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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ssia 07_부산의 뻬쩨르부르그 부산역에서 내려서 남포동까지 걸어가는길에 뻬쩨르부르그라는 이름의 러시아 어학원이 있었다. 어학원 간판이라고 하기엔 너무 예뻐서 찍으려고 했지만 짐도 있고 비가 너무 내려 사진을 찍을 수 없어 아쉬웠는데 남포동 근처에 다와서 횡당보도 건너편에 또 다른 뻬쩨르부르그가 보였다.
서울 04_동대문 (Seoul_2016) 동대문 역에 자주 내렸지만 보통은 대학로나 명동 충무로역이 있는 지하철 4호선으로 갈아타기 위해서였다. 동대문 역에 내려 바깥으로 빠져나와서 주로 갔던 곳이라면 청계천 고가 도로 아래의 비디오 가게들이었다. 어릴적 티비에서 방영되던 방화 속의 가난한 남자 주인공이 청자켓을 어깨에 걸치고 길거리의 돌멩이를 발로 차며 터벅터벅 걸어나올것 같은 분위기의 거리에서 고무줄만 파는 가게, 타월만 파는 가게들을 지나치고 나면 나타나던 곳, 손가락 끝이 시커멓게 되도록 뒤지고 뒤져서 하나씩 찾아내던 비디오들은 유명하지도 멋있지도 특별히 좋은 영화도 아니었지만 왠지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는 절대 찾아낼 수 없을것 같은 영화들이었고 혹시라도 영화 잡지에 숨은 명작이나 B급 호러 명작코너에서 소개될지도..
커피와 초콜릿 (Seoul_2016) 스키니라는 단어를 스모키로 오해하고 집어든 편의점의 스타벅스 커피. 커피를 집어들고 계산대 앞에 섰는데 커피 로고의 바탕색과 유사한 녹색 킷캣이 눈에 들어와 하나 집었다. 내가 기대했던 진한 커피는 아니었지만 이 커피와 이 초콜릿은 제법 잘 어울렸다. 이곳에서 커피와 함께 먹어서 의외로 맛있는 음식들을 하나둘 발견하고 있지만 역시나 이 검고 텁텁하고 변화무쌍한 액체 앞에서 녹아내리는것이 나뿐만이 아니라는것을 가장 자신만만하게 증명하는것은 초콜릿인것 같다. 나무 벤치 위로는 잣나무가 가득했다. 간간이 잣방울이 떨어졌다. 딱딱하게 굳은 잣방울 사이의 잣을 꺼내먹고 나뭇가지위의 청설모가 놓쳐버리던 잣방울이었다. 잣나무 꼭대기에 아슬아슬 올라 잣을 따는 사람들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본적이 ..
서울 03_오래된 서점 (Seoul_2016) 내가 살던 동네에는 오래된 헌책방이 하나 있다. 오랜만에 갔는데 예상했던대로 여전히 같은 위치에서 같은 모습으로 책방을 지키고 계시는 주인 아주머니. 책에 관해 여쭤보면 겸연쩍게 웃으시며 '아들들이 아는데...' 하시곤 하셨다. 도서 검색이 가능한 컴퓨터가 있다고 해도 이런 동네 헌책방은 불규칙하게 수집된 우연으로 가득한 곳이다. 이곳 어딘가엔 내가 싸들고 와서 무심하게 팔아버린 책들도 있겠지. 책방을 누비다 충동적으로 골라 집은 책 첫 페이지에 책 주인이 고심해서 적어 놓은 글귀를 보니 누가보면 피식 웃어버릴지 모르는 유치한 문구라도 책에 적어 놓는 습관이 있었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 주인을 찾으면 찾는대로 아직 책방에 남아있다면 그런대로 자신에게 적혀진 글귀에 담긴..
티타임 (Seoul_2016) 거리거리 커피자판기, 곳곳의 카페, 한 블럭 건너서 뒤돌아서면 비싸지 않은 커피를 파는 편의점이 즐비하지만 오랜만에 찾아 온 서울에는 의외로 바깥에 앉아서 조용히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은 별로 없었다. 그럼에도 커피가 식을것을 감안하고 조금 더 걸어 찾아가서 앉고 싶은 공간은 생긴다. 동네 구석진곳에는 버릴듯 내다놓은 낡은 소파와 플라스틱 의자가 넘쳐난다. 이곳에서도 역시 손에 쥐어야 할 것은 시간뿐인지도 모른다.
리투아니아어 20_휴가 Atostogos 영원히 휴가중이고 싶다. 나는 그것이 어떤 행위라기보다는 감정을 지닌 하나의 상태이길 원한다. 우리의 마음이 휴가의 경지에 이를 수 있었면 좋겠다. (휴가를 일컫는 단어는 Atostoga 이지만 일반적으로 복수형인 Atostogos(아토스토고스) 를 사용한다)
Vilnius 44_Dont look back (Vilnius_2016) 타운홀에서 쭈욱 내려와서 대성당까지 가는 길목에 기념품 가게가 많다. 여름에도 가을에도 겨울에도 이곳에서 파는 물건들에는 별 차이가 없다. 바뀌는것이 있다면 아마 노점상 주인들의 옷차림뿐일것이다. 새로운것을 발견할 여지가 별로 없음에도 지나칠때마다 습관적으로 들여다보게 되는 그 풍경에는 새 주인을 기다리는 자들의 쓸쓸한 뒷모습이 있다. Dont look back 은 아주 오래 전 밥딜런의 콘서트 기간에 만들어진 다큐멘터리 영화의 제목인데 옛 사진을 보다 보니 요새 화두가 된 그의 얼굴이 겹쳐 그냥 제목으로 붙여보았다. 저들중에 누구 하나 갑자기 홱 돌아보면 조금 무서울것도 같다. 특히 파란 성모 마리아.
리투아니아어 19_풍선 Balionai 빌니우스 구시가지의 타운홀 계단은 앉아서 사람 구경하기 참 좋은 곳이다. 우리는 지나가는 사람들과 벤치에 앉아있는 사람들에 관해서, 세그웨이 같은것을 타고 익숙하지 않은 몸짓으로 위태롭게 지나가는 그룹 여행자들과 잠시 여유가 생겨 정차를 해놓고 담배를 피우는 택시 기사들에 관해서 이야기 하곤했다. 그들과 우리 사이에 확보된 넉넉한 공간을 텅 빈 도화지 삼아 그들이 어디에서 이곳까지 흘러들어 어떤 기분으로 현재를 만끽하고 어디로 가고있는지에 대해 멋대로 상상하며 잡담하곤 하는것이다. 성수기에도 이곳은 생각만큼 붐비지 않는다. 그리고 한가지 더 마음에 드는 점이라면 이곳에 앉아서 사람을 구경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개학을 하루 앞둔 8월 31일, 잠시 계단에 앉아서 커피를 홀짝이고 있는 사이 하얀차 한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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