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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is

Paris 04_파리의 모나리자



파리 여행 중 생각지도 못한 많은 이들과 마주쳤다. 

그들 중 만남이 예정되어있던 이는 모나리자뿐이었다.

유리관 속에 꼭꼭 박제된 그를 혹은 그녀를 사무치게 만나보고 싶었던것은 아니었다. 

단지 세계 각국에서 배낭과 트렁크를 끌고 모여드는 로드 매니져들과 이미 은퇴한 퇴역 매니져들까지 합세해서 

'오늘은 꼭 모나리자를 만나셔야 합니다. 일단 모나리자만 만나보십시오. 

밀로의 비너스는 물론 앵그르의 목욕하는 여인들도 옵션으로 만나실 수 있어요. 참! 세계사 시간에 배우신 함무라비 법전도요'

 라고 무언의 압력을 넣었던것이다.

난 늦장을 부리다 오후 세시가 다 되어서야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일곱시까지 허용되는 그(그녀)와의 면담에 늦지 않기위해 박물관 지도를 손에 꼭 쥔 채 거대한 루브르에서 앞만보고 걸었다.



그일지 모를 그녀 or 그녀일지 모를 그를 만나러가는 길은 

서울에서부터 쭉 같이 기차를 타고 온 중고딩들과 함께 부산역에 내려서 벡스코를 찾아갈 때의 기분,

낯선 동네의 웨딩홀에 겸연쩍게 들어서서 친구 이름이 적힌 푯말을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닐때의 기분,

오후 여섯시 명동역에 내려 옛날 영화진흥공사에서 열리던 시사회를 향할 때 느꼈던 기분들과 비슷했다.

서로 모르지만 같은 방향을 향해 성실하게 함께 걷는 이들을 보면서 느끼는 묘한 동지애.

예식장 안에서 무표정하게 스치는 사람들을 관찰하며  

어쩌면 이들이 내가 모르는 내 친구의 친구들일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느끼는 동질감 같은것.  

루브르의 살아 숨쉬는 수많은 전시품들 사이에서 루브르의 목적이 되어버린 모나리자는 

그렇게 외지인의 지스타나 내가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내 친구의 결혼식처럼 느껴졌다.

신부가 예쁘지 않거나 결혼식 음식이 맛이 있거나 없거나 지스타가 사람으로 미어터지거나 지루하거나 해도

그건 그렇게 느끼는 나의 문제이지 모나리자의 문제는 아닌것이다.

나 개인의 가치판단이나 호불호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경우들이 있다. 

베네치아에서 만난 요르단인이 그랬다.

"If you don't like venice, it's your problem"

모나리자는 어떤 경로로 이렇게 절대적인 권력을 부여받게 된것일까.



뻬쩨르부르그의 에르미따쥐에는 여느 미술관과 마찬가지로 관람객들에게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던 미술관 감시인들이 있었다.

마티스의 그림 앞에 앉아 꾸벅꾸벅 졸다가 카메라 플래쉬 소리에 놀라 깨어나던 러시아 할머니들. 

실질적으로 그들이 자신의 직업에서 느끼는 만족감이 어느 정도인지는 짐작하기 어렵지만

곧 퇴직할 연령이 다가오는 혹은 이미 퇴직했는지도 모를 풍만하고도 나른한 할머니들이 순간 부러웠더랬다.

같은 업종 종사자이지만 루브르에서 모나리자를 호위하고 있는 이 젊은 여자들의 운명은 전혀 다르다.

<사선에서>의 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잔뜩 날이 선 표정의 이들에게서 가만히 앉아서 졸 수 있는 시간을 찾는것은

모나리자를 감싸고 있는 유리벽에서 유글레나나 아메바 같은 놈들이 새어 들어갈틈을 찾아야 하는것만큼 불가능해 보였다.

몰려드는 관람객들과 반복되는 실랑이를 벌인 후 집으로 돌아가는 메트로 안에서도 

이들은 내일 오전 모나리자 앞에서 조우하게 될지도 모를 숱한 관광객들을 마주 보고 앉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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