했던 콩나물 사러 가는 아이(https://ashland.tistory.com/1016), 그리고 딸 보러 미국에 와서 미나리 키우는 할머니. 콩나물 무침에 미나리며 쑥갓이 들어간 전골이 보글보글 끓는 밥상에 이들이 빙 둘러앉아 수다 떨며 저녁 먹는 모습을 상상해도 별로 낯설지 않다. 결국 사람 사는 이야기가 곧 드라마일진대 크게 억지 쓰지 않고 양념 치지 않고 잔잔하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저예산 영화 특유의 방식들로 서로 모두 닮은 구석이 있다. 잘 먹고 잘 살기 그리고 최종적으로 잘 죽기. 그러기 위해서 인생은 많은 선택과 결정을 요구한다. 그냥 이대로 살아도 되지만 왠지 그러기엔 아..
콩나물 (2013) 이 영화는 꽤 오래 전 영화이고 짧은 단편 영화이며 아마 가장 짧고 경쾌하지만 먹먹한 로드무비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서울 풍경을 지닌 영화들을 떠올리다 생각나서 짧게 나마 기록해둔다. 그런데 이 싱그러운 여름 날의 영화는 할아버지 제삿상에 빠진 콩나물을 사러 간 아이가 과연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 걱정 어린 시선을 거둘 수 없게 하며 의외의 긴장감과 초조함을 선사한다. 어떤 관객은 콩나물을 향한 어린 소녀의 여정을 있는 그대로 즐겼을지도 모른다. 목적이 확실한 여행이 있고 불분명한 여행이 있다. 이 여행도 저 여행도 쉽지 않다. 전자는 좀 더 빨리 효과적으로 잘 가야한다는 생각에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고 후자는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모호함에 힘들다. 하지만 어떤 여행에든 위험이 따르고 ..
찬실이는 복도 많지 (2019) 신기한 제목의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굉장히 보고 싶은 영화였는데 운 좋게 뒷북을 친다. 서울의 풍경을 보여주는 영화가 좋다. 서울을 여행하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떠나온 이후로 더 그랬기도 했겠지만 무엇보다 내가 태어나서 자랐던 동네가 재개발로 가루가 되어버린 모습을 보고 나니 비슷한 풍경과 정취를 품고 있는 영화 속 어떤 동네들도 언젠가 사라져 버릴 운명일까 싶어 아쉬운 마음에 더 몰입하여 보게 된다. 무엇보다 찬실이가 힘차게 오르고 있는 저 햇살 가득한 오르막길의 끝과 그곳에서 바라본 도시의 모습이 궁금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항상 짝을 이뤄 일하던 영화 감독이 갑자기 죽어버리고 졸지에 백수가 된 프로듀서 찬실이. 찬실이는 영화를 좋아하고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하고 그것만이 자신이 할 수 ..
겨울의 에스프레소 토닉 열심히 분쇄한 원두로 에스프레소 한 잔을 추출하여 얼음도 채우지 않은 미지근한 토닉에 부어 마시는 느리고 시큰둥한 에스프레소 토닉.
명절의 커피 이것을 커피와 먹으면 얼마나 맛있을까 상상하며 열심히 요리하는 와중에 홀짝이는 커피는 정말 그 음식과 함께 먹는 커피만큼 맛있다. 어쩌면 더 맛있는지도 모르겠다. 뒤늦게 회상하는 크리스마스, 호떡 반죽이랑 너무 비슷해서 몇개는 설탕을 넣어야겠다 생각하다 무심코 반죽을 다 써버린 빵.
Vilnius 141_1월은 라디에이터 온도가 한없이 높아져서 손을 오래 대고 있으면 데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밖을 걷다 보면 속눈썹에 얼음 결정이 맺혀 깜빡깜빡할 때마다 내가 오늘 세수를 안 해서 아직 눈곱이 붙어 있나 뭐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이런 강추위도 한여름 무더위도 길게 지속되지는 않는다. 모든 것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다. 텅 빈 거리에서 이쪽과 저쪽 길 중 어느쪽으로 갈까 한참 고민했다. 어느 거리의 빵집에 들러서 빵을 사가야 조금 덜 춥게 빨리 갈 수 있을까 고민했기 때문이다. 몇 달 간 고향에 내려가 있던 친구가 다시 빌니우스에 돌아와서 장기 임대할 집을 찾는 동안 짧게 머물게 될 집에 놀러 갔다 왔다. 원래는 여행자들이 머무르는 에어비앤비 숙소인데 지금은 현지인들이 살고 있다고한다. 창 밖 오른..
Vilnius 140_12월13일 새들도 트리 장식하느라 분주한 모양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